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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프란츠 카프카, <꿈> 발췌

프란츠 카프카, 배수아 옮김, <꿈>, 워크룸프레스, 2021.

워크룸프레스는 표지를 정말 세련되게 뽑는다.

 카프카가 일기나 편지 곳곳에 자신의 꿈과 잠에 대해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밤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문학에 대한 카프카의 열정과 카프카에 대한 문학인의 열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카프카를 읽다 보면, 언어 자체를 화려하게 가꾸는 일보다 언어가 가리키는 이미지를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이 훨씬 중요하고 문학에 본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의미심장했던 토막들을 발췌한다.


"오늘 오후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누군가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성급하게 돌렸다. 순식간에 나는 마치 가장무도회에서처럼 자물쇠를 온몸에 걸치고 있다. 짧은 공백을 사이에 두고, 한번은 여기에서, 한번은 저기에서, 자물쇠가 열렸다가 다시 잠기곤 했다."(54)

"그저께와 그그저께 밤 나는 연달아 이빨 꿈을 꾸었습니다. 이빨은 가지런히 정돈된 치열로서가 아닌, 그냥 무더기에 가까운 형태로, 어린아이들의 퍼즐 놀이에서처럼, 내 턱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서로서로 밀쳐내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해내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이빨들의 움직임, 이빨들의 틈새, 이빨들의 달그락거림, 내가 턱으로 그것들을 움직이게 할 때의 느낌--이 모든 것이 내가 쉴 새 없이 이빨로 깨무는 동작을 통해서 인식하고, 결심하고, 현실화하는 어떤 생각, 어떤 결정, 어떤 희망, 어떤 가능성과 정확하게 모종의 연관을 갖고 있었지요. 안간힘을 쓰면서 노력한 결과, 종종 표현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 눈을 절반쯤 뜨면서부터 이런 예감이 들었죠. 나는 마침내 해냈다, 밤새도록 수고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결정적이고 불변하는 이빨의 편성이 바로 의심의 여지없는 행운의 의미가 아닌가."(65, 강조는 나)

"악몽을 꾸었습니다. 건물 수위실에서 전화가 와서, 내게 온 편지 한 통을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갑니다. 하지만 그곳에 수위는 없고, 대신 배달부로부터 우편물을 접수하는 우편함 관리인이 있을 뿐입니다. 편지를 달라고 합니다. 관리인은 탁자 위를 뒤지지만, 방금 전까지 거기 있었어야 할 내 편지를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럴 자격도 없는데 마음대로 배달부로부터 우편물을 받은 데다가 그걸 우편함 관리인에게 갖다주지도 않은 수위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수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것도 매우 오랫동안. 마침내 수위가 옵니다. 수위는 거인처럼 몸집이 크고, 또 그만큼이나 아둔한 사람입니다. 그는 편지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절망한 나는 감독관에게 하소연하려고 합니다. 우편배달부와 수위의 대질심문을 요구하고, 수위는 앞으로 결코 배달부로부터 우편물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킬 것입니다.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복도와 계단을 헤매고 다니며 헛되이 감독관을 찾아 나섭니다."(77)

"나는 봉투에 M. 예젠스카라고 쓰고, 그 아래에 "이 편지를 배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무국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이렇게 위협을 해놓으면 아마도 국가는 당신을 찾아내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될 거라고 희망했던 거지요. 너무 교활한가요? 그렇다고 나에게 반감을 갖지는 말아주십시오. 나는 오직 꿈속에서만 음침하니까요."(89, 강조는 나)

"그리고 도스토옙스키 남자 또한 나에게 고통을 주는 장본인이었지요. 그는 나에 대한 행동 면에서 당신과 대체로 비슷했지만, 약간의 차이점도 있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물으면, 그는 매우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내 쪽으로 몸을 굽히고 솔직하게 대응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내가 더 이상 질문할 거리나 할 말이 없어지면--그런 일은 매 순간 발생하곤 했지요--그는 단숨에 몸을 바로 하고는, 책 속에 푹 빠져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고, 특히나 나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척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수염과 머리카락 속으로 파묻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97, 강조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