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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김남주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2008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59)

 

 서른 아홉 살의 폴은 외롭고, 로제는 작고 남성적인 자유에 취해 폴을 봐주지 않으며, 스물 다섯 살의 시몽은 연민과 욕망에 휩싸여 폴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 시몽은 잘생겼고, 맹목적일 정도로 순진무구하며, 결코 폴을 외롭게 두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폴은 어떻게 시몽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묻는 우리들의 낭만을 파괴하는 책이다. 사강은 폴의 고민과 선택을 통해 관성이 사랑보다 강할 수 있는 경우를 그려보인다. 폴은 끝내 자신을 외롭도록 내버려두는 로제에게 되돌아가면서 그 이유로 자신은 너무 늙었다는 사실을 든다. 나는 폴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시에, 내가 그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자조하듯이 자문한다. 왜냐하면 나는 단 한 번도 1959년에 39살이 된 여성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혼한 경험이 있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젊은 남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는 이유로 질타 받는.

 하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결말에 이르기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폴과 시몽의 해피엔딩을 꿈꾸었다. 나에게 시몽이 찾아온다면 나는 스스로를 기만해서라도 그를 놓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그저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밀어넣듯이 이런 삶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므로. 비유에는 논증을 갈음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로제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녀는 지레 겁에 질렸다. 그녀는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 싸움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몽의 비단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아래위로 쓰다듬으며 그녀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밀어넣듯이 이런 삶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을 거라고."(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