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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1981.

 

 몰입하기가 힘에 부치는 시집이다. 요즘의 일부 시들처럼 암호 같아서도 아니고, 외국의 몇몇 시들처럼 숨은 뜻이 지나치게 깊어서도 아니다. 이 시들의 화자는 불행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새마저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에 / 투신"('새', 78)하는 존재로 보는 화자의 시선은 세계로부터 희망을 읽어내는 데 철저히 무능하다. 세계로부터 희망을 읽지 못하는 병, 그것을 우리는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사랑⟫은 우울에서 시작해 우울로 끝난다.

 우울은 사람마다 그 깊이는 다를지언정 몹시 흔한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괴로움 / 외로움 / 그리움"이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라고 화자가 단언할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내 청춘의 영원한', 44). 그러나 우울의 진정으로 비극적인 면모는 그것이 아무런 새로운 인식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울은 본질적으로 비생산적인, 변주될 뿐 발전하지 않는 슬픔의 폐쇄된 경계 내부를 빙빙 도는 데 그친다. 그에 따라 우울의 표현들은 다채롭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마음을 끌어당기지만 끌어올려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대의 사랑⟫을 인상깊게 읽었으나, 바로 그 이유로 실망하기도 했다. 나는 이 시들이 강박적으로 정체되어있다고 느낀다. 시인이 우울의 돌파구를 계시해주지 않는다면, 시인이 아닌 우울한 독자들은 누구를 믿고 삶을 헤쳐나가랴. 내가 시에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