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민음사, 2013

 

 윤고은 작가의 소설은 두 번째로 읽는다. 먼저 읽은 소설은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이라는 단편이었다. 그 소설 또한 현대 사회의 경제적 생태계에서 생존하고자 분투하는 개인들의 욕망과 그것을 동력 삼아 없는 길도 개척해 나아가는 자본주의 사이의 역학을 묘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밤의 여행자들⟫이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심화라고 말해야 한다.

 사람들의 모험심과 연민을 자극하는 재난지역 패키지 여행을 주선하는 회사 '정글'에 다니는 주인공 고요나는 '무이'라는 베트남의 섬마을에 낙오된다. 무이는 한때 그곳의 땅을 두고 경쟁했던 두 부족 간의 싸움 때문에,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사막의 싱크홀이 두 부족 모두를 집어삼킴으로써 초토화된 적이 있는 재난지역으로서, 정글의 상품 중 하나지만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한 마을이다. 여행 프로그램이 부실하고 재난의 피해가 오늘날에는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상품목록에서 배제되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마을에 리조트 호텔 '벨 에포크'를 운영하고 있는 매니저는 무이를 살리기 위해 그곳에 다시 한 번 인위적으로 싱크홀을 만들어 정글과의 계약을 갱신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마침 회사에서 지위가 강등당한 요나는 매니저의 음모에 가담함으로써 정글에서의 생존을 도모한다. 그러나 섬을 답사하며 허구의 재난을 꾸며내는 와중에 과거의 재난도, 미래의 재난도 아닌 무분별한 관광지화가 낳은 주민들의 삶과 영혼의 황폐화가 가장 큰, 당면한 재난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 사건이 벌어진 후 필요할 인터뷰용 대사들을 미리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사 한두 개의 대가는 보통 무이 노동자의 반년 치 월급에 달했다. 자원자는 많았다. [...] 이곳은 그저 조금 큰 극장일 뿐이라고 요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바다 위에서 부표처럼 흔들리는, 침몰도 안정도 오지 않는, 공허한 극장."(148)
"이웃의 재난이 무이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지진으로 인한 이웃 섬의 피해가 사망자만 200명이 넘어섰다는 소식을 듣고 매니저는 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174-5)

 윤고은 작가는 화려한 비유로 지면을 수놓는다거나 시적인 문체를 내세우지 않는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들로 치밀하게 계획된 서사를 한 문장, 한 문장씩 밀어붙일 뿐이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반전이 기다리고 있고 특히 소설의 후반부는 충격 그 자체지만(그 부분은 스포일하지 않겠다!) 그 역시 계획의 일환이기에 이야기 전체의 통일성은 깨지지 않는다. 럭과 요나의 사랑 이야기가 조금 어색했지만,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잘 짜인 데다 재미까지 있는 이야기였고, 무엇보다 사회학적으로 묵직한 물음들을 여럿 던지는 이야기였다. 재난이란 무엇인가? (여행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시선 하에서 재난(여행)은 어떻게 재인식되는가? 재난(여행)에 대한 자본주의적 재인식은 재난 당사자와 주변인들을 주체로 하는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낳는가? 궁극적으로, 과연 재난은 예외적인 사건인가? 독자가 평범하게 흘러가는 듯한 하루 속에서도 '재난적인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이 소설의 소기의 목표는 달성된 것일 테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  (0) 2021.09.24
장이지, <레몬옐로>  (0) 2021.09.19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0) 2021.08.21
배수아, <부주의한 사랑>  (0) 2021.07.31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0) 2021.07.22
레오 페루츠, <심판의 날의 거장>  (0) 2021.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