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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배수아, <부주의한 사랑>

배수아, ⟪부주의한 사랑⟫, 문학동네, 1996.

 

 배수아-유니버스의 첫 번째 장편소설. 제목대로 두 세대에 걸쳐진 부주의한 사랑들을 다루는데, 다만 장소가 시골에서 도시로 바뀔 뿐이다. 물론 이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바람이 어느 편에서 불어오거나 아니면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낳는다거나 지나간 일들이 꿈속에서 보이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기 때문이다(112). (도시적 삶에 대한 문제적 시선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2003)⟫에서 발전된다.)

 ⟪뱀과 물(2018)⟫에 실린 단편소설 '1972'에서 어린시절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억은 망상일 뿐이라고 단언했던 배수아였기에 소설의 전반부가 아기의 시선에서 언니 연연, 사촌들의 어린시절과 엄마 모령, 이모 미령 그리고 이름도 없이 그저 '미령의 남자'로 지칭되는 이모부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신기하게 다가온다. 모령은 한없이 가난한 와중에도 계속해서 잘 모르는 남자들과의 사이에서 듬뿍 사랑해줄 수도 없는 아이들을 낳고, 결국 연연과 '나'를 책임지지 못해 동생 미령의 집으로 보내게 된다. '나'는 평생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간직한 채 아이 없이 살아간다.

 "나는 기억의 처음에 모령의 몸속에서 말한다. 이건 아니야. 이것은 내 처음이 아니야. 해님이 하늘거리는 여름날에 나는 태어나고 싶어. 어머니, 나는 태어나서 흰 그네를 타고 싶어. 나는 어머니의 딸 연연처럼 되고 싶어.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죽기를 원해요. 이제 나는 어머니를 보지 않겠어요. 일생 동안 만나지 않겠어요. 어머니,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 바람처럼 떠나겠어요."(65, 강조는 필자)

 한편 '나'를 떠맡게 된 이모 미령은 화가가 되기를 꿈꾸는 낭만주의자였지만, 자신보다 다섯 살 어린 스무 살의 '미령의 남자'를 만나 두려움과 희망을 모두 품은 채 결혼을 감행한다.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또한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아 가난해진다. 미령은 화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회한을 느끼며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저주하다 못해 판자촌의 술집을 들락날락거린다. 미령의 남자는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을 하지만 자신의 꿈과 젊음을 상실한 아내를 끝내 위로하지 못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었어. 아아, 실수였다니까. 그림도 그리지 못하고 다른 길로도 전혀 가지 못하고. 봐. 난 다른 마을 여자들하고 다를 것이 없어. [...] 난 집을 떠났어야 했어. 이기적이 되어 나만 생각해서."(72)

 미령 또한 모령처럼 무책임하게 무너지는 와중에 연연이 묵묵히 식모의 역할을 자처하며 집안일을 도맡는다. 그 집안일에는 갓난아기인 동생 '나'를 키우는 일도 포함된다. "나는 아기다"(21)라는 말을 부자연스럽지 않게, 마치 당연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듯이 서사에 끼워넣을 수 있는 작가는 한국에서 배수아뿐일 것이다. 나중에 그 아기가 입양되어 새로운 부모 아래서 자라, 자신과 사랑에 빠진 남자들--그 중에는 그저 '사촌'이라 불리는 유부남도 있다--에게 일찍 죽은 언니의 이름인 '연연'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서사도 배수아의 서사뿐일 것이다. 배수아는 그녀만의 논리, 윤리, 인식, 시간의 법칙이 지배하는 고유한 문학적 공간을 창출한다.

 그런데 '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촌'과도 헤어진 뒤로 꿈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서사에 금이 간다. 확실한 역사인 줄 알았던 소설 전반부의 과거사가 '나'의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일지 모른다는 개연적 의심이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 속에서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이라고 규정하며 그것이 신비에 대한 인간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신비는 아기의 눈으로도 세계를 투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아기가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아니라 언니인 연연의 자의식을 통해 세계를 보았던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꿈에 관한 내 책"은 "나는 연연이다"라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149). 부주의한 사랑으로 태어난 자매는 꿈을 통해 하나가 되고, 동생은 언니의 죽음을 경험하며, 살아남지 못한 언니의 삶을 대신 산다.

 가난에 쫓겨 중국집에서 서빙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게 된 '나'는 그녀에게 '사촌'을 소개시켜줬었고 역시나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어머니의 사랑에 무신경한 척하지만 사실은 '나'보다도 더 목말라있는 남자를 집안으로 들인다. 두 사람은 커피와 술을 마시고 강가를 걸으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끝까지 남자를 '남자아이'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사랑 없이 지나간 어린시절을 끝내 완결짓지 못하고, 노동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어른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두 사람이다. 결국 남자아이는 '나'가 술을 마시고 잠에 든 사이 강물에 투신하는데, 떠올랐을 때는 사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강가의 이모 집에서 자라 강물 속으로 애인(들)을 떠나보낸 '나'. 그녀는 이제 자신의 삶에 남아있는 사건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고 죽음만을 기다린다.

 "씁쓸한 풀냄새가 바람결에 묻어나고, 남자아이의 입에서는 소주 냄새가 났다. [...] 소주와 맥주를 아주아주 많이 마셨다. 추운 날이었지만 검은 모기들이 귓가를 날아다니고 부정으로 파면당한 젊은 관리와 차이니스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는 무언가를 아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177, 강조는 필자)

"시간이 흐른 다음에 아픈 가슴에 안고 나는 죽게 되리라. 아직도 차가운 강물 속에 있는 내 남자아이의 머리칼을. 그토록 부주의하게 빠져들어갔던 내 생의 깊고 어두운 강물을."(181)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갈망, 특히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표상하는 소설로 읽힌다. 기원의 징후로서의 어머니는 사라졌다고 외치는, 2019년의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의 '나'는 1996년의 ⟪부주의한 사랑⟫에서 아직 엿보이지 않는다. 20년동안 배수아의 삶과 문학세계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신비와 자아의 유동성, 운명의 반복과 교차는 일관적으로 그녀의 테마여왔다. 그러나 이 초기작에는 구체적인 인격과 인격 사이의 끈끈한 감정적 관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춥고 각박한 현실에서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자각이 살아있다. 최근의 소설들은 더 이상 사실적인 현실을 묘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미련과 자각 없이 쓰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차피 20년 전의 배수아도, 지금의 배수아도 똑같이 동경하고 또 존경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대체 불가능한 역량을 지닌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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