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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Oh my lov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2018.4)

 ⟪화실⟫이란 장편소설을 쓰기 전--제 1회 박상륭 문학상에 호기롭게 응모했다가 심사평도 받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언젠가 다시 제대로 써내서 세상에 내보일 것이다--그 이야기를 아주 막연하게만 예감하면서 자유롭게 써내려갔던 소품이다. 낙성대역의 바에서 처음으로 마셔봤던 위스키 맛을 열심히 기억하고 있다가, 대학동 고시촌의 어느 카페에서 늦은 저녁시간에 끄적였었다. 영감의 원천이 됐던 노래를 첨부한다.

 과거의 내 딱딱한 문체와 유치한 표현들은 지금 봐서는 견딜 수 없다. 그래도 그때 나름의 정취가 담겨있으니 최대한 내버려두었다. 

2018년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처음 위스키를 마셨던 날.

www.youtube.com/watch?v=u3QZVdqUidw


 밤을 꼬박 새우고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취기를 내 안에서 쫓아내려 몸부림쳤다. 몸부림이라고 해봤자 날 집으로 돌아가게 해줄 버스 정류장에서 첫 차를 기다리며 팔을 배배 꼬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마치 이미 거미줄에 걸려버린 파리가 탈출하기 위해 애쓰지만 실패하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새벽부터 출근길에 나선 정직한 노동자들 사이에 섞여 취기에 사로잡힌 탕아로서 비참한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참담한 기분을 완화시켜준 것은―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강화한 것은―버스 정류장 옆의 카페에서 흘러나와준 낯익은 멜로디였다. 피아노 반주와 존 레논의 목소리가 차가운 바람의 결을 따라 나의 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마치 서로에게 빠져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이란 낙관에 따른 온유한 태도가 아니라 절망을 미리 생각하고 체념한 데서 온 것만 같았다. 나는 절망을 미리 생각하는 커플이 서로의 귀를 만지는 행위와 더불어 이루어질 수 있는 대화들을 상상하다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오, 나의 사랑, 내 삶에서 처음이었던

 나의 눈은 번쩍 뜨였어요.

 오, 나의 사랑, 내 삶에서 처음이었던

 내 눈은 이제 볼 수 있어요.

 존 레논에게 첫사랑은 개안(開眼)이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무언가를 보게 된다면 사랑에 빠진 것이라는 셈. 그저께 밤, 나도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환영을 보았었다. 어두운 부엌에서 오로지 흔들리는 초 하나를―모든 전구는 너무 밝아서―켜고, 처음에 꺼냈을 땐 내 새끼손톱의 두께 정도로 남아있던 양초가 모두 녹아 사라질 때까지 편의점에서 사온 싸구려 술을 들이켰다.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어둠으로 뒤덮여버린 나의 세계에서 의식의 힘이 거세되자 어떤 푸른 형체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것은 아무런 윤곽도 갖고 있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것이 그리움과 두려움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첫사랑이 보여주는 것 역시 이처럼 무서운 것들이라면 위스키는 깊은 애정과 동치일 것이다.

 나는 바람을 보아요

 오, 나무들도 보지요. 

 모든 것이 나의 영혼 속에서 선명합니다.

 나는 구름을 보아요

 오, 하늘도 보지요

 모든 것이 우리 세계에선 선명합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의한 개안이 위스키에 의한 환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스키가 선물하는 영상은 존 레논의 가사와 달리 조금도 선명하거나 또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기의 종착역은 산들바람이 불고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운 숲이 아니라 안개가 짙은 늪이다.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구별하지 못한다.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 심지어는 사랑과 미움, 그리고 너와 나까지도, 그러니까 나는 자아와 타인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타인을 나의 안에서, 나의 한정된 시력에 의거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늪에서 나는 잠자는 무해한 인간을 참나무로 알고 베어버리기도 한다.

 오, 나의 사랑, 삶에서 처음이었던

 나의 마음이 활짝 열렸답니다.

 오, 나의 사랑, 삶에서 처음이었던

 내 마음은 이제 느껴요.

 그토록 호된 숙취를 느끼고도 삶을 개선시킬 의욕이 없었던 나는 어젯밤 또 다시 위스키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위스키의 효과가 사랑의 효과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나쁜 습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나의 마음이 활짝 열”리기는커녕 정신을 폐쇄시켜 과거에 만났던 타인을 제멋대로 박제해놓고 시간의 진행을 방해하기만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사랑과 술이 ‘사로잡음’이라는 권력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숲이든 늪이든 일단 사람을 가둬놓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실, 무언가에 의해 붙잡혀있어야만 의식에 공백이 생기는 것을, 외로움을 불러내는 그 내적 침묵을 막아낼 수 있다.

 나는 슬픔을 느껴요

 오, 난 꿈들을 느끼죠

 모든 것이 내 영혼 속에서 선명합니다.

 나는 생명을 느껴요

 오, 난 사랑을 느끼죠

 모든 것이 우리의 세계에선 선명합니다.

 그래도 진짜 사랑이라면 술기운보다는 좀 더 확실하고, 진실하며 아름다운 것에게 사로잡히는 것이겠지. 좀 더 숭고한 것을 보게 해주겠지. 구토와 환각을 유발하는 이 짜증나는 알코올이 아니라, 진짜 사랑이라면,

 “생명이야.” 언젠가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면서 귀현이 해준 이야기였다.

 “진짜 사랑은 생명에 대한 개안이야.”

 그때도 나는 위스키에 취해있었다. 반면 술 대신에 홍차를 마시기로 선택한 귀현은 나와 달리 더럽혀지지 않은 머릿속으로부터 그럴 듯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평소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해낼 역할을 봐. 저 사람이 나를 위해 수행해줄 기능 말이야. 부모를 볼 땐 내게 알맞은 보살핌을 줄 것인가, 선생을 볼 땐 내게 좋은 가르침을 줄 것인가, 친구를 볼 땐 내게 적절한 즐거움을 줄 것인가... 알량한 관계들은 다 그렇지. 하지만 진짜 사랑은 상대를 볼 때 그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가가 아니라 그의 고유한 생명 자체를 생각하게 만들지. 그렇게 상대의 생명을 가시화할 뿐만 아니라 나에 의해 세계의 표면으로 드러난 상대의 생명―같은 말로 영혼이나 인격, 개성이 있겠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끼게 만드는 거야.”

 귀현은 나의 존재를 마치 백지인 것처럼 대하면서 에세이를 쓰듯이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의식의 색깔을 오해했다. 그리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의 정신은 까맣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백지가 될 수 없었다.

 그에 더해 나는 새로운 혼란을 겪고 있었다. 나는 내가 첫사랑이라고 생각한 그 남자의 생명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물론 그를 단 한 번도 어떤 역할의 수행자로는 생각해본 적 없었으므로―나는 그에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다. 흔히 연인의 의무로 생각되는 자상함과 헌신마저―귀현이 생각한 사랑의 범주에 불완전하게나마 속해있었지만 여전히 반쪽짜리 애정에 불과했다. 나는 내 첫사랑의 생명을 명석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모든 판단은 지금까지도 유보되어있어서, 나는 그가 내게 기쁨을 주었는지, 슬픔을 주었는지조차 평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나는 ‘이상형’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의심스러워. 그들은 진짜 사랑을 갈구하는 것 일까? 그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미리 판단한 기능을 척척 수행해줄 사랑기계를 원하는 건 아닐까? 고유명사로서의 타인의 생명이 아니라, 보통명사로서의 역할수행자를 연인이란 신성한 말로 포장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예컨대 자상하기만 하면, 잘생기기만 하면, 성실하기만 하면 상관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외로운 순간에 자신 앞에 나타난, ‘이상형’과 그나마 가까운 사람과 연애하면서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자위하는 건 아닐까?”

 생명에 대한 앎을 진정한 사랑으로, 역할 수행에 대한 기대를 가짜 사랑으로 규정한 귀현의 논리에 따르면 가짜 사랑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가짜 지식 체계에 따라 상대를 채점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정해놓은 역할을 정답으로 생각한 채 그것으로부터 상대가 멀어질 때마다 그의 오류를 지적하며 점수를 깎아나가는 것이다. (점수가 0이 되면 이별이 도출되겠지.)

 그들은 저 가짜 지식 체계를 토대로 자신들이야말로 상대에 대해 모든 것을 명석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상대를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 부분에서는 귀현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의 생명에 대한 앎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쨌든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에 괴로워져서, 열변을 토하는 귀현을 향해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는 넌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어?”

 귀현은 그때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렸다. 아름다운 꽃이 그려져 있던 찻잔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꽃잎이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갑작스런 타격에 의해서 줄기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아니, 단 한 번도. 나는 포기했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널브러진 조각들을 치우려던 나를 귀현이 제지했다. 술에 취한 내가 괜히 손이 베일 것을 걱정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나한테 가능한 건 표면적인 애정뿐이야. 난 사랑을 할 줄 몰라. 상대의 생명을, 영혼을 볼 줄 모르거든.”

 그녀는 바텐더를 부른 다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 자신의 것도 들여다볼 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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