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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안 쓰기로 결심한 소설 - 커피, 버찌, 자비(2020.10)

 

 

"내가 임세계 씨의 원고를 발견한 것은 내 사물함 안에서였다. 발견한 자리가 내 사물함이었으니 발견보다는 선물받은 일에 가까운가.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가 자퇴한 뒤로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준 모양이다. 아무튼 나는 그녀가 왜 이 원고를 내게 주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영원히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유일한 단서는 원고의 주인으로서 내가 등장한다는 데 있었다. 임세계 씨는 어쩌면 나를 싫어한 것 같다. 내게 몹시 신경을 쓴 것은 확실하고, 그러므로 나를 몹시 좋아한 것도 같다. 조교였던 임세계 씨는 강의 초반부터 나를 신경썼다. 우리는 이름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공유했다. 그 사실은 출석부에 기재되어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사실을 호모니몬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그림 속의 사람과 실제 사람은 호모니몬들이었다. 소설 속의 사람과 실제 사람도 호모니몬일 것이다. 심지어 12쪽에 등장한 인물과 212쪽에서 퇴장하는 같은 인물도 호모니몬에 불과할지 모른다. 25살의 인간과 30살의 같은 인간조차 호모니몬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것이나 규명하려고 호모니몬을 연구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곡해했을 확률이 높으며,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임세계 씨와 달리 철학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으로서 교양강의를 (중간까지)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출석부에 기록되었고, 마지막으로는 내 손에 쥐인 이 원고에 기록되었다."

"많은 철학은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실들은 그것들로부터 본질을 추상해내기 위해서만 생각된다. 사실은 한낱 사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etwas bloßes[한갓된 무언가].' 우연적인 상황에서 달리 흐를 수도 있었던 사태에서 낙엽의 무늬처럼 임의적인 조건들 속에서 일어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실은 본질을 바꿔버린다. 홀로코스트는 개별 인간들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훼손했다고 배웠다. 강남역에서의 살인은 개별 여성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 여성됨의 의미를 뒤바꿨다. 스무 살의 트라우마는 나에 대한 사실들이 아니라 나의 본질을 손상시켰다. 그 시기 이후로 사람으로서 나의 본질은 이성이나 본능의 억제나 자유의지 같은 것이 아닌, 수치심이 되었다. 설령 그것이 나만의 본질이라고 해도 그것은 나의 본질이다. 심지어는 나만의 본질이기 때문에 비로소 나의 본질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바보 같은 귀결이지만 대학을 때려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거의 다 졸업해가는 대학을,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때려치웠다. 사랑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날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화내는 부모만 있었다. 마구 1년이 흘렀고 나는 의무감에 사물함을 비우러 왔다가, 임세계 씨의 원고를 빼고는 짐을 다 버렸다."

"한 사람의 긍지와 수치심의 근원이 동일할 때에 그녀는 분열한다. 내가 가진 것은 자의식뿐이었으나 그 과잉됨이 너무나 자주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왔다. 자의식이 소중해졌을 때는 소설로 그것을 표현했는데, 부끄러움이 급습하면 꽤 오랫동안 한 자도 못 쓰게 됐고, 못 썼을 뿐만 아니라 그간 써왔던 것들을 지워버렸다."

"불운으로부터 차단된 삶을 살았다. 경험이 차단됐을 뿐 아니라 웬만한 불운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살았다. 내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내 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가난은 남의 나라 얘기였고 폭력도, 꿈의 좌절도, 심지어는 질투 같은 것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사고 싶은 책이 절판되거나 밤낮이 바뀌어 이따금 잠을 잘 못 자는 일 정도가 불운의 전부였다. 내 주위의 아이들도 그랬으므로 그런 게 삶의 일반인 줄 알았다. 달콤하며 아늑하고, 달콤함과 아늑함이 매우 오랫동안 그리고 견고하게 지속돼서 싱거워지고 권태로워지는 게 삶이라 믿었다. 좋은 것들에 대한 피로가 쌓이면 부모님이 사랑 대신에 쥐어준 용돈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면세점의 가방과 향수와 기념품들을 침대에 쭉 늘어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것들 일부를 한두 달에 걸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칵테일을 얻어마셨다. 진부하지만 어느날 문득 나는 내가 어딘가 빈곤함을 느꼈다. 무엇이 빈곤하냐 묻는다면, 나 역시 많이 고민했는데, 그리고 내게 빈곤이라는 단어를--어떤 맥락에서든--사용할 자격이 있는지를 제일 많이 고민했는데, 아마 공감 능력의 빈곤이었던 것 같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사위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의 벽과 타고난 무덤덤한 성격,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온몸에 배어버린 무심함이 나로 하여금 남의 불행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남의 아픔을 대신 느끼기는커녕 이성적으로도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정말이지 ‘아픔’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 정도만을 이해했다. 나는 민감하지 않았다. 예민하지 않았고, 분노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축하한다고, 그건 축복이라고, 아픔을 느낄 줄 모르는 것은, 남의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둔한 것은 솔직히 축복이 아니냐고, 같은 축복을 타고나지 못한 남의 미움만 사지 않게, 그 둔함을 티내지 말고 속으로만 행복해하라고 가르쳤다.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배웠다. 실제로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런 삶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꿈결에였을 수도, 술김에였을 수도 있다. 다만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그 느낌에 도달한 순간부터 더 이상 똑같이 생각하며 살기가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뭔가 잘못한 것만 같은 죄의식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죄의식에 대해서 수치스러워했다. 어줍잖은 동정심이 아닌가? 위계를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내가 속한 집안의 사회경제적 우위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죄의식이 아닌가? 비슷하게 이어지는, 아무리 괴로워도 배부른 고민들. 어찌 됐건 간에 내 삶에서 만난 최초의 죄의식과 수치심이었다. 한 번도 그런 미로 같은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장황하고, 장황하다는 것은 당황했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도 표현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당황했다."

"사람들은 늘 천재성에 굶주려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도 기대를 걸어준 이들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전공하는 학자의 원전 한 권도 제대로 못 소화하는 초라한 꼴을 보이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어느새 임세계 씨와 만나는 1010호의 남자를 질투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바게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지만 그와 그녀는 꽃과 체온을 나누는 사이였다. 꽃과 싸우면 바게트 쪽이 이긴다. 사람은 꽃 없인 살고, 빵 없인 못 사니까. 하지만 대화와 체온 중에서는?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계는 그 글을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나를 대신해 응모해달라는 부탁은 거절당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글은 철학도, 수필도 아니다. 철학이라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수필이라기에는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솔직하지 못하다. 솔직함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미덕일까. 확실한 것은 지나친 솔직함은 부덕에 가까우리라는 직관이다. 사람은 중용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제일 두려운 것은 그 글이 소설이 아니게 되는 일보다 그 글이 세상에 나올 가치가 없다고 판명나는 일이다. 나는 십수 년 간 되풀이된 수치심 때문에 내게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는지 의심해왔다. 그러나 십수 년 간 되풀이된 수치심 때문에 의심을 굳히거나 걷어낼 만한 객관적인 판단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말이, 동물에게는 목소리만이 있다고 한다. 동물마저 가지고 있는 그 목소리, 비이성적 표현의 가능성, 울부짖을 기회, 그것마저 내게 없을까 봐 두렵다. 그것만이라도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내게 삶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모두 임세계 씨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우리는 같은 어휘를 사용하며 대화했고 같은 어휘에 대해 같은 정의를 가졌다. 사람은, 사람의 이성은 저마다가 하나의 사전이다. 우리는 같다고 말해도 무방할 거의 비슷한 사전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비슷한 이성을 가지고 살았다. 우리는 친구였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내가 세계와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인간은 아니지만, 동일인물. 그 차이가 어떤 차이인지는 모르겠고, 철학적으로 따져볼 자신도 없지만, 그래도 동일인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넘어서. 강하다면 강하고 약하다면 약한 본질을 침범해서. 존재한다면 존재하고, 부재한다면 부재하는 영혼을 섞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