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초의 기록. 어쩌다 보니 미유키네 할머니 데데의 집에 와서 지내게 됐다. 파리에서 인파에 떠밀려 모나리자의 정수리를 본 것이나, 꺄시의 유명한 만들을 구경한 것이나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데데 할머니네 집은 내 마음대로 올 수 없는 곳이기에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정원과 1층, 2층, 그리고 다락으로 이루어진 이 집은 1806년에 누런 돌로 지어졌다. 모든 창문은 하늘과 똑같은 파랑 색으로 최근에 다시 칠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초록색이었다고 들었다.
정원에서는 야생 딸기가 하찮은 크기로 한껏 자라나 그 자리에서 바로 따먹을 수 있다. 도시에서는 알려고 해봐야 알 수가 없는 시큼함, 약간의 텁텁함이 느껴지지만 삼킨 뒤에도 입안에 불순한 단내가 남는다. 체리와 자두, 배, 포도 등도 생장에 대한 탐욕으로 햇살을 머금으면서 숙성될 한여름을 기다린다. 새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물을 쳐둔 연못에서는 연꽃이 안전하게 제 봉오리를 열었다. 연잎 위에는 뚱뚱한 개구리 한 마리가 아래서 헤엄 치는 물고기의 움직임에 아랑곳않고 둔하게 엎드려 있다. 엄마는 물고기 밥을 주면서 즐거워하고, 미유키는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채 그런 엄마의 뒤를 지키며, 나는 더 멀찍이 미유키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정원과 마주하는 1층이 손님인 우리가 자는 곳이고,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2층이 밥을 먹는 곳이다. 이곳에서 맞은 첫 번째 점심이 특히 맛이 좋았어서 기억에 남는다. 주 메뉴는 빠삐용 파스타와 닭고기, 당근 샐러드였다. 장에서 갓 사온 감자 요리, 이곳 마늘로 시즈닝한 올리브를 곁들였다. 후식으로는 마찬가지로 장에서 사온 니카라과산 콩으로 드립 커피를 잔뜩 만들어서 데데 할머니와 미유키, 엄마뿐만 아니라 잠시 창문을 닦으러 와주신 아저씨께도 대접할 수 있었다. 듀오링고로 다져진(?) 내 거친 프랑스어가 종종 통하는 것이 신기했다(한 번은 jambe(다리)을 jambon(햄)과 헷갈리긴 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몇날 며칠을 먹었다. 처음으로 찐 아티초크를 먹어보기도 했다. 아침 식사는 늘 크로와상과 쇼콜라틴(남프랑스에서는 절.대.로. 파리 냄새 나게시리 '뱅오쇼콜라'라고 하지 않는단다)을 거대한 도자그릇에 쌓아놓고 커피와 먹었다. 저녁에는 근처에서 그나마 큰 도시인 카호르 산 와인을 성실히 마셨다. 떠날 때쯤 한 병을 전부 비운 것 같다.
밤이면 찻잔을 두고 여럿이서 데데 할머니와 오랜 수다를 떨었다. 대학 시절 뉴욕에서 말론 브란도와 (그인줄 모르고) 하루 데이트한 에피소드 같은 재밌는 일화에서부터 (야생 딸기로부터 촉발된 주제였는데) 베르히만의 영화가 종교적인 문제의식 하에 반종교적 폭력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재현한다는 일갈까지 주로 데데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데데 할머니께서는 아흔 살이시다. 종종 서계시다 잠에 들고 마셔서 가끔은 움직이는 것이 무섭다 말씀하셨다. 어느 날은 무릎의 통증 때문에 사흘을 못 주무셨는데, 텔레비전 앞을 지나던 중 그만 스르륵, 눈이 감겨 피로 원피스를 다 물들였을 정도로 머리를 크게 다치셨다고. 그러나 살아오신 이야기나 지나온 사랑, 세상 이모저모에 대한 견해를 들려주실 때면, 눈빛이 더없이 또렷해지고 표정도 연극 배우처럼 풍부해져 살아있는 일의 필연적인 피로로부터 잠시나마 회복해 계신 것처럼 보였다. 거의 항상적인 피로와 그로부터의 간헐적인 회복 사이 진자운동이야말로 아흔 살이신 데데 할머니께나, 서른을 앞둔 나에게나 삶이란 개념의 내용을 이루는 듯하다.
그 외에는 시내에 '리브레르 라신'이란 곳에 가서 베유와 데스콜라의 책을 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시골 도시의 작은 책방이었는데도 좋은 책들이 무척 많았다.
사회적 고립을 자처한 채로 두 주 정도가 흘렀다. 수정해야 하는 논문, 써야 하는 초고, 준비해야 하는 학회 발표가 있어 9월 말까지 스케줄이 끔찍하다. 그래도 내일 오랜만에 필리포의 파티에 가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다음주에는 브뤼셀에 오는 옛 친구가 둘이나 있다. 작업하는 시간은 내게 소중하지만 너무 오래 몰두하다 보면 비대해진 머리통과 타자를 치느라 저릿한 손끝만 두고 다른 몸의 부위는 사라진 것 같은 감각에 휩싸인다. 작업조차 학계에 선보일 것이 아니라 다만 알 수 없는 유령과 나 사이의 고립된 대결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무섭다. 내가 외로운가 보다.
역설적이지만 타인을 향한 그리움 가운데서조차 베유의 말마따나 내 욕망 이외에도 이 세계 내에 다른 것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해야만 한다. 단순히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그러지 않는다면 철학으로는 아무리 상호주관이네 뭐네 떠들어도 실질적 유아론자가 돼버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