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햇살, 꽃, 식사. 자목련과 아네모네, 데이지, 벚꽃은 벌써 져버렸다.
동명이인인 언니들을 초대해 오픈 샌드위치를 대접했다. 과카몰레에 석류알, 구다 치즈에 연어, 고르곤졸라 치즈에 구운 바나나, 마지막으로 비트 훔무스에 소고기 안심을 올렸다. 의외로 손이 많이 갔고 장도 왕창 봐야 했지만 내가 그동안 받아온 정신적인 지지에 비하면 작기만 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더 많은 식사들. 필리핀 음식이라는 코코넛 우유 아도보, 닭갈비, 콩나물 해장국 등. 요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고 미각도 그다지 세련되지 않다 보니 그냥 혼자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일품 요리가 대부분이지만,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재미가 있다. 다음 장 보는 사이클에서는 각 언니가 추천해준 연어 오챠즈케와 셀러리볶음에 도전할 것이다.
공부와 취미. 최근 며칠동안은 박사논문의 잠정적인 목차를 짰고, 프로포잘을 완성해 행정실에 제출했으며, 새로운 컨퍼런스에 초록을 투고했다. 이를테면 레비나스, 머독, 베유에게서는 뚜렷하게 비쳐나는 윤리적 자기초월의 계기가 후설에게도 있는지 물었다. 겉으로는 ⟪존재와 시간⟫ 속 하이데거의 현존재처럼 순전히 아집 세고 결의에 찬 자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윤리학처럼 보이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런 윤리학의 한계에 대한 후설 자신의 자기인식을 읽어낼 가능성을 제시해봤다. 하지만 아주 큰 학회라 내 성찰따리를 받아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했어용.
희망과 욕망 사이에 더 근원적인 마음은 무엇일까? 욕망이기 이전에 희망이었던, 아니 희망이기 이전에 욕망이었던 바가 드디어 이루어졌다. (아주 큰 변수가 없는 한) 이제는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덕분에 여덟 시가 되도록 어두워지지 않는 하늘처럼 밝고 반짝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치한 가사로 가득해서 오히려 좋은 틴탑의 앨범을 통으로 들으며 대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털어 그 안에서 최대한 창의적이고 예쁘게 끼니를 해결하고. 맘에 드는 봄옷을 입고,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헤실거리면서 걷고. 잘 안 하던 맥주도 한 잔 하고. 아이리스 머독의 50년대 에세이를 찾아읽는데, 70년대 사유의 맹아가 이미 그 안에 담겨있어서 재밌어하고. (머독에 따르면 무려 칸트, 헤겔, 후설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조상인) 실존주의가 어떤 의미에서는 낡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영속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하고. 세속적인 삶을 살아온 나에게 은총(과 구원)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나 스스로가 성인군자가 아닌데도 윤리학을 해도 괜찮을지 걱정하기도 하고(이때는 반짝이는 시간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 0.9유로짜리 꽃을 사다가 정신을 환기하고, 화장실과 부엌에는 향초를 켜놓는다. 집안일이 나의 기도가 된 양. 아, 근데 빨래했어야 하는데 까먹었다. 양말이 동나기 전에 얼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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