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닌 코메디언 K의 분투기. 본의 아니란 사실이 이 코메디를 비극으로도 만든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돋보이는 설정은 바로 성이 자아내는 감정이 바로 우울감이라는 사실이다(2장). 슬픔도, 두려움도 아닌 우울감. 우울감은 마치 죽음이 슬픔을, 괴물이 두려움을 야기시키는 것처럼 특정한 대상의 특정한 성질로부터 개연적으로 기인하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우울감은 한두 개 대상의 조합물로 환원될 수 없는 세계 전체를 물들이는 일종의 무드이다. 이 병리적 무드 속에서 K는 자신의 처지를 '싸움'으로 규정한다. 익명적인 성의 폭력에 맞서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그런데 관청이 가하는 폭력이란 실체 있는 억압이나 추방에 대한 협박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이 불필요하고 잉여적인 존재임을 가능한 한 모든 루트로 입증해 보임으로써 우울한 수치심을 자아내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왜 나를 괴롭히나요? 하고 K가 물으면 관청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나는 네게 아무런 실질적 해도 입힌 적 없어, 네가 우울해서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야.
관청의 선고에 맞서 K는 자신이 잉여적인 존재가 아님을, 공식적으로 성에 초빙된 이로서 권리를 가졌음을 인정 받고자 한다. 권리는 그것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자를 향한 책임을 촉발한다. 권리로써 의무 지워진 자의 책임 이행과 대비되는 것은 은총에 따른 실천이다. 은총이란 정의상 의무를 넘어서는 자비의 표현이다. 책임과 달리 은총은 그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도 정당하게 요구될 수 없으며, 다만 은총을 행사할 힘을 가진 자 자신이 자의적으로만 부여할 수 있다. 자의라는 말이 중요하다. 은총에는 그 어떤 규칙도 없다. 당신이 잘해서, 기독교 용어로는 공로를 쌓아서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며 원칙적으로는 당신이 못해서, 죄를 지어서 특별히 거부 당하는 것도 아니다.* 은총은 예측 불가능하며, 은총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부조리하다.
*칼뱅의 예정설은 잔인할지언정 무척 논리적이다.
그러나 은총이 순전히 자의적이며 규칙 없는 것으로만 보이는 것은 권력 없고 인식 없는 유한자의 제한된 시선에서만 그럴 수 있다. 실제로 성의 관리와 마을의 사람 들은 성의 운영 원리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은총의 원리는 없기보다 불가해한 것이다. 규범의 불투명성은 합리적 선택이 불가능하고 무가치함을 보여준다. 나의 이치는 세계의 이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경우 보통은 은둔하거나(자신을 지킴) 타협을 택하는데(환경과 동화됨), K는 둘 모두 제 실존의 선택지에서 배제한다. 그는 성에 동화되고 싶으면서도 자기 방식을 고집하고 싶어한다. 즉 자기의 합리성이 세계의 운영 원리와 일치되기를 오만하게 희망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세계를 거부하는 고집을 피운다(17장). 그는 입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굴러들어온 모든 행운을 스스로 걷어찬다. 다리목 여관 여주인의 조언을 무시하고(6장), 촌장이 제안한 학교 관리인 자리를 당당하게 거절하며(7장), 모무스의 심문을 거부함으로써 관청의 권위를 무시한다(9장). 성에 들어가고자 한다는 사람이 성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게 보인다. 그렇게 얻는 것은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 자유"지만 "이러한 난공불락의 상태보다 더 무의미한 것, 더 절망적인 것도 없"다(8장, p. 153). 그는 타인을 모르는 유아론자, 헤겔에게서 칸트와 같은 인물처럼, 외부 현실(과 자기 희망 사이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저만의 종합의 방식으로 정복하려 드는 동일성주의자처럼 보인다.
K의 죄는 성의 원리를 감히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프리다나 바르나바스 등등을 이용해) 조작하려고 하는 합리주의자의 죄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조작하려는 사람은 조롱을 산다. 그렇기에 성에서 희극과 비극이 만난다. 카프카는 K를 절망적이기보다 우스운 인물로 제시한다. K에게 아무리 공감을 느낄지언정--매 년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나로서는 이입이 불가피하다--그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성이 부조리해보이는 만큼, K도 바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우울한 이의 고통을 세계의 잔혹함이 아니라 우울한 이 자신의 바보스러움으로 설명하려는 보수적인 해석에로 수렴한다. 궁극적으로 ⟪성⟫은 인간적 합리성이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을 들추어낸다. 한편으로, 당신의 합리성은 당신만의 합리성이기에 세계는 그것에 부응할 의무를 갖지 않는다. 세계가 그에 부응한다면, 그것은 은총의 결과이지, 당신의 권리에 따른 책임이 이행된 결과가 아니다. 당신의 자유에는 아무 정당성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은 당신의 합리성으로써 세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 의무, 아니, 그보다 더 특별하게, 권리가 있다. 당신의 자유에는 정당성이 있다. 당신은 오만한 것이 아니라 고투할 뿐이다.
카프카는 둘 중 무엇이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보다 정확하게 기술하느냐고 묻는다. 아무 대답도 제시하지 않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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