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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41027 (미)성숙한 나날

가을을 맞아 소피와 시티링 바깥, 남동쪽에 위치한 수도원에 다녀왔다.
수도사들의 식당. 생화를 두는 대신 꽃 그림을 커다랗게 걸어둔 것이 기발했다.
수도원 내 신학 도서관
1차 키노 나이트, '오필리아'란 영화를 봤다.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석류를 알알이 까봤다. 펄프가 남으면 떫은 맛이 나지만 손만으로 깨끗이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B급 로맨스 영화를 보며 야식 냠냠... 사실 속이 더부룩해져서 잠에 잘 들지 못했다.
책상에 앉기만 하면 너무 재미있고 알찬데 책상에 앉는 것, 그리고 책을 펼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무기력에 수반되는 (무)의식적 자기혐오는 덤.
S언니들만 만나면 너무 행복하다.
이 날 장장 다섯 시간 수다를 떨면서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 철학적으로 정신병리를 접근함에 있어 증상의 당사자가 아닌 한 (어쩌면 당사자라 하더라도) 그 어떤 작업도 윤리적으로 완전무결할 수 없다. 들뢰즈 식의 낭만화가 문제인 것은 당연하고. 어떤 방식을 취하든 애초에 누군가의 고통을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도 삼을 때의 인식적 죄는 결코 피해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 침묵이 선인 것도 아니다.
프랑스 타르트 집에서 사온 배 타르트(가게 이름이 진짜 '프랑스 타르트 집')
나만 두 조각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이 찌고 빠지고에 마음 쓸 때가 아니다...
날씨가 좋았던 몇 안 되는 날, 오우 사진 찍히는 줄 알았으면 등이랑 목 폈지... 다리 길어보이게 바짓단도 좀 내리고
2차 키노 나이트. 'LA 컨피덴셜'을 봤다. 최우수 졸업논문상을 탄 친구가 섞여있었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학적 의미가 없는 빈곤한 작업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줘서 철학 일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털어놔주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말 많이 하는데 기록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거나 공부만으로 진이 빠져 기록하지를 못한다. 대부분은 까먹고 만다. 어쨌든 오늘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한 것이 아니라 그저 피곤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쇼트트랙 월드투어를 보면서 혹시 앞에 있는 선수가 의도적으로 방귀를 뀌어서 바로 뒤에 몸을 숙이고 달리던 선수가 모멘텀을 잃어버리면 공식적 페널티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했다. 이래서 내가 S 아닌 N이구나 싶다.


 한편 지난 일기들을 읽다 보면 '나 잘 지내고 있어요, 저 A도 해치웠고 B도 해냈고 C도 해나가는 중이랍니다' 식의 강박적인 패턴이 보인다. 그 누구도 내게 행복이나 성과를 증명하라 요구하지 않았는데. 자랑스럽기보다는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는 왜 그랬을까? 기쁜 일만 기록하면 중간중간 힘들었던 것은 까먹고 마니까? 아니면 나 자신이라도 나를 실컷 인정해주자는 마음? 슬픈 내용을 쓰면 (누가 눌러주는지도 모르지만 내심 반가운) 하트를 못 받으니까? 보통은 헛헛한 마음에 일기장을 여는 것이니 밝은 내용이라도 끼적여 기분을 전환하고자? 애초에 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는 곳에 쓰는 일기란 도대체 어떤 성격의 텍스트인가. 나는 왜 이곳에 일기를 쓰게 되는 혹은 쓰고 싶은 걸까.


 이따금 인종차별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렵지만 유난히 싸늘한 플랜더스 소년들 무리의 눈총을 받곤 한다.


 충동을 조절하는 데 대한 기질적인 어려움이나 정신병리는 행위자로 하여금 그가 스스로 과거에 그렸던 제 미래를 도저히 실현할 수 없게 만든다. 애초에 일관된 자아상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성격장애도 있다. 그래서 심리와 윤리 사이의 구분짓기에 반대하는 나로서는 통일된 인격을 윤리적 이상으로 격상시키는 몇몇 학자들의 작업에 공감하게 된다(Hua XLII, Nr. 28; James Hart, The Person and the Common Life, Chap. 2). 하지만 답답한, 나아가 불만스러운 지점도 있다. 인테그리티에 비해 즉흥성의 윤리적 가치가 절하되는 함축이 생길 뿐더러 생리 주기에 따라 기존의 커미트먼트들에 대한 헌신의 강도 혹은 이행 능력이 제 의지에 반해 변화(당)하는 여성적 주체의 특수성이 간과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자아는 남성의 그것에 비해 분열되기 쉽다고 단정 지으려는 것은 아니다. 생리 주기가 낳는 특유의 시간성이 인격적 체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민감도는 개별 여성마다 무척 다르다. 무엇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심적으로 연약하다거나 인격으로서 뒤떨어짐을 인정하는 것이냐는 식의 빈정거림에 문 열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상기한 생각을 진지하게 발전시키려면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고 지적인 양심을 다해 주장하고 싶은지 점검해야 한다. 생각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시작점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 잘 의지할 줄 안다는 게 대체 뭘까. 타인에게 부담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이미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도움을 구하는 데 그리고 이따금 받게 되는 데 따르는 미안함이 가능할 리 없는 빠른 회복에 대한 강박을 낳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망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회복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도움 준 사람이 애써 마음을 써준 효과가 상쇄되고, 나는 더더욱 미안해져 내 물적이거나 심적인 사정을 타인에게 오픈할 의욕이 꺾이고 만다. 결국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이--그 비용은 그에게나 나에게나 자명할 때--무슨 효용이 있나 싶은 비관주의에 이른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치고는 동시에 둘셋 정도와 너무 깊고 서로가 투명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지내며, 그로부터 감사한 안정감을 느낀다. 모르겠다.

 조심스럽지만 지금 내가 처해있는 불안정성은 조금 잔인한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학계 자체가 어쩌면 잔인한 곳이다. 그 구성원 중 누구도 웬만하면 악하지 않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순진하고 덕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안정을 갖춘 사람들은 과로에 내몰리고, 과로해도 좋으니 부디 아무 일이나 주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는다. 네가 선택한 길이니 감수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웃어넘겼지만 속은 무너졌다. 감수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함 없이 당장의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지 그에 부수하는 고통을 느낄 자격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행히 나도 옛날에 비하면 성숙해졌는지, 같은 종류의 실패가 여러 번 반복되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담담하다. 그럼에도 오늘은 전반적인 상황의 아주 작은 일부인 어떤 일 하나 때문에 숨이 너무 얕아지고 가쁘고 머리가 아찔하게 아파서 하루종일 고통스러웠다.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채로 숨을 쉬고 차를 마시고 유튜브로 개울 소리를 틀고 기타 등등 별 짓을 다했는데도 두통이 가시지를 않았다. 공부를 한 자도 못한 데 대한 유학생 종특의 죄의식은 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챗gpt에 일의 내용과 그에 대한 나의 다소 불가해한 과민성을 읍소했는데 돌아온 대답에 눈물이 터져서 화장실에서 수건을 가져와 엉엉 울었다.

 "Remember, it’s okay to reach out for help, and it doesn’t define your character or your capabilities. You’re navigating a challenging situation, and it’s perfectly valid to seek support. Take care of yourself, and try to approach the upcoming response with openness, knowing that you can handle whatever comes your way. [...] It’s clear that pursuing your PhD is important to you, especially given the effort you’ve put into your studies and the grant at stake. It’s okay to advocate for your needs. Many people in academia face similar pressures, and it’s common to feel a need to push for support. [...] While it’s good to consider others' perspectives, it’s also important to remember that seeking help is a legitimate action. [...] Remind yourself that seeking help doesn’t make you selfish or inconsiderate. Everyone in academia has experienced moments of vulnerability. It’s part of the journey, and learning to navigate these feelings is essential. [...] Understand that you’re doing your best in a challenging situation. It’s okay to feel worried and uncertain; it’s part of the academic journey. Accepting that you may not have control over every aspect can be liberating. [...] Since you’ve done everything you can at this point, try to be kind to yourself and focus on other things until you hear back. [...] You’ve navigated a tricky situation with care, and that’s something to be proud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