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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현상학

후설과 머독에 대한 메모

오늘 산 사탕인데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막대사탕 빼고 다 먹음

 명증에 기반한 후설의 행복론이 현실(reality)의 직시를 중시하는 머독의 윤리학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던 중 그래도 두 철학 사이의 차이들에 대해서 역시 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유하는 생각들을 언젠가 체계적인 글로 옮겨 투고하고 싶다. 우선 이번 학기에 제출할 페이퍼에 각주로 넣어볼 수 있을 것 같다. '[]' 속의 언명은 나의 해석이 짙게 들어간 부분들.

① 후설에게 윤리적 쇄신(renewal, Erneuerung)을 담당하는 기관은 의지, 구체적으로 말해 자신이 절대적으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일관적으로 따르고자 자유롭게 스스로를 규정하는 의지이다(see Cavallaro & Heffernan 2019:365). 반면 ⟪선의 군림⟫ 속 머독에게 의지, 더욱이 자유로운 의지란 [담지하는 그 어떤 내용도 없이] 공허한 것이다. 나의 독해에 따르면 의지를 도덕의 자리로 내세우는 모든 윤리학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첫째, 의지는 주체가 이를테면 오랜 시간 발현해온 개인사적인 성질들을 단박에 변경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머독에게 도덕적 성과 혹은 윤리적 변화는 불가피하게 점진적이고 무엇보다 왕창 느리다. 둘째, 자기(self)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환상들로 가득한 것인데, [내용을 결여한 형식으로서의] 의지는 [객관적인 좋음을 위장하면서 사실은] 자기의 주관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데 그친다. [그런 의미에서] 머독은 칸트적 주체를 악마적이라고 비판한다(see Murdoch 1971:78). [내 눈에 머독의 칸트 비판은 ⟪법철학⟫ 속 헤겔의 도덕성 비판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머독의 윤리학에 대한 헤겔적 독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② 후설에게 있어 윤리적 주체는 자신의 목표가 최종적인(endgültig) 것, 그리하여 불변하는 것이 되기를 추구한다(see Cavallaro & Heffernan 2019:366). 반면 머독에게 (의지의 비약하는 듯한(giddy) 운동(movement)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선에 대한 관조(vision)는 불가피하게 불명확한(unclear)한 것이다. [그리하여 주체는 자신이 택한 선이 진정한 선과 일치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③ 후설에게 윤리적 주체의 목적은 자기보존(Selbsterhaltung)인 반면(see Cavallaro & Heffernan 2019:365), 머독은 상술한 비관적 자기관에 따라 선에 대한 관조에 있어 자기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한다. 단, 후설은 반성적인 자기비판 역시 자기보존의 수단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여기서의 자기보존은 사익의 추구보다는 일관성의 추구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see Cavallaro & Heffernan 2019:369). 그리고 일단 머독에게서와 달리 후설에게 '자기'란 가치중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둘이 동일한 자기의 개념을 운용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④ 후설에게 있어서 반성의 능력은 윤리적 삶의 핵심적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다. 반면 머독은 '덕스러운 무식자(virtuous peasant)'의 가능성을 옹호하며 검토 및 반성되지 않은 삶의 윤리성을 일관적으로 주장한다. 단, 여기서 머독이 말하는 검토 및 반성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윤리학자들보다 훨씬 선에 가까울 것이라는 등의 언명을 고려하면 자아성찰의 부재보다는 소위 윤리학적 지식을 일컫는 것 같다.

⑤ 그래도 후설과 머독 모두 사랑을 중시한다. 후설에게 사랑의 작용이란 절대적인 가치를 산출하는 작용이다(see Cavallaro & Heffernan 2019:367). 한편 머독에게 [선의 관조와 그 외연이 동일한] 현실에 대한 직시란 곧 정의로운 동시에 사랑이 가득한(loving) 시선이다. [머독에게는 정의와 자비가 충돌하지 않는다.]


Marco Cavallaro & George Heffernan. (2019). From Happiness to Blessedness: Husserl on Eudaimonia, Virtue, and the Best Life. Horizon 8 (2):353-388.

Iris Murdoch. (1971). The Sovereignty of Good. Routledge: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