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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00912 희망과 불안에 대해서

 희망으로 가득찰 땐 미래라는 자유를 사랑하게 되지만 불안이 엄습해오면 미래로부터의 자유를 사랑하게 된다. 슬픔은 희망보다 불안이 우리의 삶에 훨씬 흔하고 잦다는 데 자리한다. 희망은 삶의 순간들과 단지 우연히 병존하지만 불안은 모든 순간들이 그에 속박되는 삶 그 자체에 깃들어있다--라고 써놓고는 과연 확실한 말인지를 곱씹는다. 그 반대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거의 비슷한 확실성을 내세우면서, 불안이야말로 삶의 우연이고, 희망이 필연의 육화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삶의 운명 같은 것은 정해질 수 없으며, 정해진다 한들 무한히 해석돼버릴 수 있고, 그 수많은 해석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이 본래 지녀야 하고 지닐 수밖에 없는 내용 같은 것은 희석되다 못해 자취를 감춘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희망을 가질지 불안을 가질지 정해져있지 않음을 안다. 내가 미래에 대한 태도를 정함에 있어 절대적인 선택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이 곧 삶의 텅 빈 형식임을 이성적으로 간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 쪽을 더 자주 선호해버리는 일을 체험하며, 따라서 내 이성이 내 안에 자리하는 여러 힘들 중에서 그다지 강하지 못한 축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데, 그래도 이런 자기성찰을 해낼 정도로는 강하다는 데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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