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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se

Phu Quoc

20221223 비좁기로 악명 높은 비엣젯 에어를 타고 현지 시각 새벽 여섯 시, 푸쿠옥에 도착했다. 잠을 거의 못 잔 상태로 몹시 피곤했지만 날씨가 따뜻한 곳에 오니 신이 났다. 호텔 체크인까지 시간이 떠 얼리 모닝 투어를 다녀왔다. 가장 먼저 역시나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고—언니와 엄마는 고수풀을 넣어 먹었지만, 나는 예전에 두드러기가 난 적이 있어 참았다—도시의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연유 넣은 베트남 식 커피를 마셨다. 바다를 구매한다는 개념이 알쏭달쏭했지만 해변가를 따라 리조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호곡사’라는 절에 가기 위해 다시 차에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호텔들이 한가득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 개발중인 도시인지라 쓰레기가 날아다니는 허허벌판 바로 옆이 번지르르하다는 점이다. 허허벌판 옆이 번지르르. 푸쿠옥을 열 자로 요약한다면 이 말이 될 것 같다. 호곡사는 대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절이었는데, 잠자리가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한 바퀴 둘러보는 도중 검은 개 한 마리가 자기 새끼인지 쥐인지 모를 어린 동물을 입에 물고 연꽃 화분 뒤로 사라졌다. 신발을 벗고 가장 큰 부처상이 있는 곳 안에 들어가 이런저런 기도를 했다. 기도가 정신건강에 좋은 이유는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세계의 시나리오에 대해 상상하고 무엇보다도 언어화해보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멀리서 건강하게 해주세요. 유학생활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작품세계를 가지고 죽게 해주세요, 등등.

 가슴을 희망으로 부풀린 뒤 또 다시 투어밴을 타고 차창 밖의 풍경에 집중했다.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열성인 카페들—재밌게도 핸드폰은 ‘fone’이라고 쓰고 카페는 ‘caphe’라고 쓰는 것 같다—그리고 간판을 대신하는 타이거 맥주의 광고판—타이거 맥주는 심지어 베트남 맥주도 아니다—이 인상 깊었다. 또 너덜너덜하지만 제 구실을 하는 해먹들과 여전히 애용되는 갓 모양의 전통 모자 농. 계단가 그늘에 앉아 더위를 쫓으려는 노인들, 사이공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 마사지를 받고 점심으로 분짜를 먹은 다음 마트에 들러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사들고 호텔에 들어왔다. 로비에 펠리스 나비다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저녁을 대충 떼운 다음 해먹에 드러누웠다. 야자수 나무 아래 누우니 거대한 이파리들이 나를 보호해줄 것만 같았다. 살랑거리는 긴 잎새들. 몽글몽글 부드러운 바람. 사랑하는 친언니의 웃음소리. 어제까지만 해도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한파를 맞았었는데, 패딩 대신 오늘은 꽃무늬 원피스 차림.

20221224 잠을 실컷 잤고, 이마와 팔꿈치에 모기를 물렸다. 아침으로 미니 바게트에 버터와 구아바잼을 발라먹었다. 살라미에 구다 치즈, 에멘탈 치즈를 곁들이기도 했다. 새로 사온 남색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배수아의 단편집을 덜렁덜렁 들고 바다로 나갔다. ‘양곤에서 온 편지’를 읽으면서 이렇게 구성이 엉성하면서도 매력적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작가정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쓰기의 기술이랄지 이런저런 장치 같은 것이 필요하지만, 작가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위기와 흐름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바닷물은 깊어질수록 따뜻했다. 햇볕이 강해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도 물이 금방 말랐다. 점심식사는 파라솔 아래 누워 땅콩과 커피로 대신했다. 마트에서 불그스름한 땅콩을 한 보틀 샀는데 양념치킨 맛이 난다. 등 뒤로 아빠가 코코넛 워터를 마시면서 파친코를 읽고 있다. 온 가족이 휴가를 온 것은 7년만이다.

 저녁에는 야시장에 가서 진주를 잔뜩 구경하고 두리안과 완두콩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20221225 아침으로 말린 무화과를 요구르트에 넣어 먹고 해쉬 브라운, 베이컨, 치킨 소시지까지 해치운 다음 스노클링에 도전하기 위해 투어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의 옆자리에 앉으신 분께서 독일인이신 것 같아 먼저 말을 걸었고,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성함은 브룬힐데. 클래식한 이름이 아니냐고 여쭈니 니벨룽겐 이야기—순수한 판타지가 아니라 ‘자게(Sage)’라고 강조하신—를 해주셨다. 푸쿠옥에는 일주일 머문다고 하셨다. 마지막 인사로 구테 라이제를 외치고 헤어졌다. 

 처음 해본 스노클링은 정말 재미있었다. 오직 나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 내 아래로 산호밭이 펼쳐졌다. 죽순 같은 산호, 미로 모양의 산호, 조각도로 투박하게 깎은 비누처럼 생긴 산호, 점박이 산호, 노란 술이 수천 수만 개 살랑거리는 산호까지.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반투명한 바닷속에서 수영도 하지 못하는 몸으로 필사적으로 움직여가며 정경을 눈에 담았다. 몇몇 순간에는 내 숨소리마저 잦아들고 시각만을 가진 동물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스노클링을 마친 뒤에는 두부와 오이절임, 생선조림 따위를 점심으로 먹고 메이룻이란 이름의 작은 섬에 들렀다. 해변가 선베드에 드러누워 미지근한 코코넛워터를 마셨고, 언니와 다나카상의 성대모사를 하면서 깔깔 웃었다. 다시 배를 한 시간, 버스를 삼십 분 타고 숙소에 돌아와서 몸을 씻으니 너무나 개운했다. 호텔에서 붉은 양말에 크리스마스 쿠키를 넣어줘서 야금야금 먹었다. 그러고 나서 또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배가 터질 것 같다.

20121226 체크아웃하는 날이어서 마지막으로 혼자 해변에 나갔다. 태양이 내리쬐는 바닷속에 웅크리고 있으니 내가 가족이나 사회의 일원이기 이전에 자연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썬다운'이라는 영화에 대해 혹평 아닌 혹평을 남겼던 것이 생각났다. 죽기 직전의 남자가 거액의 유산을 거절하고, 가족간의 의리마저 저버리고 미움과 오해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마지막 나날들을 바닷가에서 제멋대로 보내는 내용의 영화였다. 왓챠피디아에 '어른이라고 해서 무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른이기 때문에 의미연관의 강제에 성숙하게 순응할 뿐이다. 하루아침에 유치해진 남자에 대한 잔잔하게 잔인한 이야기. 그에게 공감한다면, 유일한 이유는 저 강제가 인과적 강제가 아닌 규범적 강제에 불과하며, 규범의 힘은 미친 듯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적었었는데, 남자가 지나치게 와가마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만일 공동체의 속박보다 자연의 포용이 앞선다면 그 남자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최종적인 직관은 그래도 공동체라든지 관습, 계급, 사회적 경제 따위가 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할 일 없이 거닐며 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부 그리고 부를 거부할 기회가 주어졌음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새삼 맞다, 나의 뿌리가 사회학에 있었지 싶다.

 돌아오는 기내에서 배수아의 단편집을 마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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