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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21204 그간의 사진들

 뗀뚜댕이 J씨께서 생일선물로 플라톤의 ⟪뤼시스⟫를 주셨다. 언젠가 어디 동굴 같은 곳에 소울메이트와 함께 들어가 얼굴을 맞대고 플라톤의 대화편을 정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철학을 좋아하면서 플라톤과 마음이 맞지 않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렇지만 외로운 건 또 싫으니까, 꼭 소울메이트와 함께.)

 엄마와 매주 화요일 필라테스를 다닌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정말 지옥 같지만 막상 하고 나오면 더없이 뿌듯하다. 필라테스라도 하지 않으면 내 몸은 석고상처럼 단단히 굳어 책장조차 넘기지 못할 것이다.

 꾸역꾸역, 정말이지 꾸역꾸역 프루스트를 읽고 있다. 비유가 복잡하고 악명 높은 만연체인지라 정보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다. 하지만 가끔씩 정말 보석 같은 표현들을 만날 때마다 아, 이런 게 대작가의 글이구나 싶다. 로베르 생루라는 인물에게 특히 마음이 간다.

 집 근처 뒷골목에 남미풍의 에스프레소 바가 생겼다. 미지근한 온도의 코르타도를 서빙하는데, 꼬끼또 과자와 함께 먹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연구실 사람들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철학도' 컨셉트로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는 깔깔 웃었다.

 S 오빠와 경리단길에 다녀왔다. 커다란 소식을 들어 어쩔 줄을 몰랐다. 많이 많이, 진심을 다해 축하해줬다.

 연구실 분들과 돌아가면서 서로의 동네 탐방을 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M씨의 동네 카페에서 다 함께 공부를 하다, 나 혼자 슬쩍 빠져나와 주변의 미술관에 들어가봤다. 거울의 반사 효과를 이용한 작품이 있었다.

 유행 따라 산 아디다스 신발. 색깔이 쨍하지만 어디에나 은근히 잘 어울려 거의 매일 같이 신고 있다. 치장은 나의 기쁨 중 하나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멋쟁이 선배 M과 근황을 나누고 카페에서 함께 공부했다. 나와 같은 낭만파라 그런지 그의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재미있다. 언젠가 함께 전시를 보러 가서 전공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다른 한편 신체의 확실성에 대한 후설의 견해 변화와 관련된 페이퍼 초고를 완성했다. 투고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지도교수님의 코멘트를 우선 기다려봐야겠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머리를 말리지 않는 습관을 고치려 하고, 야심차게 산 방한모를 쓴 채 거리를 쏘다닌다. 프루스트 세미나가 쉬는 틈을 타 다시 한국소설을 읽고, 간간이 영화도 보고 있다. 시드니 루멧이란 감독을 알게 되었는데 찾아보는 작품마다 감탄하게 된다. 작품세계라는 것을 가진 그를 동경한다. 또 뭐 하면서 살지, 나. 사과나 마차와 같은 일상적 대상의 직접적 지각 여부에 대한 버클리의 견해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가끔은 철학만 하고 사는 일상이 지루하다. 그러다가도 그만한 축복이 없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오락가락하지만 정해진 범위 안에서만 오락가락한다. 그 범위의 한정성이 나를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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