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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번역

에드문트 후설, <암스테르담 강연> §7 일부 번역

E. Husserl (Hrsg. von W. Biemel), Phänomenologische Psychologie, Springer, 1968(Hua IX), s.317-319

 지평의식의 발견은 현상학자로 하여금 직관된 것에 대한 기술을 넘어 직관되지 않은 것을 해석/구축하게 만든다. 지평의식 자체는 공허하지만, 해석/구축자는 그 공허한 것으로부터 현실적이 될 수 있는 계기들의 다양체가 무엇일지를 재현작용(상상/기억/기대 등)을 통해 해석/구축한다. 이로써 현실적인 지각의 지평은 가능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지각에 대한 기대들로 이루어져있음이 드러난다. 


 지향적 분석은 그러므로 그 방법론과 성취에 있어서 실재적 소여들에 대한 분석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지각된 것을, 이를테면 지각된 집을 그 자체로 현상학적 관점(Absicht)에서 서술함(beschreiben), 바로 통찰되듯이 다양한 특수화(Besonderung) 속에서이기는 하지만 모든 노에마에 필연적으로 속하는, [그런] 다양한 기술적(deskriptiv) 차원들을 추적함[이 지향적 분석에 속한다].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노에마의 존재적(ontisch) 구성요소에 시선을 겨누는 것이다. 집 자체를 고찰하면서 우리는 그러면 집의 징표들[특징들]을 추적하고 당연히 이러한 지각함에서 현실적으로 몸소(selbst) 보여지는 것만을 배타적으로 추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과 같이 표현하면, [즉] 그에 대해 우리가 지각된 집이 현실적으로 지각된 계기들을 넘어서도 다양한 다른 계기들을 단지 지금 당장은 포착되지 않는 [식으로] 가진다는 것을 하나의 자명한 [사실]로서 말하면 이러한 말의 근거에 대한 물음은 곧장 다음과 같은 사실로 이끌어준다. [바로] 지각된 집의 노에마에 하나의 지평의식이 속한다는 사실로, 즉 본래적으로 보아진 것은 그 자신의 의미에 따라서 그 자체로(in sich) 규정들의 열려있는 더[-있음]을, 보아지지 않은, 부분적으로는 알려진, 부분적으로는 미규정적이고 알려지지 않은 규정들을 지시한다는(verweisen) 사실로 말이다. 그런데 분석은 거기서 [멈춰]서있을 수 없다. 즉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자라난다. 의식현상에 속하는 선지시(Vorweisung), [곧] 이러한 지평의식이 실제로 같은 것의 나아간, 본래적으로 경험되지 않은 특징들을 지시한다는 것은 어떻게 명증해지는가? 이는 이미 하나의 해석, 쉽게 확정할 수 있듯이, 비직관적이며, 즉자대자적으로 공허한 “지평의식”이라는 체험계기를 넘어서는 그런 해석이다. 그러나 우리는 즉시 주어진 지각으로부터 [어떤 다양체에로,] 명증적인 탈은폐 또는 충족으로서 재현들(Vergegenwärtigungen)*의 한 연속체를 통해 제공되는 [그런] 다양체에로, 가능하게 미리-그려지는 새로운 지각들로서 끌어들여진다: —하나의 종합적으로 연결된 그리고 결합된 재현의 사슬, 그 속에서 우리에게 지각의미에 부착된 공허지평이 실제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자신 안에 지각의미를 담지한다는 것이 명증해지는 그런 사슬[에로 끌어들여지는 것이다]; 공허지평이 실제로 새롭고 새로운 계기, 지각된 것에 그 존재에 걸맞게(seinsmäßig) 귀속되는 계기에 대한 기대하는 선지시라는 것이 우리에게 명증해지는 [그런 사슬 말이다.] [이 선지시는] 아직 무규정적으로 그러나 규정 가능하게 등등 [이루어진다.]

*Q. 어떤 재현작용이 지평의 구성성분을 외현하게 해주는가? 상상? 기억? 기대? 모두?

 지향적 의미의 외현(Explikation)은 그러므로 이미 직관적으로 확보된(belegt) 의미에 대한 외현으로부터[,] 지평외현(기대들의 외현)이라는 표제 하에서 동일한 것에 대한 가능한 지각들의 본질적으로 [같은 대상에] 귀속되는 종합적인 다양체에 대한 구축(Konstruktion)에로 나아간다. ★우리는 가능한 지각들의 사슬을 구축적으로 생산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대상을 지각하면서 계속해서(immer mehr) 나아갔을 때 대상이 어떻게 보여질 것이고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지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때 또한 명증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 계속해서(fortgesetzt) 달라진다는 것이다. [곧] 단적으로 말해진 동일한 집, 동일한 존재적인 것(가능한 다양한 노에마들의 사슬[에서]의 동일한 것으로서) 그리고 직관적인 현실화(Verwirklichung)의 어떻게에서의 “집”(“Haus” im Wie)[이 계속해서 달라진다]. 동일한 집에 대한 지각함의 모든 개별적인 것(einzelne)[동일한 집에 대한 각각의 지각]은 [그] 동일한 것을 하나의 주관적인 어떻게(Wie)에로 가져오며, 즉 현실적으로 보여진 그것[대상]의 규정들의 다양한 구성요소와 함께 그렇게 한다. 유사한 점이 외부 지각의 노에마의 [또] 다른 기술적 차원들, 예를 들어 관점(Perspektive)이란 표제의 차원에서 유효하다. 

 지각된 사물로부터 현실적으로 직관에로 가져와지는 것은 모든 본래적으로 직관적인 계기가 그 자신의 소여방식을 가지는 방식으로 [직관에로 가져와진다]. 예를 들어 [특정 계기는] 그때그때마다의 관점에서 [특별히] 시각적으로 주어진다. 이때 관점은 즉시 계속해서 동일한 것에 대한 가능한 새로운 관점들을 지시하고, 우리는 다시금, 단지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겨누면서, 가능한 지각들의 체계 속으로 끌어들여진다.

 다시금 또 다른 기술적 차원이 현출양태들, 동일한 것에 대한 지각, 파지, 재기억, 선기대 등 사이의 본질적으로 가능한 차이들을 통해 규정되는 그런 현출양태들과 관련된다. 이것 또한, 보여지듯이, 지향적 외현의 한 종류에로 이끌어주는데, 그때그때마다 주어진 체험을 구축적으로 넘어서 이끌어주며, [동일한 대상에] 귀속되는 종합적인 다양체들의 구축 속에 존립하는 방법론적인 해명들 속에서 그렇게 한다. 다시금 동일한 것이 의미질료와 타당성양상의 분리를 통해 특징지어지는 기술적 차원에서도 유효하다. 이 모든 차원들은 지평에 걸맞게 규정되며 지평의 탈은폐를 그리고 그를 통해 명료해지는 의미차원들, 의미단계들의 탈은폐를 요구한다.

 현상학적 심리학에 속하는 그리고 정말로(in Wahrheit) 고갈되지 않는 지향적 분석의 과제가 객관적인, 이를테면 자연적 권역에서의 일상적 분석과 전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명증하게 만드는 데는 이로써 충분할 것이다. 지향적 외현은 해석하는 노에마적-노에시스적 밖으로-꺼내놓기라는 특종의 본질특유성을 가진다(Intentionale Explikation hat die einzigartige Wesenseigenheit einer interpretierenden noematisch-noetischen Auslegung). 직관적인 구체자의 특징해부라는 한갓된 의미에서가 아니라 확장된 의미에서 해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