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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번역

에드문트 후설, <타당성구조로서의 존재의 구조> 번역

Edmund Husserl, Zur Phänomenologie der Intersubjektivität. Texte aus dem Nachlass. Dritter Teil: 1929-1935. Hrsg. v. Kern, Iso, 1973(Hua XV) Beilage XLII(1932), s. 590-592. 모든 밑줄과 강조는 필자에 의한 것이다.

[590] 타당성구조로서의 존재의 구조(1932)

 나의 지향적 삶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타인과 함께이며, 나는 세계지평의 모든 변화[Wandlung], 나를-위해-존재함의 모든 변화 그리고 '존재자'의 의미 자체의 모든 변화 그리고 존재하는 세계와 존재하는 모나드들의 모든 변화 등을 나 자신으로부터, 나의 삶으로부터 획득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나는 나의 존재를 운동 속의 존재로서, 내 존재할-수-있음[Seinkönnen]과 될-수-있음[Seinwerden]의 열린 지평과 함께인 존재로서 가진다. [나의 존재는] 소박한 사물파악의 [대상인] 굳어진 사물이 아니며, 그것처럼 절편들과 계기들을 가지고 단번에 끝이 날 수 있으며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불변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nicht wie das ist, seine Stücke und Momente hat und so fertig ein für allemal mindestens ideell unverändert dauern könnte]. 나의 고유한 삶은 그것의 흐르는 지금-삶(그 속에서 내가 숙고하는)의 필증성 속에서[흐르는 지금-삶에 의해 필증적으로] 지향적으로 모나드로서의 나의 존재를 초월론적-모나드적 열린-'무한한', 전체모나드적 시간성 속에서 함축하며 이러한 지평적으로 함께 귀속되는 모나드의 모든 존재들을 함축한다. 모든/각각의[jeder] 이러한 모나드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을, 나의 존재 등등을 자신 속에 [포함하여] 함축한다. 그러므로 나의 초월론적 시작과 끝은 지금 현재의 양태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내 안에 [지평적으로] 포함되어있다. 동일한 모나드가 모나드적 시간양상성의 양태들 속에서 구성된 통일체이며 모든 모나드가 그러하다[so]. 모든 모나드가 각각의 모든 다른 모나드, 그리고 그것의 태어남과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함축하면서 그렇다. 존재에 걸맞게[Seinsmässig], 나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있는 모든 타인을 위해 구성된 것에 따라서[Seinsmässig, nach dem für mich und für jeden Anderen, der für mir ist, Konstituierten]: '내실적으로'[는] 분리되어-있음[ein Aussereinander] 그리고 의식적으로, 정신적으로[는] 서로-안에-있음[ein Ineinander]. [이] 두 가지 것들은 상관적인 두 면모들이다. 그 자체로[in sich] 하나의 보편적인 지향성, 나로부터 타인의 속으로 경과해[들어가]고 나로부터 나와 그리고 모든 타인과 마찬가지로 관계하는 보편적 지향성의 중심으로서의 타인을 구성하면서. 이 모든 것이 그러나 그 자체로 내 안에서 존재타당성으로 오고[그 존재가 타당해지고] 그리고 내 안에서 그것의 존재의미가 온다[All das aber selbst in mir zur Seinsgeltung kommend und seinem Seinssinn].

 그렇게 나는 나에게 타당한 존재의 관점에서 세계를 가지며, 초월론적으로 시간적 분리되어-있음 속에서 모나드전체[das Monadenall]을 가진다. '즉자적으로[an sich]' 존재하며, '모두'를 위해 존재하고, '단번에[ein für allemal]' 증명 가능하며[bewahrbar], [591] 바로 거기서[da eben] 모나드들과 모나드적 삶의 모나드적 자아주체인 서로를-위해-있는[füreinander] 존재자들의 인식관계성들과 실천적 관계성들 속에 존재하면서 그렇다.* 인식관계 자체, 각 모나드의 인식함은 그것에[모나드에?] 귀속되는 모나드의 존재의 한 계기이다. 그 존재 속에서 모나드는 지향적으로, 인식하면서[,] 다른 모나드를 사념하면서[meinend] 자기 자신을 넘어서 스스로 뻗어나간다. [저] 다른 모나드들은 [뻗어나가는] 모나드에 내실적으로[는] 바깥에 [reell ausser] (초월론적으로 외부는 시공간적 외부가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즉자적으로 관계되어있다.

*Q. 이 문장은 '나'에 적용되는가, 세계/모나드 전체에 적용되는가?

 ★다른 한편으로, 내가 이미 나의 바깥에서 세계를,  공간적으로 실재적인 것과 모나드적으로 실재적인 것을 타당성 속에서 가진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존재가 나의 의식과 나됨[Ich-sein] 이전에 있지 않고, 나의 의식과 나됨 자체로부터 그리고 나의 의식과 나됨 자체 속에서 자신의 의미와 타당성을 얻으며, 내 안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본다.*

*세계와 상호주관성의 존재는 필증적이다. 단, 그것의 존재타당성과 존재의미는 내 안에서(적극적으로는 나에 의해, 소극적으로는 나를 매개로만/나의 관점에서만) 구성된다. 

 과거는 현재 속에서 구성된다. 공간, 시공간성은 원초적으로 구성적 구조물로서 나의 흐르면서-'모나드적인' 내재적 존재(모나드들의 세계 이전의 '모나드', 아직 복수형을 가지지 않는 모나드) 속에서 구성된다. 나를 위한 타인은 이러한 근거에서 나의 이미 나의 속에 구성된 심리물리적 원초적 존재의 반복[Wiederholung]으로서 구성된다. 나의 과거는 즉자적으로 존재하며 내 현재의 절편이 아니다. 나의 타인은 즉자적으로 존재하며 내 에고의 절편이 아니다.

★Q. '즉자가 구성의 산물'이라는 테제는 자체적으로 모순 아닌가?

 사람들은 묻는다: 그러나 나의 탄생 이전에, 그러므로 나의 모나드 이전에 존재한 것들이 어떻게 나의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가? -- 이는 이성적인 질문인가? 객관적-시간적 현재존재와 과거존재가 내재적인 현재존재 및 과거존재와 동일한 것인가? 내재는 시간적인 이전을 가지는가?[Hat Immanenz ein zeitliches Vor?] [가지지 않는다.] 통각, 그를 통해 내재적 시간성, 흐름시간성 등이 세계시간으로서 통각되는 그런 통각은 그러므로 새로운 것이 아닌가? 아직 모나드시간 속 모나드가 아닌 근원모나드적 흐름, 본원적인[urtümlich] 흐름들은 세계시간 속에 있지 않다. 세계시간 속에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시간화된[verzeitlicht] 모나드들이다. 초월론적 시간성 또한 현상학하는 나와 우리에 의해 구성된 구조물이다. 왜 초월론적 해석[Interpretation]을 필연적으로 관철해야 하는가? 초월론적 초월세계[Überwelt]를 자연적 의미에서의 세계의 토대에 놓이는 것으로서 구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했는가? 초월론적 초월세계는 곧 타당성구조에서 즉자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서 토대에 놓인다. 같은 이야기가 모나드'세계'의 존재가 즉자적으로 더 이르다[früher]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즉자적으로 최초의 것은 나, 이러한 지금 생동적으로 흐르는 현재(본원적 흐름)이다.*

*생동하는 현재 -- 구성 --> 초월론적 초월세계 -- 세계화통각 --> 자연적 세계

 하나의 타당성구조, 자아로서의 내 존재의 구조 그리고 상관적으로 나를 위해 이용 가능한, 눈앞에-있는 것들로서 비자아로서의 나의 존재자, [인간적] 인격들 가운데 [한] 인간적 인격으로서의 나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자들의] 구조 그리고 실재성들의 세계[Welt der Realitäten]인 세계라는 우주의 구조, 인격들의 우주를 위한 상관자로서 눈앞에-있는-것들의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인격들이 서로-함께-있음 속에서 때로는 공동체의 개별자로 기능하고 때로는 서로를-위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객체로 기능하는 그런 세계[의 구조?]는 이러한 기능함으로부터 구성된다.* [592] 타당성구조는 조화 속에서의 보편적 타당성의 구조이며, 조화롭게 증명된 것들의 구조이며 정정 속에서 상세한 규정과 다르게-규정함 가운데서 증명되는 것들의 구조이다** -- [그것은] 참되게[wahrhaft] 존재하는 것들의 구조이다. 존재의 우주[Universum des Seins]. ★초월세계가 유일하게 참된 것이고, 일상적 의미에서의 세계가 이를테면 한갓된 가상이고 어떤[irgend] 약한 타당성을 가지는 것인 게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Das Seiende ist, das Nichtseiende ist nicht].*** 그러나 존재자는 존재우주 속에서, 각 존재의미의 모든 있음의 보편적인 구조 속에서, 자신의 타당성 자리에 있는 각각의 보편적인 구조 속에서, 하나의 타당성질서의 통일체 속에서, 흐름 속에서 구성되는 것들의 통일체 속에서 그리고 모든 단계에서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보편적 구조 속에서만 완전히 인식된다.

*Q. 이 문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정합론적 스멜이 난다.

***나이브한 존재마저 복원된 것 같다. 인식과 존재의 분리가 이루어져있다. 다만, 존재 여부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가 후설에게는 관건이다.

cf. Hua XV 196-213(세계), 266-313/490/648-657(신체)

cf2.  세계적 = 세계전체(=인간을 위한 존재의 우주) 속 자신의 존재를 가짐(Hua XV, 501-502)

cf3. 유한한 세계와 무한한 세계(가능한 경험까지 포함) (Hua XV, Text Nr.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