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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번역

에드문트 후설, <형식 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6장 일부 발췌 번역

E. Husserl (Hrsg. von P. Janssen), 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Versuch einer Kritik der logischen Vernunft, Martinus Nijhoff: den Haag, 1974(Hua XVII)의 6. Kapitel. 모든 강조는 필자

6장. 초월론적 현상학과 지향적 심리학. 초월론적 심리학주의의 문제

"가장 먼저 그리고 모든 생각 가능한 것보다 앞에 내가 존재한다. 이러한 '나는 존재한다'는 [...] 내 세계를 위한 지향적 근원근거[Urgrund]이다. 그 세계에서 나는 '객관적' 세계, 나에게 이러한 의미에서 타당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를 위한 세계'조차 '나의' 세계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Hua XVII, 243-244): 자아의 선행성 - 상호주관적 세계마저 ‘나의’ 세계. 실재 세계뿐만 아니라 이념적 세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형식적-논리학적 권역을 얼마나 뛰어넘는지[에 대한 고려]는 우선 시야 속에 놓여 있어야 한다. 우리가 형식논리학적 타당성들의 잘못된 권리주장[verkehrte Ansprüche]을 피하려면 말이다. 우리는 인식의 '사정거리'라는 문제의 전체 폭과 크기를 포착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비로소 본래적으로 사정거리에 대한 이 낡은 인식이론적 담론[Rede]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또는 적어도, 어디로 나아가야 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Hua XVII, 251): 인식이론=인식의 사정거리 획정=초월의 수수께끼(형식논리학마저 이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음)

★★★"의식은 방법적으로 탈은폐될 수 있다.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존재양상성 속에서 꾸려내는[schaffenden] 그것의[의식의] 성취 속에서 그것을[의식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방식으로."(Hua XVII, 251): 후설의 특유한 '해석학'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이 비로소 개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브렌타노에 의한 지향성의 발견은 지향성 속에서 성취들의 연관을 보는 데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결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성취들은 그때그때마다 구성된 지향적 통일체와 [그] 통일체의 그때그때마다의 소여방식 속에서 하나의 침전된 역사, 그때그때마다 엄밀한 방법으로 탈은폐할 수 있는 [그런] 역사로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근본인식 덕분에 지향적 통일체의 모든 종은 구성적 '분석'의 '초월론적 실마리'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들 자체는 그것들[초월론적 실마리들]로부터 완전히 독특한[eigenartig] 성격을 획득한다. 구성적 분석은 일상적 의미에서의 분석(내실적 분석)이 아니라, 지향적 함축들의 탈은폐이다(이를테면 하나의 경험으로부터 가능한 것으로서 미리 그려진[vorgezeichnet] 경험들의 체계로의 전진 속에서)."(Hua XVII, 252): 후설의 특유한 '해석학' 2.

cf. 엄밀하다=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다=>사태에 적합하게 탐구한다(이남인(2004))

"그렇다면 사실적인 소여들에 대해[an] 수행되는 모든 지향적이고 구성적인 분석은 처음부터, [그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을 때조차, 범례적인 것으로서[본질의 예시에 대한 분석으로서] 보아져야 한다. 사실성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렇게 자유로운 상상변경의 제국으로 옮겨진 그것[범례적 분석]의 모든 성과들은 [탐구 대상의] 본질에 적합한 것, 즉 사고 가능성(하나의 '순수한' 전체성)의 우주가 필증적인 명증 속에서 지배하는 그런 것, 그런 식으로[derart] 모든 부정은, 직관적-형상적 불가능성에서처럼, 사고 불가능성[Unausdenkbarkeit]만큼의 것을 말해주는 그런 것이[ 된]다."(Hua XVII, 256): 본질과 필증성의 상관관계 + 그렇다면 '후설의 형상학은 공허하기 때문에, 딜타이를 따라 사실성을 분석하겠다'는 하이데거의 접근조차 사실은 본질 직관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초월성은 이러한 나와의 관계 속에서의 초월성이고 그의 것을 매개로[mittels seiner] 그의 것으로서의 열린 자아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의 초월성이다. 이때 이미 데카르트에 의해 불명료하게나마[bei aller Unklarheit doch] 미리 보아진 차이가 드러난다. 그 차이란 이러한 자아, 이러한 의미에서 궁극적으로 구성하는 주관성인 내가 나의 탈은폐되지 않은 것들과 알려지지 않은 것들의 무한한 지평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해[für mich] 필증적 필연성 속에서 존재하는 반면 내 안에서 구성된 세계 속에서, 나의 조화로운 경험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계속 나에 대해 존재하고 완전히 아무 의심 없이(모든 새로운 경험이 [그것을] 확증하는 때엔 내가 결코 수행할 수 없을 [그런] 의심) 존재하는 세계는 오직 가정적인 현존[präsumtive Existenz]의 의미만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본질필연성 속에서 [그 연약한 의미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실제적 세계는 오직 지속적으로 미리 그려진 가정, 경험이 같은 구성적 양식에서 지속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 속에서만 존재한다."(Hua XVII, 258): 필증적 자아 존재-비필증적 세계 존재라는 데카르트적 구도의 계승. 누가 후설 데카르트주의자 아니래~~~

"[...] 우선 심리학적으로 수행된, 그러나 순수한 의식분석이 그것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내용물을 바꾸는 일 없이 초월론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Hua XVII, 259): 순수 심리학의 초월론적 ‘변경(Wendung)’

cf. "Alle für die Erkenntnispsychologie gewonnenen Struktureinsichten wären auch der transzendentalen Philosophie zugute gekommen. Selbst wenn diese in der Vermischung von Ergebnissen psychologischer und transzendentaler Einstellung stecken geblieben wäre (eine für den Anfang fast unvermeidliche Vermischung), so hätte sich dieser Fehler später durch Umwertung bessern lassen, ohne die gewonnenen Einsichten ihrem wesentlichen Kerne nach zu verändern."(Hua XVII, 261)

"심리학적 인식이론은 [...] 그것에 초월론적인 과제 [수행]이 기대되면, 그러므로 심리학적으로 통각된 지향적 삶을 초월론적인 것[삶]을 위해 내어주고[ausgeben] 심리학을 통해 모든 세계적인 것에 대한 초월론적 해명을 성취하고자 시도하면 다만 부조리에 이를 것이다 -- 심리학, 그것의 '영혼삶', 그것의 '내적 경험'과 더불어 세계가 이미 소박하게 전제되었다는 순환[의 부조리]와 함께."(Hua XVII, 260): 초월론적 심리학주의초월론적 문제설정을 심리학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e.g. 세계를 심리학적 주관으로부터 도출) 그릇된 시도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