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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알베르 카뮈, <결혼 • 여름>

알베르 카뮈, 김화영 역, ⟪결혼 • 여름⟫, 책세상, 1998.

버들골에서

 여름이 다 지나서야 읽게 되어 최적의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간절기에 나의 마음을 후끈하게 덥혀주기엔 충분한 책이었다. 카뮈의 글은 밀도가 높고 수식구가 많아서 펜을 들지 않는 이상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의 문장 안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서로 조화되고 충돌하면서 묵직한 충격을 안겨준다. 간결한 것이 무조건 미덕은 아닌 셈이다.

 일련의 산문들에서 카뮈는 인간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되, 진보를 꿈꾼 계몽주의자들이나 역사철학자들과 같은 나이브한 낙관은 삼간다. 인간은 나약하고 끝내는 증오에 가득찬 채로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지만 언제 어디서든 희망을 되찾을 수 있는 존재이다(희망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희망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바로 시지프의 능력이다). 반면 육체에 대한 찬양에는 절제도, 단서도 없다. 고상한 취향과 사상이 결여된, 다만 단순한 젊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사람들을 향하여 카뮈는 무한에 가까운 애정을 보낸다. 그리하여 야성이 철학에 대해, 거리가 교회에 대해 승리한다. 권투 시합을 묘사하는 '놀이'는 그야말로 이 책의 클라이막스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사랑에 비하면 인류애는 하찮아질 정도다. 카뮈는 결국 사람이 아닌 바다, 바다가 굽어 보이는 언덕, 그리고 바다 위의 태양과 결혼한다. 그는 이글거리는 해와 해안선을 갉는 파도, 폐허가 된 유적을 덮는 풀, 혼자서 맡는 바람, 그 위로 무겁게 쏟아지는 별들을 통해 우연한 상황이나 이런저런 성취와 독립적인 삶의 가치를 정립한다. 그런 만큼 허무주의는 카뮈의 이름과 가장 먼 사상들 중 하나이다. 그는 절대만큼이나 허무를 도달 불가능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자연은 자동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긍정해주며, 그것도 우리에 대한 신경질적인 무관심 속에서 그렇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