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미하엘 프레데, <회의주의자의 믿음>

미하엘 프레데, 박승권•박준호 옮김, "회의주의자의 믿음", 전기가오리, 2022.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와 같은 퓌론주의 회의주의자가 (1)아무런 믿음 없이도 행위가 가능하다고 이론적으로 믿었거나, (2)아무런 믿음 없이도 행위하는 삶이 실천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은 역사적 오해이며 철학적으로도 문제적이다. 회의주의자는 사물이 그에게 어떻게 현상하는지--판타지아의 평결--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참이라는 생각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이성을 통해 현상 배후의 실재를 알 수 있다는 독단주의에 반대하고, 현상 너머의 실재(사물이 '실제로' 어떻게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일체 유보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퓌론주의 회의주의자가 '(이를테면 실재는 없고) 현상만이 참이다'라고 주장했다는 생각 또한 오해이다. 이러한 주장은 '(현상은 참인 반면) 그렇게 참인 현상과 실재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독단적인 주장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고로 회의주의자는 일상적인 상식인과 겉보기에 대동소이한 삶을 살아가고, 살아갈 수 있다.


 "[...] 회의주의자가 경험하고 발견한 것은 믿음 없이 사는 일이 전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이론과 반성이라는 기반에만 기댄 채 사태를 생각해본다면 어떠한 명제일지라도 그 명제를 지지하는 진술만큼이나 그에 반대하는 진술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점이 회의주의자의 경험이자 발견이다.* 그러므로 논변이 언제나 서로 균형을 맞추게 되어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고 놀랍게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다는 점은 별문제가 아님이 밝혀진다. 그로써 경이로운 평정 상태에 있게 되기까지 한다."(31-33)

*나의 직관과 매우 부합한다.

 "하지만 독단주의자라고 해도 현상이 적어도 어떤 대상적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대개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로부터 사물이 실제로 어떻게 있는지에 관해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가 사물이 어떻게 있는지에 관한 인상만을 가질 뿐 믿음은 갖지 않는다는 점이 따라나오지는 않는다."(57)*

*cf. 현상에 대한 '정립'

 "회의주의자는 사물이 이러저러하게 보인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은 독단주의자의 믿음, 즉 사물이 실제로는 이러저러하게 보인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믿음을 회의주의자도 믿고 있음을 전제하는 꼴이기 때문이다."(63)*

*현상과 실재 사이의 괴리를 없애고자 했던 버클리의 문제의식과도 상통한다. 재미있는 점은 버클리는 자신이 회의주의를 타파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섹스투스가 특정한 인상이 우리 속에서 떠오르고, 어떤 수단에 의해 우리가 그 인상에 동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믿음이 형성된다는 견해를 공유했다는 점이 나에게는 무척 의심스럽다. [...] 게다가 회의주의자에게는 인상에 동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초가 될 만한 아무런 기준[이를테면 실재와의 유사성]도 없다. 실상 특정한 사물이 그저 그에게 참인 것으로 보일 뿐이다."(67)

 "회의주의자가 문자 그대로 수용하는 것, 회의주의자가 만족하는 것, 회의주의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참인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 그에게 명백하다고 보이는 모든 것이다."(75)

 "독단주의자는 동의를 의지적인 행위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인상에 관한 판단으로 본다. 이 판단만이 믿음으로 이어진다."(77)

 "모든 믿음은 이성이 대답해야 하는 물음으로, 이성에 직접적으로 명백한 제1원칙에서 비롯한 이론적 대답을 요구하는 물음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회의주의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명백하지 않으며, 이는 가장 비근하고 일상적인 믿음에 대해서도 그러하다."(81)

 "회의주의자에게 명백하다고 보이는 모든 것이 관찰할 수 있는 것임이 나중에 드러난다 하더라도, 이는 회의주의자가 관찰 가능한 것만을 참이라고 간주해서가 아니다. 만약 회의주의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독단주의자와 똑같이 참된 인상과 거짓된 인상을 구별하는 기준을 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회의주의자는 자신의 믿음에 관한 그 어떤 기준*에도 기대지 않는다."(99)

*후설에게 이는 초월론적 주관의 직관/구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