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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필리프 그르기치, <탐구도 하고 유보도 하는 회의주의>

필리프 그르기치, 박승권 옮김, "탐구도 하고 유보도 하는 회의주의", 전기가오리, 2020.

 원숙한 퓌론주의 회의주의자는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지속적인 탐구자이면서 동시에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가? 판단을 유보했다면, 고통의 원인을 이미 모두 제거했음으로써 평정에 이르러 더 이상 탐구를 이어갈 동기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르기치는 회의주의자가 판단을 유보한 뒤에도 앎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의주의자에게 고통의 원천은 의견상의 불일치--현상의 상충 때문이든, 본성상 좋거나 나쁜 것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든--에서 온다. 의견상의 불일치가 고통을 야기하는 이유는, 의견들 가운데 한 가지(또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으며, 우리네 인식의 목표가 그러한 진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의주의자는 그와 같은 인식의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다. "현상 중 하나가 참임이 틀림없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53). (무지 및 앎에 대한 욕망 역시 고통의 원천일 수 있지만, 이 믿음과 결합되어서만 고통을 야기한다.) 반면 독단주의자는 이미 사태의 본성을 꿰뚫었다고, 진리를 소유했다고 자만함으로써, 탐구자이기를 멈춘다.


 "그러나 퓌론주의자의 유보는 확정적이고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태까지 면밀히 살폈던 논변에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퓌론주의자는 고민해왔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고 여길 따름이다."(41) + "[...] 모든 것에 대한 판단 유보는 모든 특수한 믿음 하나하나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진리만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인식상의 목표라는 믿음을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77)

 "현상의 상충이 현상 중 하나가 참인지를 발견함으로써만 해소될 수 있다는 믿음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강한 불일치의 대상이다. 상충하는 현상 중 하나가 참임이 틀림없고 다른 하나는 거짓임이 틀림없음이 필연적이라고 고수하는 사람(긍정적 독단론자)이 있는가 하면, 상충하는 현상 중에 참이 없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예컨대 원자론자)이나, 상충하는 현상 둘 다 참일 수 있다고 보는 사람(프로타고라스 같은 상대주의자)도 있으며, 무엇이 참인지를 발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부정적 독단론자)도 있기에 그러하다."(45)

 "[...] 세계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태도[...] 현상의 상충이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해결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말한다."(65)

 "독단론자도 특수한 문제에 관하여 판단을 유보할 수 있지만, 그들의 유보는 평정을 동반하지 않는다."(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