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현상학

로날드 브루지나, ⟪제 6데카르트적 성찰⟫ 옮긴이의 말 요약

Ronald Bruzina, "Translator's Introduction" to Eugen Fink's VI. Cartesianische Meditation. Teil I(The Sixth Cartesian Meditations), 1995, Indiana University Press. 후설의 조교로서 핑크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고, 의견차 가운데서도 헌신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인트로덕션.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빛나는 인디애나 유니버시티 프레스
도서관 근처의 카페에서.

 로날드 브루지나에 따르면 1929년 말부터 후설은 같은 해 2월 소르본에서 성사시켰던 강연의 강의록인 ⟪데카르트적 성찰⟫의 근본적인 수정을 결심한다. 본래 ⟪데카르트적 성찰⟫은 독일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출간을 앞둔 채 마지막 퇴고까지 완료된 상태였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하이데거를 현상학의 대변자이자 딜타이와 보다 양립 가능한 사상가로 간주한 게오르그 미쉬(Georg Misch)의 Lebensphilosophie und Phänomenologie를 마주한 후설은 자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오해와 비판들을 바로잡을 필요를 느낀다. 후설은 보다 체계적인 입문을 새로이 써야 한다는 생각과 정치적인 압력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인해 ⟪데카르트적 성찰⟫의 수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수정본의 초고 작업을 그의 마지막 조교인 오이겐 핑크에게 맡긴다. 브루지나에 의하면, (후설에 의해 검수된) 핑크의 수정본은 "현상학에 대한 데카르트에-기반한(Cartesian-based) 해설의 대체(displacement)에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기여한다."(ix) 이 수정본에 새롭게 덧붙은 두 성찰 중 하나가 제 6데카르트적 성찰 또는 '초월론적 방법교설[Methodenlehre, theory of method]의 이념'이다. 브루지나는 제 6데카르트적 성찰이 (데카르트적인 기획이 아닌) "솔직히 칸트적인" 기획이라고 기술한다(viii).

1.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과 그 수정(x-xxii)

Zeitleiste was ist passiert
1928.11-1929.1 '형식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집필.
1929.2.23-25 소르본에서 '초월론적 현상학에의 입문' 강연 성사. 3.12에 프라이부르크로 돌아온 뒤, 출간을 위해 강의록을 수정. "후설은 해가 끝나기 전에 수정본이 독일어로도 출간될 수 있다고 느꼈다."(x)
1929.7 '형식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교정 후 미쉬의 Lebensphilosophie und Phänomenologie 일부 독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및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공부.* 하이데거의 방법론과 주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데카르트적] 성찰을 더 이상 [현상학에 대한 스테이트먼트로서] 적절한[충분한, adequate] 것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됨(xi). 12월에 잉가르덴에게 '데카르트적 성찰'을 체계적으로 수정하고 있다는 편지를 씀.
1930.3 란트그레베가 작업한 '경험과 판단' 등을 교정하느라 잉가르덴에게 '데카르트적 성찰'의 수정에 시간을 쏟기 어렵다는 편지를 씀. 그럼에도 "독일 철학이 현재 서 있는 중대한 상황"을 언급하며, "독일의 대중"이 현재 "유행에 따라 '실존'의 철학에 휘둘리고, '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을 버렸다"고 비판하면서 (형이상학적인 문제설정을 포함해) 자신의 현상학 일반에 대한 보다 최종적이고 명료한 해설이 요구된다고 씀(xii, Briefe an Ingarden, p.59에서 재인용). 브루지나는 후설이 당대 독일 철학계에서 자신의 현상학이 잊혀지고 오해되는 데 대해 반발심을 느꼈다고 평한다(xii, xvii). 
1930 봄-초여름 Lebensphilosophie und Phänomenologie 탐독. "미쉬는 딜타이의 기획에서 인간 실존과 사유 속 살아있는 역사적 운동의 주제를 강조했다. 이는 그가 후설의 작업물[에서 드러나는] 강력하게 논리중심적인 지성주의에 반대된다고 본 것이었다. 이에 더해 미쉬가 딜타이의 입장의 이러한 긍정적인 면을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과 연결지은 점, 그리고 그에 따라 하이데거의 작업물에 후설의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 점 역시 마찬가지로 [후설에게] 괴로움을 주었다."(xii-xiii) 후설의 현상학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깊이 그리고 근본적으로 구체적이고 독창적인(originative)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데카르트적 성찰들 이상이 필요했다."(xiii) 브루지나는 후설이 '데카르트적 성찰'의 수정에 더해, "'현상학적 철학의 체계'라는 거대한 기획", 즉 "실재적 실존"과 "현상학적 방법 및 설명의 가장 포기할 수 없는(highest) 원칙들을 체계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프레임워크**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고 말한다(xiii).
1930.8.13 핑크가 '현상학적 철학의 체계'의 레이아웃을 완성시킴. 세계의 선소여성에 대한 후설과 핑크의 견해차가 드러남. 1930년 12월, 구스타브 알브레히트에게 젊은 세대의 오해에 맞서 자신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재)표상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씀.
1931.2.16 잉가르덴에게 '데카르트적 성찰'의 수정과 그보다 포괄적이고 확장적인 '현상학적 철학의 체계'의 집필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편지를 씀. 병행의 어려움으로 인해 '데카르트적 성찰'의 수정을 핑크에게 거의 전임함. 1931년 여름, 핑크가 제1성찰의 수정을 완료함(Ergänzungsband에 수록). 1931년 12월, 구스타브 알브레히트에게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의 편지를 씀.
1932 여름 핑크가 제1-5성찰의 수정을 부분적으로 완료하면서 가을까지는 6성찰 집필. 브루지나에 따르면 핑크의 수정본은 더 이상 '데카르트적'이지 않았는데, 이는 후설의 변화된 지향과 상응했다(xviii).
1933 봄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이 되면서, 4월 14일부로 비-아리아인의 공직활동이 금지됨. 5월 1일, 제자 하이데거 나치 입당. 5월 4일, 디트리히 망케에게 정치 상황으로 인한 우울감을 호소함(xix).
1933 여름 Kantstudien에 실릴 핑크의 논문(6성찰의 각색본)에 자신이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서언을 덧붙여줌(6월). 그 정도의 호응을 기대하지 않은 핑크가 놀람(xxi). 같은 해 여름, 후설(재독), 필릭스 카우프만, 가스통 베르제가 제 6성찰을 읽어봄. 알프레드 슈츠는 겨울에 독서. 이후 베르제를 통해 메를로-퐁티와 트랑-뒥-타오 역시 핑크의 글을 접함. 
1934.8 프라하에서 '철학의 현 과제'에 대해 강연해줄 것을 부탁받음.
1935 비엔나 강연, 프라하 강연(Hua VI에 수록) 성사.
1938.4.27 프라이부르크에서 후설 사망.

*Q. ①Exactly what in early Heidegger's thought prompted Husserl to 'displace' his 'Cartesianism'? / ②What was actually displaced and what was nevertheless preserved? / ③Reflecting on the answer to ②, was it a literal displacement, or just a re-presentation for namely educational purposes? / ④Are the preserved moments inadequate to be called 'Cartesian'? / ⑤Is it worth fighting over the nomenclature in the first place? 

**Q. 이 프레임워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cf. 인식론과 존재론의 관계 / the Crisis writings / Husserliana Dokumente II(Ergänzungsband), Dord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s에 수록된 핑크 Nachlass 살펴보기.

2. 후설의 동료로서 오이겐 핑크(xxiii-xxxii) 후설에게 핑크는 단순한 조교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사람(co-thinker)이었다. 핑크는 말년의 후설과 거의 매의 접촉하면서 원고 정리 이상으로 후설의 사유 과정 자체에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후설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에 대한 핑크의 크리틱을 요구했는데, 이는 핑크가 후설의 기획에 헌신하면서도 자신 안에 독립적인 사상의 씨앗을 품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에 브루지나는 후설의 마지막 작업물들이 "후설만의 것이 아니라--후설과 핑크[ 모두]의 것이었다"고 평한다(xxviii). 물론 두 사람에게는 의견차가 있었지만, 이는 초월론적 현상학이라는 동일한 기반 위에서의 차이였다(xxxii).

3. 제 6성찰과 루뱅(xxxiii-xxxv) 우여곡절 끝에 핑크는 전쟁 이후 제 6성찰을 자신의 교수자격논문으로 제출한다.

4. 제 6성찰: 문제와 해결책들(xxxv-lix)

A) 현상학의 데카르트주의에 반대하기 현상학에 대한 새로운 체계적인 입문을 준비하면서, 핑크는 현상학적 반성의 시작 지점학문에 대한 데카르트적 이념이 아닌 미리 주어진 것으로서의 세계(의 의미) 및 그 속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으로 옮겨놓는다. 핑크의 생각에 따르면 기존의 ⟪데카르트적 성찰⟫은 첫째, 학문의 정초라는 목적 하에 절대적으로 자족적이며 순수한 자아를 세계와 대립되는 존재로 설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결점을 가진다.* (그러나 자아는 어떤 경우에도 세계와 대립되지 않는다.) 핑크의 사상적 혁신은 미리 주어진 세계에 대한 믿음[Weltglaube]이 비자연적인 초월론적 자아에게도 작동한다고 생각한 데 있다. 세계믿음은 심리학적 사실이 아닌 초월론적 사실이기에, 초월론적 경험의 권역 내에도 '세계믿음을 수행하는 초월론적 자아'와 '세계믿음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현상학적 관찰자(onlooker)' 사이의 분열이 발생한다. (핑크가 이러한 분열을 도입하는 것은 초월론적 인식 일반의 비판, 초월론적 소박성의 타파를 도모하는 맥락 위에서이다.) ⟪데카르트적 성찰⟫은 둘째, 자연적 태도에 대한 에포케가 외부 지각의 대상인 초월자에만 적용되며, 내재적인 인간의식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소개한다.** 그러나 핑크는 자연적 태도란 인간 존재 자체와 동일한 것이며, 그 연장선에서 (후설과 달리) '자연적 태도'보다는 '세계편견[Weltbefangenheit]'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세속적 인간성과 초월론적 주관성 사이의 관계는 제 6성찰의 또 다른 중대한 주제이다. 핑크에게는 상호주관성의 문제마저 둘 사이의 동일성과 차이에 대한 해결을 요한다.

*, **솔직히 말해 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다. 내가 후설의 데카르트주의에 너무 자비로운가.

 이에 브루지나는 ①초월론적 환원이 (자아가 아닌) 선소여된 세계를 중심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②세계는 인간적 내재의 영역을 포함하는 것이지, 그것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후설과 핑크가 근본적으로 동의했다고 평한다. 두 사람의 작업은 철학 자체를 개인만의 것이 아닌 상호주관적인 성취로 재표상한다.

B) 현상학의 방법에 대한 초월론적 이론 제 6성찰은 '현상학의 현상학', 즉 현상학함 자체에 대한 초월론적 반성이자 현상학의 가능조건에 대한 잠정적인 탐구이다. 제 6성찰에서 눈여겨볼 첫 번째 지점은 바로 "구축적(constructive) 현상학의 문제, 곧 현상학의 비-직관적인(non-intuitional) 차원의 필연성"의 문제이며, 두 번째 지점은 "초월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또는 현상과 존재 사이의 구분"을 포괄하는 환원의 문제, 곧 초월론적 반성 자체에 대한 해명이다(xlvii). 해명의 과정에서 핑크는 모든 존재 이전의 선존재, 비-존재적인(meontic) 절대정신의 권역을 주제화한다.

"The straightforward way of stating the concordance and difference at play [between Fink and Husserl] here is to say that for Fink the form of self-critique that phenomenology makes in a transcendental theory of method is governed by explicitly raising the question of being within it, whereas for Husserl there is no real need in transcendental phenomenology to make a special issue of the question of being. […] This difference, however, is accompanied by further differences in how the explication of the identity and difference between transcendental and human subjectivity is worked out by each of the two philosophers. In Fink’s case this leads to being guided by the preliminary idea of a 'meontic of absolute spirit' where as for Husserl there is no corresponding theoretical position. [...] there is on Husserl's part only the explicit assertion of the programmatic place for an eventual explicit phenomenological 'metaphysics,' [...]"(xlix-l)

1) 존재라는 문제 핑크는 세계화[Verweltlichung, enworlding]의 개념을 통해 초월론적 존재와 인간적 존재 사이의 동일성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적 존재는 초월론적 존재가 세속의 옷을 입은 산물, 또는 스스로를 세계화하는 자기통각을 수행한 산물이다. (자연적 태도에서는 추상적일 뿐인) 모든 존재 및 (존재 일반과 동일시되는) 세계는 초월론적 현상학의 분석 하에서 언제나 이미 구성된 것으로 구체화된다. 즉 핑크에게 모든 존재란 구성된 존재이며, 모든 인식은 존재하는 것 즉 구성된 것에 대한 인식이다. 이에 따라 구성하는 '행위자(agency)' 또는 주체성은 존재의 권역 바깥에 놓이게 되지만, 오직 추상적으로만 그러하며 구체적으로는 그 자신 역시 언제나 이미 구성된--세계화된--존재로서 활동한다. 중요한 것은 해당 주체가 우선 실체로 존속하는 와중 구성의 능력을 속성처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의 과정 자체(시간화[Zeitigung])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For Fink it is Kant who is to be credited with raising the question of the limits of the idea of being, and of identifying those limits with the world."(liii)

2) 그것의 선소여성 속 세계라는 문제 존재자들의 권역으로서의 세계는 언제나 이미 주어져있다. 그 어떤 존재자에 대한 인식이든 세계는 해당 인식의 지평이다. 그렇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은 세계 자체의 구성 주체일 수 없다. (그런데 세계는 주어지는 한 구성되어있고, 구성된 것은 구성하는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세계 구성의 주체로서 존재에 선행하는 활동 또는 행위자성이 요구된다. 존재를 기술하는 기존의 모든 개념은 이 선존재를 개념화하는 데 무용하다. 선존재는 존재 이전의 또 다른 존재의 권역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 일반에 앞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적 인식 역시 인식인 한,) 선존재를 주제화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것을 존재화(ontify)할 수밖에 없다. 즉 선존재에 대한 앎은 존재에 대한 앎과의 유비를 통해서만 성립한다. 여기서 초월론적인 것을 기술하는 언어와 관련된 의미론적 문제가 발생한다.**

*, **핑크의 견해와 후설의 견해가 갈리는 지점. 핑크는 선존재에 이르기 위해 존재의 관념에 대한 별도의 환원, 존재의 의미 변화에 대한 현상학적 주제화가 요구된다고 보지만, 후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후설은 초월론적인 것을 기술하는 언어의 문제를 인정하지만 핑크처럼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3) 비-존재적인 것(the meontic) 비-존재적인 것에 해당하는 선존재에 관련된 첫 번째 문제는 선존재하는 초월론적 주관성이 어떻게 존재하는 세속적, 인간적 주관성과 차별화되면서도 동일성의 통일체를 이루냐는 것이다. 이에 핑크는 초월론적 주관성이 인간적 주관성으로 세계화되는 것은 "구성적 필연성(constitutive necessity)"이라고 답한다(lvi).* 두 번째 문제는 선존재하는 초월론적 주관성이 어떻게 세계와 양극으로서 차별화되면서도 (모나드로서?) 통일체를 이루냐는 것이다. 이에 핑크는 세계의 선존재하는 근원으로서의 초월론적인 것 자체가 존재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으로서만 존재한다고 답한다. "현상학적 의미에서 '절대적인 것'이란, 그렇다면, 세계를 구성하는 이러한 조작(operation) 전체"가 된다(lvi). 두 대답 모두에서 중요한 것은 통일체를 이루는 저 차이들이 하나의 프레임워크 하에서의 차이가 아닌, 서로 다른 프레임워크에 놓여있는 데서 발원하는 차이라는 점이다.**

★*Q. 이로써 세계의 존재는 초월론적 주관의 존재와 더불어 필증적이 되는가?

**Q. 여전히, '서로 동일한 것들이 어떻게 다른 속성을 가지며, 그 경우 그 둘이 진정한 의미에서 동일하다고/통일체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보다 상세한 해명을 요한다.

4) 따라나오는 문제들 ①§10-11을 통해 핑크는 비-존재적인 것을 기술하는 언어가 필연적으로 자기-세계화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핑크는 세속적 언어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초월론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적절한지를 보장해줄 수 있는, 존재의 관념에 대한 추가적인 환원을 요구한다. 반면 후설은 단순히 인간적인 언어로부터 초월론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해주는 (인간적) 언어로의 변화란 주제적인 환원 없이 현상학적 작업의 과정에서 현상(에 대한 직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획득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금, 핑크는 초월론적인 것은 결코 '있는' 그대로 나타날 수 없는 비-존재적인 것이기에 애초에 현상할 수가, 따라서 명증으로 스스로를 드러낼 수가 없다고 응수한다. 비-존재적인 것은 "세계화된 현상"으로서만 '현상하며', "직관적 현전의 계기 너머의 분별 과정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lviii) (여기서 직관을 뛰어넘는 구축의 현상학이 요구된다.) ②또 다른 문제는 상호주관성이 개인 또는 개별자의 집합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느냐는 문제의식과 관련되어있다. 여기서는 초월론적 주관성이 이미 개별화되어있는가(후설), 아닌가(핑크)의 논쟁이 있다(확인).


Further readings required

Stephan Strasser, trans. by Thomas Attig, 'Introduction' to Cartesian Meditations, Journal of the British Society for Phenomenology, 7(1976), pp. 12-17

★Husserliana Dokumente II(Ergänzungsband), Dord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s의 처음 두 글 + 후설이 검수한 ⟪데카르트적 성찰⟫ 수정본(특히 필증성과 관련된 부분. pp.  109-114, 148-150)

Ronald Bruzina, "Die Notizen Eugen Finks zur Umarbeitung von Edmund Husserls 'Cartesianischen Meditationen'", Husserl Studies, 6 (1989), pp. 97-128

★Iso Kern, "Einleitung" to Edumund Husserl, Zur Phänomenologie der Intersubjektivität, Part III, Hua XV (Den Haag: Martinus Nijhoff, 1973), pp. XVI-LXV

Karl Schuhmann, Husserl-Chronik, Denk- und Lebensweg Edmund Husserls, Husserliana Dokumente I (Den Haag: Martinus Nijhoff, 1977)

★비엔나 강연, 프라하 강연(Hua VI)

D. Souche-Dagues, "La lecture husserlienne de Sein und Zeit," Philosophie, 21 (1989), pp. 7-36

Walter Biemel, "Husserl's Encyclopedia Britannica Article and Heidegger's Remarks Thereon," in Frederick Elliston and Peter McCormick, eds., Husserl, Expositions and Appraisals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77), pp. 286-303.


 한편. 오해를 받았다고 느끼는 일과 견해를 수정하는 일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멀다. 오해를 받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기존의 견해를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하는 것이지, 내용을 핵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소개의 과정에서 시대의 요구 또는 개인적인 의도에 따라 부각되는 내용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당대의 비평으로부터 후설이 느낀 것이 '내가 틀렸다'는 감각이 아니라 '내가 오해되었다'는 감각일 뿐이라면 역사와 실존의 문제의식은 초중기의 소위 '데카르트적' 텍스트들에서도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을 뿐) 작동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암묵적으로 작동한 계기들이 노골적으로 데카르트적이었던 계기들과 맺은 관계다.

*"It would be completely wrong to think that new intellectual motifs that are alien to the consistent thrust of my earlier developments have taken effect on me through him[Fink]."(xxv, Briefwechsel, VII, 89(1933.3)로부터 재인용)

 다른 한편. 후설이 명시적으로 데카르트주의로부터 거리를 두는 발언들을 무시하기 어렵다.** 내 석사논문은 얼마나, 어디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의 구분에 대해 삽입한 내용도 검토를 충실하게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리는데, 왜 사람들이 시간이 흐른 후 석사논문을 부끄러워 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존재한다'의 필증성으로 물러서면서 인식의 정초로서의 학문의 이념을 복원하는 방식"은 "그릇되었다(wrong)"는 핑크의 서술(xxxvii, Ergänzungsband, 155-156로부터 재인용)에 후설은 "그렇다! 완전한 혼란이었고, 반성의 경로로서 방향이 잘못 잡혔었다(So it was! A sheer muddle, and wrongheaded as a course of reflection)"고 동의한다(xxxvii, Ergänzungsband, 155, 각주 111번으로부터 재인용). / "It must be recognized that what Fink, alongside Husserl, was working here in these revisions was [...] taken by them as the way it had to be understood."(xl, 강조는 브루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