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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번역

에드문트 후설, <본질과 형상적 변경에 대한 교설> 27번 부록 ‘주관성의 형상학’ 번역

E. Husserl, hrsg. von Dirk Fonfara, Zur Lehre vom Wesen und zur Methode der Eidetischen Variation: Texte aus dem Nachlass (1891–1935), Springer, 2012(Hua, XLI), s. 352-353

부록 27. 주관성의 변경(Variation)은 초월론적 태도에서 또한 이러한 [주관성]이 신체를 가지는지 또는 세계 일반이 존재하는지로부터 독립적(unabhängig)이다: 주관성의 형상학(1926년 10월 22일)

 이 종이들 위에서 전개된 좋은 생각은 [바로] 하나의 형상적 심리학이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주관성을 변경하면서 신체성과 세계는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통해 초월론적-환원적 태도에 묶여있다면, 나는 내가 이러한 요구에 신경 쓰고 있지 않을 때 모순이 자라나는 방식으로 다시금(doch wieder) [그 요구에] 묶여있지 않다.* 나는 형상적 심리학을 넘어설(überschreiten) 수 있고, 순수한 주관성에 대한 형상학에 관해 훈련될(ausbilden) 수 있다. 이러한 형상학에서 가능한 세계 그리고 신체적으로 육화된 주관성구성적 특수자들(konstitutive Besonderheiten)이며, 세계의 가능한 비존재의 사례들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열려있다. 내가 그렇게 자유로운 변경에 돌입하면, 그로써 나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것을 인식한다. 하나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조차 나는 존재한다. 나는 하나의 세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모든 질문 이전에 존재하며, 아마도 우리 역시 이러한 세계 그리고 하나의 세계 일반이 존재함 없이 존재할 수 있다. 현실적이고 가능한 세계에 대한 전제를 완전히 에포케 속에 세우고 순수한 주관성의 토대 위에 배타적으로 [그 전제를] 사실적이고 형상적으로 세우는 것은 모든 경우에(jedenfalls) 가능하다. 내가 형상적 심리학의 근본요구에 묶여있지 않은 변경을 수행한다면, 나는 [353] 그 자체로 이러한 태도를 수행했음에 틀림 없다(Vollziehe ich eine Variation, die sich an die Grundforderung eidetischer Psychologie nicht bindet, so habe ich eo ipso diese Einstellung vollziehen müssen).** 그러므로 이것은 형상적 심리학으로부터 초월론적 현상학으로 이행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 ** 무슨 뜻인지 불명확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 종이들 위에서] 전개된 것은 그러나 보충을 필요로 한다. 초월론적 태도로의 이행은 결코 절대적인 자유 변경에 대한 생각이나 현실적이고 가능적인 세계의 비존재 가능성의 이념에 연결되어있지 않다(nicht etwa geknüpft an).* 나는 물론, 세계의 주제화된 토대 위에 머무르는 대신 그리고 순수하게 영혼적인 것의 획득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현상학적 환원을 사용하는 대신, 처음부터 절대적인 현상학적 환원을 실천하고 그렇게 나의 초월론적 주관성을 획득하고, 나를 순수 자아로서 절대적 주제로 만들고, 우선 사실 속에서(in Faktum)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때 나는 무한하게 조화로운 세계경험의 이념의 형태 속에서 세계의 존재를 [경험의] 상관자로 유지한다(그러므로 ‘아래쪽의 나(unteres Ich)’**로서 [나는] 세계아이이다). 그러면 내가 이러한 절대적 태도 속에서 [주관성의 모습을 자유롭게] 변경하면, 내가 또한 가능성들 속에서 세계아이성격(Weltkindheit)의 일반적 형식을 고집하고 그렇게 [세계아이인 것으로] 나를 제약하는 것을 그 무엇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자의적으로 제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초월론적 현상학 속에 서 있게 된다.*** 그러면 나는 그러므로 형상적 심리학의 초월론적 전환(Wendung)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 끝일 것이다(und nichts weiter). 그러면 더 나아간 단계는 순수한 주관성의 아무 제약(Bindung) 없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변경 가능성에 대한 명백한(naheliegend) 인식일 것이다.

* 이 문장은 세계의 존재에 대해 판단을 중지함으로써 형상적 심리학(=현상학적 심리학)을 초월론적으로 변형하겠다는 앞선 문단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 무슨 뜻인지 불명확하다.

*** 세속성에 얽혀있는 '세계아이'로 남는 동시에 초월론적 현상학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이 모순처럼 들린다. 


★그 외 Hua XLI 내 '필증성'과 관련된 언급

현실적인 것은 모든 경우에 그리고 아프리오리하게 생각 가능성(Denkbarkeit)의 조건들에 상응해야 한다. 모든 존재자와 존재자들의 우주는 함께(in eins) 그 내부에서 모든 사고 가능한 사실성이 경과하는 그것의 필연적인 본질형태를, 하나의 보편적인 필증적 형식을 가진다(Hua XLI, 251). 

이론적 관심에서 연구되는 특수한 대상성들, 특수한 대상영역들에 관해(an) 아프리오리한 근거들로부터 설명되는 것은 이를[앞서 논의된 것을] 통해(dadurch) 궁극적 원칙들로부터 이해 가능해진다. 우리는 말했다: 본질에 걸맞게(wesensmäßig) 이해 가능해진다고. 이것이 타당한 이유는 본질을 부정할 경우 대상성 일반의 그리고 대상성들 일반에 대한 진리들로서의 진리들의 유효한 의미를 훼손(verletzen)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필증적 타당성의 엄밀한 필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타당성의 훼손은 모순(부조리)를 가리[키게 된]다(Hua XLI, 314).*

*원문: "Es gilt, weil es zu leugnen, das Wesen, den gültigen Sinn von Gegenständlichkeit überhaupt und von Wahrheiten als Wahrheiten über Gegenständlichkeiten überhaupt verletzen würde, es hat strenge Notwendigkeit der apodiktischen Geltung, deren Verletzung Widersinn (Absurdität) heißt."

형상(Eidos)이란 개별적인 것과 에이도스 하에 놓이는(steht) 모든 개별적인 것에 대한 규정이다. 가능한 것으로서의 세계 일반에 대해 (형상적인 가능성 속에서) 타당한 것은 필증적 필연성 속에서 ‘우리의’ 세계에 대해 타당하다. 그렇게 존재론은 그것, 사실적 세계에 대한 아프리오리한 학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초월론적 에포케의 관점(Standpunkt)에 도달하고[,] 사실적 세계에로 되돌아가 관계하는 심리학적 존재론 대신, 그 어떤 단도직입적(schlechthinnig) 세계도, 그 어떤 세계도 단도직입적인 타당성 속에서 자신보다 미리 전제된 것으로 가지지 않는 하나의 초월론적인(하나의 [352] 모나돌로기적인) 존재론[을 가지면], 그러면 모든 존재론과 모든 경험적 과학은 초월론적 토대 위에서의 학문들로 변화하고 그로써 그 자체로 초월론적인 또는 절대적인 학문들로 변화한다(Hua XLI, 351-352).

cf. […] jede Wissenschaft bedarf um der Rechenschaftsabgabe[해명의무] und apodiktischen Begründung willen thematischer Beschäftigung mit ihrer Methode. Zu jeder Wissenschaft gehört in dieser Weise Subjektives zum Begleitthema, eben als das der Methode. (Hua XLI,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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