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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번역

에드문트 후설, <상호주관성> 2권 부록 42번 번역

E. Husserl (Hrsg. von I. Kern), Zur Phänomenologische der Intersubjektivität Zweiter Teil(1921-1928), Martinus Nijhoff, 1973(Hua XIV), s. 477-478. 모든 강조는 필자.

[477] 허구적(fiktiv) 발생의 문제로서 그리고 정적 현상학의 문제로서 타인경험의 문제(아마 1927년 2월의 시작)

 타인경험의 문제는 어느(einer) 허구적 발생의 문제로서 정식화되어야 할 것이다. 원본적(original) 환경이 낯선[타자적] 주체들 없이, 또는 그[환경] 속에 등장하는(auftreten) 낯선 신체들이 구성됨 없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환경] 속에는 오직 나의 신체와 외부사물들(Aussendinge)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원본적 환경 속에 나에 대해[나에게 대자적으로] "낯선 신체물체(Leibkörper)"가 등장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러면 무엇이 [내] 고유한(eigen) 신체물체와 이 낯선 [신체]물체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경험을 통해 동기부여되어야 할 것인가? 그러면 어느 한도까지(inwiefern)[,] 낯선 [신체]물체에 대한 지각이 다른 인간에 대한 지각으로 확장되는[,] 두 번째 주관성에 대한 파생현전을 동기부여하는가?

 나는 허구적 발생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타자-파생현전(Fremdappräsentation)의 발생이 타자적[낯선] 주체가 없는 환경의 선행된 발생을 전제한다고, 또는 그와 같은 환경이 이미 구성되어있음을 전제한다고 앞서(im voraus)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적 현상학에서의 타인경험 문제는 주어진 타자통각(Fremdapperzeption)의 지향적 외현이다. '다른 인간'에 대한 지각 속에는 무엇이 포함되어있는가?

 아이의 발달이라는 문제, 그 중에서도 경우에 따라서 [어른인 우리가] 스스로 발달하는 아이에 대해 타인경험하는 세계통각의 최초의 발달(der eventuell dem sich entwickelnden Kind einzufühlenden ersten Entwicklung einer Weltapperzeption)이라는 문제는 해석(Interpretation)의 문제다. 우리는 자연적 토대 위에서, 그러므로 상호주관적인 이해를 통해 [478] 그리고 서로-나란히(miteinander) 경험함을 통해 미리 주어진 세계 위에서 일반적으로(wie überhaupt) 동물들과 아이들에 대해서 또한 타자통각을 수행한다. 현상학적으로는 규정성과 미규정성 속에서[규정성과 미규정성에 입각해서], 무매개성과 매개성 속에서[무매개성과 매개성에 입각해서] 타인경험하는 경험의 유형학을 기술하거나, 그에 상응해 타인경험을 통해 조화롭게 경험된 대상들의 유형학을 기술하는 것이 과제이다. 그렇게(so) 스스로 발달하는 아이의 경험과 존재의 유형을--신체와 영혼의 물리적-유기체적 발달[유형을 기술하는 것 말이다]. 아이에 대한 규정되지 않은 타인경험[감정이입]은 어떻게 규정된 것으로 변경되는가?[나에게 타자인 아이의 내면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발달시기들에서의 아이에 대해 무엇을 규정적으로[확실하게] 단언(zusprechen)할 수 있는가? 이러저러한 신체적 표현들(Äusserungen)은 그[아이]에게 내면적으로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