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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배수아,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배수아,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워크룸프레스, 2019

 한 번 읽는 것만으로 성공적인 리뷰를 남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 읽은 책을 기록하기 위한 아카이빙에 가까울 것이다.

 배수아의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주인공 ‘나(=우루)’와 검은 모자를 쓴, 그녀의 일행이 무녀를 찾아가 그들의 과거 또는 이름을 알아내는 여정을 묘사한다. 2부는 ‘나’와 동일인물로 추정되는 여성이 손님과 마주해 마치 준비의례처럼 식사를 한 뒤 자신에게 일어난 범상한 사건에 대해 낭송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3부는 우루가 한때 사랑했던 MJ를 떠나, 자신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음을 더욱 더 선명하게 깨닫고 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루는 불현듯 자신 안에서 저절로 불타기 시작한 한 그루의 떨기나무를 느꼈다.(166)” 이 신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으로 집약시켜 볼 수 있는, 즉 우주 전체를 한 번에 직관할 수 있는 최초의 여인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신에게 시간의 개념이 없을 것은 자명하다. 시간은 유한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자에 의존하지 않는 무한자인 신에게는 어머니(선행하는 원인)가 없다. “어머니가 죽었다 내 기원의 징후가 사라졌다!(80)” 그녀처럼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 존재자에게는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름은, 늘 시간에 속박되어 있기에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지속할 수 있는 동일자를 필요로 하는 유한자에게만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루에게 필요한 것은 이름이 아닌 춤이다. 춤은 이름처럼 고정되기보다 끊임없는 차이를 생산하며,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이루어져 있다. “춤을 춰 봐. 그게 너니까.(28)” 그녀가 몸에 영양을 보충하는 행위인 식사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와 유관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낱 인간인 우리도 우루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고 개인적으로 읽히)는데, 바로 무한정의 의미를 지닌 사건을 기억으로써 또는 글로써 소유하는 일이다. 과거의 즉흥극을 기억하거나 미래의 즉흥극을 기획하는 우루 주변의 남자들처럼 말이다. 실은 우루도 처음부터 신으로서 존재한다기보다 시간을 초월하는 경지, 과거에 집착 않는 경지에 서서히(?) 오름으로써 신이 되는 편이다. 따라서 인간과 신 사이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단절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것은 매우 빈약하고 부정확한 글이다. 배수아의 소설을 어떤 철학적 서사로 풀어보려는 시도 자체가 부당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에 내가 느낀 바를 남겨놓는 데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면 - 그렇게 될 게 분명한데 - 그때 이 글을 발판 삼아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