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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20111 주절주절

 멋지게 차려입고 커피숍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다. 배가 고파질 때즈음 인도 음식점에 가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게걸스럽게 난을 해치우고 싶다. 2년 만에 코인 노래방에 가서 자우림의 신곡을 불러보고 싶다. 정말 소박한 꿈들인데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막상 하루를 저렇게 보내고 나면 너무 들떠서 논문의 소굴로 못 돌아올 것 같다. 반대로 막상 하루를 저렇게 보냈는데도 별로 들뜨지 않아서, 어차피 논문을 다 써도 별 것 없겠구나, 생각할 것 같다. 멋지게 차려입는 대신 싸구려 부츠를 신고 눈을 밟았다.


 영향력을 휘두르고 싶은 생각 같은 건 없어, 그가 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할 때마다 내 외피와 알맹이 사이의 괴리를 느껴버린다. 그렇게까지 좋지 않은 것에 대해 좋아한다고 좋았다고 말한다. 그렇게까지 싫지 않은 것에 대해 표현하지 못한다. 조금 생각한 것을 부풀려 말하고, 많이 생각한 것에 대해 함구한다. 그런 나 자신이 싫어서 혼자 있는 편을 택하지만 외롭다. 그러다 보니 연구실이나 지하철에서 다 함께 말 없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우두커니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호의적인 누군가와 책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S가 독일로 가기 전에 사진들을 몇 장 보내줬다. S는 내 사진을 찍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번 사진도 무척 마음에 든다. 지금 그녀는 어느 부자 도시에 있다.

같이 '열망'을 봤던 날.


 △가 세 시간을 들여 내 보잘것 없는 석사 논문 서른 쪽 남짓을 읽어줬고, 전화로 한 시간 넘게 코멘트를 해줬다.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는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애초에 선악을 넘어서 사유하기를 꿈꾸지만, 누구보다 덕스럽고 마음이 따뜻한 애다. 까마득한 옛날에 블로그 주소를 알려줬는데 들어와보지는 않는 것 같다. 어차피 써도 모를 테니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발을 새로 샀다. 무척 마음에 든다.


 “중학교 1학년 때,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가 있었거든요. 아무 이유 없이 친구를 끌어당기는 애들 있잖아요. 입을 열면 모두가 듣고, 입을 닫으면 모두가 눈치를 보는.”

 나는 난 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풀꽃 씨가 계속 말을 이어나가도록 고개를 끄덕여줬다.

 “걔가 그때 당시에 잘나가던 걸그룹 하나를 엄청 싫어했어요. 먹는 거 싫어하는 척하는데 자세히 보면 뚱뚱하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너무 말라서 젓가락 같아 보기가 싫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상한 건데, 그땐 걔랑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저도 비난에 동참했었어요. 예쁜 척하는 게 너무 싫다고요. 그 가수들은 예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예뻤던 건데…… 제가 배우가 된 뒤에도 그분들은 계속 활동하고 계셨고, 어쩌다 마주친 적도 있었어요. 나이도 어린 저한테 깍듯이 인사해주시는데 너무 죄송했어요. 지금까지도 너무 큰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어요.

 근데요, 첫 영화 찍은 다음 중학교 때 그 애한테 카톡이 왔는데요. 영화 너무 잘 봤다고, 연예인이 될 줄은 몰랐는데 완전 팬이 됐다는 식의 단순한 내용이었어요. 근데 그 친구 카톡의 프로필 뮤직이 옛날 그 걸그룹 멤버 중 한 명이 낸 솔로곡이더라고요. 아, 걔는 그걸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하면서 죄책감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그냥 노래 좋네, 하고 말았을까요? 궁금해서 정말로 물어볼 뻔했어요.

 그게 왜 궁금했냐면, 약을 하기 전에도 절 욕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거든요? 성형한 가슴이라 싫다느니, 몸 팔아서 배역 딴 게 틀림 없다느니, 배우가 돼가지고서는 키가 좆만하다느니…… 중학교 때 저희 교실에서 이루어졌던 이야기들만큼이나 터무니없었고 내용만 더 잔인해졌죠. 근데 저는 그 사람들이 나중에라도 제 영화를 보거나 제가 나오는 예능을 보고 웃을 때 저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지가 알고 싶었어요. 자기가 욕을 했었다는 사실을 그냥 잊어버릴지, 아니면 계속해서 욕을 할지, 욕하고 싶은 배우 얼굴은 왜 보고 있는지……. 저는요, 이 무지를 감당하는 게 연예인의 몫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는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면서 풀꽃 씨의 이야기에 경청했지만 사실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았다. 풀꽃 씨는 이미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나는 생각을 마무리할 시간을 벌기 위해 배가 불러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회를 집어먹고 술을 마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답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다음 한 마디 역시 내 사고의 종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방금 전의 이야기와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아무튼 저는 무시 못할 허물을 가지고 있어요.”

 어찌 생각하면 연결되지 않는 편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일상에 몰입하려 하다가도, 자신에겐 허물이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과거로부터 날아온 화살에 찔리는 듯이 감각하는 것이 풀꽃 씨가 한 인격으로서 자연스럽게 느껴야 마땅한 죄의식이었다.


 '파주'라는 영화를 봤다. 배우 서우의 비주얼을 좋아해서. 그러나 비주얼 이상의 무언가를 경험한 것 같다. 내가 언젠가 상상하기를 열망했던 서사의 구체가 화면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나 같은 것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 자문했다. 그러다가도, 좋은 것이 있을 땐 그냥 감상하면 되지 경쟁을 붙일 필요는 없지 싶었다. 어제는 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에 드는 일은 매우 인간적이다. 인간적인 것은 대개 좋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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