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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20123 진자운동

김조류, Affekt(2021), 테라코타 콜로라타: 백자에 안료.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전시에서.

 네게 무슨 일이 생기든 네 곁에 있을게. 너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게(이제는 다 괜찮아). 너의 미래도, 그것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든지 간에, 있게 되는 그대로 긍정할게(다 괜찮을 거야.) 네가 해왔고, 하고 있는 행동을 그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함부로 평가하려들지 않을게. 네 글의 독자가 되어줄게. 네 글의 팬이 되어줄게. 네가 무서워 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같이 싸워줄게. 너의 겁에 공감하지만, 같이 휘말리지는 않을게. 어쩌다 온 세상이 네 적이 된다면, 나도 온 세상의 적이 될게. 온 세상이 네 적이 되는 밤. 그 밤에 네가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줄게. 그 다음날. 낮이 되면 커피를 끓여줄게. 결국에는 네가 옳았다고, 너는 옳다고 생각해줄게.

 내가 사랑으로부터 기대하는 말들이지만, 사실 나 스스로도 얼마든지 같은 이야기를 되뇌일 수 있다. 발화자에게 권위를 부여하기가 어려울 뿐.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텅 빈 주관만을 끌어안고 살아갈까. 언제까지 이렇게 줏대없이, 비굴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리 끈질기게 철학을 공부한다 한들 나는 어디까지나 의견을 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하나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내 의견을 남의 의견보다 참된 것으로 만들어주는지. 스스로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조금만 생각해봐도 의견에 불과한 것으로 뒤집히는 내용들을 어떻게, 마치 그것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옳은 뭔가를 되비춰주는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규정할 수 있는지? 오만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자신감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슨 기적인지?

 하지만 내가 의견이라면 남도 의견이다. 세계는 수많은 의견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도 진리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의견도 거짓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사회만이 심판을 하고, 매우 자의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래서 나는 사회를 믿지 않는다.

 만일 모두가 의견들이라면 모두가 맞았거나, 모두가 틀렸다. 전자는 도덕에 반하고, 후자는 희망에 반한다. 철학을 하면서 맞고 틀림을 따질 수밖에 없는 나는 도덕을 버리거나 희망을 버려야 한다. (아니면 관습을 좀 더 신뢰할 수 있게 되든지.) 몇 안 되는 약한 근거들에 기대어 사유와 행위를 규정함과, 그 규정의 한갓된 특수성을 알아차리는 반성 사이의 무한한 진자운동으로서의 인간적 삶 속에서. 무엇이든 하라, 필연적인 후회는 너의 몫. 아무것도 하지 마라, 무규정성의 수치심도 너의 몫.


 이따금 아이를 낳고 싶어진다. 세계에게 내 아이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진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기적인 이유로 아이를 낳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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