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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소마와 프시케(2018.3)

서양고대철학 수업시간의 망상에서 시작해 공모전에 응모도 했지만 탈락했던 이야기. 심사평이라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퇴고를 굉장히 오래 거쳤었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사람이 없이 텅 빈 해변. 나와 영미가 그 위에 드러누운 채로 있다. 가까이서 파도가 철썩이지만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백사장 곳곳에 박힌 소라껍질도 표면이 너무 고운 나머지 인공의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영미가 제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혹은 움직임을 당해도 피부에 모래 한 알 달라붙지 않는다.

 이튿날은 아늑한 오두막이다. 이 오두막에도 수상한 구석이 있다. 가까이서 난롯불이 타오르는데도 내 맨살은 뜨거워질 줄을 모른다. 벌겋게 색이 달아오를 리도 없으니 근심을 던 채, 그저 영미에게 가까워졌다가 물러나기를 빠르게 반복한다.

 그 다음날의 호텔방은 하얗고 두툼한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다. 폐쇄된 실내는 호화롭기 그지없다. 가구는 값비싼 나무로 된 듯 반들반들하고, 장식용 동상이 현란한 굴곡을 자랑하며 몇 개씩 우뚝우뚝 서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입체적이지가 않은데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입체적일 필요가 있는 것은 내 아래에 누운 영미와 우리 둘의 무게 그리고 운동을 지탱하고 있는 침대뿐이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몇 분간 지속되어온 인내를 관두고 나니 바로 안녕히 가십시오, 란 말이 들려온다. 영미가 자신답게 차가운 목소리로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녀의 눈동자로부터 빛이 사라진다.

*

 나에겐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학 여러 곳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아내가 있다. 시간강사라는 직업의 악명에 부합하듯 강의수당이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월급과 합치면 자식 없이 둘이서 먹고 사는 데엔 그렇게 큰 지장이 없다. 뭐,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도 한 달에 두어 번쯤 근사한 외식을 할 수 있고,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살 수 있으며, 전세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달에는 가슴이 조금 쪼그라든다만 그거야 우리만 느끼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

 아내는 가끔씩 인세라는 것도 받는다. 몇 년 전에 웬 자그마한 출판사에서 단행본을 하나 냈다. 제목이 뭐였더라? ‘열 가지 키워드로 읽는 아리스토텔레스’였나. 아무튼 나는 아직 들춰보지 않았으나, 그녀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학기 초마다 열성적으로 사는 모양이었다. 번역일도 곧잘 맡았으므로 계약한 금액이 한꺼번에 들어올 때면 통장 잔고가 귀여운 수준으로나마 불었다. 이 시대에 지식 따위를 팔아 수입을 얻는다니 재수가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강도 높은 노동 덕분에 우리는 어엿한 집 한 채를 소유, 아니 점유하고 있으며 두 명이 눕기에 충분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단, 그 위에서 몸을 섞지 않은 지는 좀 오래되었다. 외출복과 다름없이 온몸을 완전히 가리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 서로 20cm쯤 떨어져있는 두 베개 위에서 각자 곯아떨어질 뿐이다.

 나와 아내가 친해진 것이 침대 위에서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의 서먹한 현재는 꽤나 낯설다. 20대 후반에 친구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첫 만남 이후로도 종종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는 있었다. 그러다 맥주만 딱 한 잔 하고 귀가하려던 어느 날 저녁,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주말의 술집 분위기에 괜히 휩쓸려서 과음을 하고, 함께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서는데 그녀가 나의 집에서 잠깐 쉬고 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먼저 자청한 만큼 그녀는 나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와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눈치였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자신의 가구라도 되는 것처럼 내 침대 위에 털썩 올라앉았다. 볼이 발그레해진 내가 다가가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때에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입술을 맞췄다. 옷을 벗지는 않았지만 꽤 오랜 시간 침대 위에 찐득하게 붙어 있었다.

 다음 만남 역시 술집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에 대학원생이었던 그녀의 학교 근처로 내가 찾아갔다. 가까운 이자카야에 들어가 메뉴판을 쥐어든 우리는 꼬치 몇 개와 사케 한 병을 시켰다. 그녀는 주문을 마치자마자 한 번도 사케를 먹어본 적이 없다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였다. 내가 괜찮겠냐고 묻자 괜찮다고, 요즘은 음식이든 옷이든 일부러 새로운 것만 찾아다닌다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청바지만 입어왔던 그녀가 원피스 차림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옷이 예쁘네요.” 칭찬을 건네고 쑥스러운 미소를 돌려받으니 사케가 먼저 나왔다. 내가 그것을 따라내는 동안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잔이 조용하게 채워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 번 마셔보라고 하자 그녀가 아이처럼 까르르거렸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처음 마셔보는 거잖아요.”

 물론 나에게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케를 마셨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녀만큼 들뜨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반면에 그녀는 고작 술 한 병을 가지고 기대에 차서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마치 처음부터 만족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사케를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가 봤을 때 사케가 아니라 이름 모를 전통주를 마셨어도 흡족해했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이상스러웠지만 사연을 듣고 나니 그녀가 굳이 새로운 것을 탐내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접시와 술병을 거의 비웠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얼마간 수줍은 태도로, 학창시절부터 자신은 줄곧 책만 보는 삶을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고등학생을 위한 참고서가 대학에 와서 철학 책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근 10년 간 그녀의 삶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이 재미있었고,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지만 활자와 논리 외에 다른 것을 동원하는 삶은 어떨지 언제나 궁금했다고 말했다. 석사 논문을 쓰는 최근 들어서 더욱, 독서가 아닌 다른 일에 몰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덧붙였다. 책이라는 물건과 안녕을 고한지 정말 오래였던 나로서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렸던지라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책만 읽었어요?”

 나는 그러면서 나의 옛 시절을 떠올려봤다. 그녀의 대학생활이 책, 책, 책, 책이었다면 나의 대학생활은 술, 술, 여자, 마지막에 가서야 책―취업준비용 참고서적―이었다. 이에 약간의 변명을 한다면 나는 이성이 아니라 감각이야말로 인간의 핵심이라고 여겨왔다. 나는 눈앞에, 그리고 손끝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들,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욕망에 충실하게 생활해왔으며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의 방식이라고 믿었다. 글자를 통해 뭔가를 경험하면 그 체험이 나의 내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왜곡되기까지 한다, 언어는 그 의미가 변덕스러운 바람 같은 반면 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암석처럼 머물러있으니까, 그러므로 지식이 아니라 감각이야말로 인간적 삶의 본질이다, 라고 나는 그녀를 향해 일부러 현학적인 말을 섞어 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내가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내심 이것으로 명석한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내 삶의 지론을 듣고선 또 한 번 까르르 웃고는, 그럼 짐승들이야말로 아주 잘 살고 있는 거군요, 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 눈웃음을 치면서 인간이 뭐 별겁니까? 짐승이죠, 라고 받아쳤다. 그녀의 얼굴에 잠시 씁쓸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낯빛이 다시 밝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도 그녀는 이전과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내 인생에 교수와 학생 말고도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필요해요, 라고 피곤한 목소리로 전해왔다. 그러면서 아주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왜 그녀가 학문에 약간의 조예도 없는 나와 만남을 이어가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철학에 지겨워진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사유보다 행동이 앞서고, 숙고보다 농담에 능숙한 나와 기꺼이 입술을 맞춘 것이다.

 그날도 그녀는 나의 집에 들러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면서 그러죠, 라고 대답했다. 물론 방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전혀 태연하지 못했다. 우리는 입술을 맞추면서 냉장고와 옷장과 서랍장 사이를 부산스럽게 오갔다. 내가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거칠게 구는 바람에 그녀의 몸 이곳저곳이 가구에 부딪쳤다. 아프냐고, 미안하다고 말하려 입술을 떼면 첫 모음을 뱉을 틈도 없이 그녀가 다시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우리는 점점 침대와 가장 가까운 가구인 책상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몇 번, 거의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내 책꽂이를 힐끔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나마 있는 책도 몇 쪽 읽지 않은 자기계발서 같은 것이었고, 개중에는 성인잡지도 하나 끼워져 있어―그건 끝까지 읽었다―살짝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그 텅 빈 책꽂이가 오히려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시선을 거두자마자 내 귀에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속삭여줬다.

 이윽고 나의 침대 위에서 벌어진 일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짜릿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진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 날의 섹스가 그녀에게 첫 번째 경험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사정을 마치고 숨을 돌리는데, 그녀가 자꾸 자신의 음부를 만지작거리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선홍색의 피가 그녀의 손끝을 물들이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왜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처음이라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은데, 굳이 말을 꺼낼 이유가 있냐고 되물었다. 어차피 조금밖에 아프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면서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나중에 가서야 그녀는 그때 거짓말을 했음을 털어놓았다. 당신이 내 안으로 양날도끼를 넣고 흔드는 느낌이었다고, 이딴 게 사람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쾌락이라니 믿기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견딜 만 했다고 말해줬다. 그 뒤로 우리는 농밀한 연애를 시작했다. 둘 다 나이가 차서 1년 만에 얼떨결에 결혼을 결정하기 전까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관계를 가졌다. 당시 그녀에게 나는 이성으로부터의 해방과 감각으로의 피난을 의미하는 사람이었고, 나에게 그녀는 나란 인간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상대였다. 일, 이년간의 신혼 생활 역시 본능에 충실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짧은 신혼 기간이 지나자 우리는 슬슬 침대보다는 다른 곳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나는 TV를 볼 수 있는 거실에, 아내는 책으로 가득한 서재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동물적인 생활로의 일탈을 이제 그만두고 다시 철학에 마음을 두려하는 것 같았다. 석사 학위 논문을 쓸 때는 나와 한참 연애를 할 때였던지라 무엇을 하든 대충 대충이었는데―그런데도 논문을 무사히 통과시킨 그녀의 기본적인 지성에 놀랄 뿐이다―결혼하고 1년 뒤,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부터 그녀가 확 달라졌다. 틈이 날 때마다 사랑을 나누길 원했던 아내가 공부에만 전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사람이 하루에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잠자기 직전 침대 위에서조차 내 팔뚝만한 장서를 들고 있기에, 자신을 어루만지는 나의 손짓 하나 하나에 책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를 부여하던 예전의 그녀가 돌연 그리워졌다. 그런 생각에서 슬쩍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어봤지만 냉담한 표정만이 돌아왔다. 순간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이성의 신도나 다름없었다. 성욕에 찌든 이교도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봤기 때문이다. 나는 고고한 척을 하는 아내가 괘씸해져서 돌아누운 채로 잠을 청했다.

 몇 년 뒤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의 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여러 학교에서 교양과 전공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철학 수업을 열었다. 전임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논문도 꼬박꼬박 써야 했으나, 당장은 수업 준비로도 바빠 다른 일을 해낼 여력이 없어보였다. 요즘에도 아내는 틈만 나면 나로서는 읽을 줄도 모르는 꼬부랑 문자들을 정독했다. 한 번은 그녀가 알파벳이라도 가르쳐주겠다며 내게 펜을 쥐어줬는데 엡실론에서부터 머리가 아파와 관두기로 했다.

 그 동안 나는 회사에서 따분한 나날들을 보냈다. 내 유일한 낙은 주말에 소파 위에 늘어져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을 볼 때면 서재에서 공부를 하는 아내가 가끔씩 볼륨을 낮춰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면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는데 볼륨을 낮추면 어떡하냐고 내가 타박을 줬고, 그런 날엔 더 이상 서로에게 한 마디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책을 보느라 바쁜 그녀와 그 빈틈없는 분주함이 불만스러운 나 사이의 관계는 소원해져갔다. 급기야 우리는 섹스를 그만 두기에 이르렀다.

 속상한 일이었지만 최악의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서, 특히 돈 문제 때문에 파경으로 치닫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데 적어도 우리는 둘 다 돈을 벌고 있었고 주머니 사정도 그런대로 괜찮았으니 충분히 축복받은 가정 같았다. 게다가 예전처럼 애정표현이 섞여있지는 않아도 간간히 대화를 나누기는 했다. 나는 아내와 텔레비전의 볼륨을 조절하는 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오랜 친구 사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결혼생활이었다. 문제는 아내와 관계를 갖지 않는 일과 나의 성욕이 수그러드는 일은 별개라는 점이었다. 아내와도 이렇게 된 이상 나 또한 소위 고상한 삶을 살겠노라 결심했건만, 그럼에도 이따금 참기 어려운 욕정에 시달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붙은 파리의 좌표를 찍을 바엔―대체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단 말인가―가만히 눈을 감고 애무를 받는 게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놀아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뿐더러 도의를 거스르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홀로 속을 앓다가 퇴근길에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회사 동료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대뜸 ‘영미’를 권유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지자 동료는 껄껄거리면서 영미는 사람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고?”

 “너 못 들어봤어? 섹스로봇이라고……”

 그에 따르면 횡단보도 건너편, 술집이 즐비한 뒷골목에 섹스로봇의 서비스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미는 인간이 아니니까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면서 좀 비싸긴 하다고 덧붙였으나, 동료의 얼굴에 피어오른 은근한 미소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날 바로 술기운에 의지해 영미가 있다는 곳을 찾아 나섰다. 길가의 사람들과 괜히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불콰해진 얼굴을 푹 숙인 채 횡단보도를 건너 술집과 노래방으로 가득한 거리를 지났다. 주변을 살피지 않은 탓인지 중간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도를 벗어나 차도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화가 난 차들이 한꺼번에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댔다. 내게는 그 소리가 마치 최후의 경고음처럼 들렸다. 집에 있을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기까지 했다. 때마침, 핸드폰이 울리면서 그녀에게서 어디냐는 문자가 왔다. 얌전히 가고 있다고 대답한 뒤 집으로 직행하고 싶은 마음이 잠깐 일었다. 하지만 섹스로봇이란 물건의 정체가 너무도 궁금했던 나머지, 결국은 한참 회식 중이라고 둘러대고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마침내 동료가 말해준 가게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카운터에 시큰둥하게 앉아있던 주인이 처음 오시는 거냐고 물었다.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내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가게의 내부에는 노래방처럼 문 닫힌 방들이 복도의 양옆으로 쫙 들어차있었다. 방음장치가 설치된 모양이었으나 지나치게 흥분한 목소리들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두 볼이 붉어질수록 발걸음은 빨라졌다.

 내게 배정된 방에는 주변의 벽과 바닥, 천장으로 임의의 배경을 쏴주는 빔 프로젝터, 흰 시트가 씌워진 싱글 사이즈 매트리스 하나 그리고 영미가 있었다. 주인장은 특수한 세척제를 묻혔다는 휴지를 손가락에 끼워서 영미의 엉덩이 사이로 쑥 집어넣었다가 뺐다. 낯이 뜨거워진 나는 고개를 돌렸지만 주인은 일부러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영미는 말 그대로 깨끗하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주인이 방을 떠나고 조금 뒤에 빔 프로젝터가 켜졌다. 곧바로 사방에 가상의 숲이 펼쳐졌다. 기다란 나무 뒤로 야생동물들이 숨었다가 다시 기어 나오는 이미지가 이어졌다. 그 안에서 나는 최초로 영미와 대면했다.

 영미는 눈빛이 공허하고 피부가 지나치게 탱탱한 것을 제외하면, 겉보기에 나체인 여성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아니 그것은 TV와 인터넷에서 언제나 떠들어지는 완벽한 몸매를 구현하고 있었다. 처음엔 영미를 만지기가 망설여졌지만 인위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몸의 굴곡에 점점 마음이 놓여갔다. 나는 천천히 나의 입술을 열감이 도는 기계의 가슴에 갖다 댔다. 영미가 나의 애무에 맞춰 다양한 박자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은 몸을 움찔거리기까지 했는데, 영미도 감각이란 것을 할 줄 안다고 판단해야 하나 싶었다. 이용자가 가하는 자극에 일일이 어울리는 반응을 보이도록 설계된 모양이었다. 내 아래에서 부르르 떨면서 행복해 하는 존재가 섬세한 컴퓨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조금 께름칙했으나, 당장 손에 잡히는 인공의 피부가 너무 부드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영미를 거부할 이유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영미는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인사하면서 빠르게 허벅지를 오므렸다. 나는 눈빛이 꺼진 영미 옆에 대(大) 자로 누워 숨을 돌렸다. 침대를 둘러싼 동물들의 이미지가 빔 프로젝터에 가까이 있는 내 사타구니에도 겹쳐졌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원래대로 작아진 나의 성기를 다리로 가리려고 했다.

 방에서 나와 계산대에서 지갑을 열어 노란 지폐를 꺼내는 동안, 사실 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나 허무했다. 멀쩡한 아내를 두고 바깥에서 이러고 있는 꼴이라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도 일주일 정도는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서재에 있는 아내와 거실에 드러누운 나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영미를 이용한 지 딱 일주일이 되던 날에는 아내와 다시 한 번 관계를 시도했다. 침대에서 내가 잠옷을 벗기려고 하자 그녀는 늘 그랬듯이 몸서리를 쳤다. 저녁 내내 말도 안 걸다가 갑자기 왜 이러냐는 짜증만이 되돌아왔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잠을 청했고, 곧이어 저도 모르게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소마’ 아니면 ‘프시케’라는 말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나는 그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적어도 그녀의 연구와 관련되어있음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적어도 꿈속에서는 내 이름을 부를 줄 알았는데 이성이 잠들고 나서도 오로지 철학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의 무관심 속에서 영미를 찾아갈 정당성을 발견했다.

 그 후로는 나도 모르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래로 피가 몰리는 듯했다. 업무를 마치고 나면 매일 같이 영미를 찾아 갔다. 로봇 위에서 열심히 허리를 흔들 때마다 저음의 탄성을 내지르면서 ‘이건 기계야, 몸을 경시하는 아내를 대신할 몸-기계야’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내 안에 남아있는 긴장을 풀어주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은 10번을 이용하면 1번은 공짜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받기 위해 회원카드까지 만들었다.

 나는 점점 로봇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에 익숙해져갔다. 남몰래 자위를 하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나는 영미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영미는 그저 스위치를 켜면 전기가 돌아 생기는 온기만을 존재의 신호로, 물리적인 자극에서 오는 타인의 쾌락만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무생물이었다. 반면 내가 애정을 주는 대상은 로봇과 달리 온전한 생명을 가진 내 아내였다. 누구에게도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나의 도구 영미, 나의 사랑 아내.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들어줄 완벽한 구별의 도식을 고안해냈다.

*

 “요새 즐거워 보이네. 근데 좀 핼쑥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 옥상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영미를 소개해줬던 동료가 불쑥 나타났다. 나는 “왜겠어”라고 말하며 킥킥대고는 그가 내민 캔 커피를 받아들었다. 동료는 한동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입술을 깨물다 갑자기 영미에 관해 물어왔다.

 “무슨 문제는 없지?”

 “무슨 문제?"

 “요새 좀 자주 간다 싶어서. 와이프랑은 문제없어?”

 “문제없을 거라고 말한 건 너였잖아.”

 “그래도 너무 자주 가지는 마라.”

 나는 동료의 조언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들이켰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면서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요즘 부쩍 늦게 들어가긴 했지. 한 번은 다 하고 잠들어버린 적도 있어. 주인이 내선전화로 불러서 겨우 깼다.”

 말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싱거운 웃음이 터졌다. 동료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정수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사무실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사라지던 때에 나는 영미의 안으로 들어가는 정액은 어디로 흘러들까, 영미의 안에 주머니 같은 것이 따로 있을까, 그렇다면 주인장은 마치 청소기의 먼지주머니를 비우듯 매일 손수 욕정의 잔액을 버리는 걸까, 그런데 주인장은 티슈로 영미를 닦는 것 말고도 위생에 신경을 쓰기는 할까, 하는 메스껍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생각들에 잠겨있었으므로 계단과 부딪치는 그의 발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주말에는 아내가 갑자기 나들이를 가자고 졸랐다. 요즘 다들 왜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서 뭔가를 묻거나 요구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멀리 나가면 피곤하니 집 근처의 공원이나 돌자고 말했고, 아내는 대답이 늦긴 했지만 나의 제안에 수긍했다.

 나는 대충 세수만 하고 머리도 감지 않은 채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반면에 아내는 집을 나가기 한 시간 전부터 옷을 입어보았다. 한참을 안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준비를 마치고 나온 아내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나에게 자기 모습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어딘지 낯에 익은 옷차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우리가 처음으로 사케를 마셨던 날 보았던 원피스였다.

 “웬 유난이야.”

 나는 그녀가 젊었던 시절을 이제 와서 흉내 내는 것이 우스웠다. 문득, 방금 쏘아붙인 말의 어조가 내가 스킨십을 요구할 때 아내가 일삼았던 거부반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복수에 성공한 듯해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먼저 현관문을 나섰고, 나도 승리감에 취한 채 그녀를 따라갔다.

 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서로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는 이 미터 쯤 앞에서 역시나 도도하게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뒤에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걸었다. 웃긴 동영상이 있기에 그녀를 불러서 같이 보자고 했더니 퉁명한 목소리로 관심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그래, 넌 심오하고 어려운 것만 좋아하니까, 하고 되받아쳤다.

 공원을 한 바퀴쯤 돌았을 때는 어느새 내가 아내를 추월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스포츠웨어를 제대로 갖춰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형형색색의 운동복들이 피부에 밀착되어 몸의 크고 작은 굴곡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다들 몸매관리에 열심인 것처럼 보였지만 군살이 아예 없는 사람은 드물었다. 딱 붙는 바지 위로 뱃살이 튀어나와있기도, 뛸 때마다 허벅지살이 출렁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와 대비되는 영미의 완벽한 몸매를 떠올렸다. 그녀에게는 애초에 출렁거릴 살이 존재하지 않았다. 출렁거리는 것은 처음부터 물컹하도록 만들어진 가슴이나 엉덩이 정도였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그것의 영원할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그런 대단한 몸이 여태껏 나를 귀한 손님으로 모셔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쑥스러운 일이 생겼다. 나는 티셔츠를 끌어내리고 말까 하다가 그냥 아내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공원의 입구에 다시 다다랐으니 집과는 굉장히 가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다가 알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는 척하면서 손으로 성기를 매만졌다. 손놀림이 점점 빠르고 거칠어졌을 쯤엔 수돗물을 틀어 마찰음이 밖으로 새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다. 둔탁한 소리가 이어지면서 나는 외로운 절정에 치달았다. 세면대 위로 하얀 액체가 떨어졌다가 수돗물과 함께 한순간에 배수구 속으로 사라졌다. 문득 진짜 섹스를 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영미가 다시 떠올랐지만, 그것도 진짜는 아니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소파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아내가 같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나오기를 줄곧 기다린 눈치였다. 그녀가 오래 기다려야 했던 이유가 자위 때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으나 정액이 하수구로 들어갔으니 증거는 인멸된 셈이었다.

*

 ‘열 가지 키워드로 읽는 아리스토텔레스’라.

 나는 아리스토어쩌고라는 사람에 대해 그가 유명한 철학자라는 것, 그리고 아내가 그를 전공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봤지 그 사람이 뭘 주장했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언제 어디서 산 사람인지도 헷갈리는 판이었다. 평소에는 그 정도로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텔레비전 옆에 놓인 아내의 저서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갑자기 저 책을 지금이라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래도 나랑 결혼한 사람이 쓴 책인데 펼쳐보기는 해야지 싶었다. 소파에서 읽다가는 중간에 잠들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아내의 책을 들고 그녀의 서재로 들어갔다.

 아내의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컴퓨터 한 대와 역시 내 팔뚝만한 책들, 그리고 그녀와 내가 서로를 향해 방긋 웃어 보이는 웨딩사진을 끼운 액자가 전부였다. 당시 나와 아내에겐 주름이 거의 없었고 몸매도 꽤 날씬한 편이었다. 둘 다 뱃살이 추하게 늘어진 지금과는 영 딴판이었다. 나는 유쾌하고 감각적이었던 신혼생활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어들었지만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었음을, 아내가 공부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부터 내게 소홀해졌음을 상기했다.

 그녀가 한참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을 때 이루어진 대화는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가 결과적으로 더 이상 사랑을 나누지 않게 한 일련의 사건들 중에서 아마도 발단 격의 일이었다. 아주 평범한 어느 날 우리는 각자의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 침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했는데, 아내가 내게 자신이 뭘 공부하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돌연히 물어왔다. 나는 철학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고, 아내의 말투가 유난히 상냥하기에 슬쩍 허벅지에 손을 올려보았다. 그녀는 날 뿌리치지 않는 대신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철학을 잘 모른다고 해도 사랑하는 아내가 매일 무엇을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차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설명해주겠다면서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는 지금 몸과 영혼 사이의 관계를 공부하고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영혼은 몸을 떠날 수 없으며 둘은 언제나 함께라고, 왜냐하면 몸은 한 인간의 ‘질료’인데 영혼은 한 인간의 ‘형상’이니 뭐니 하면서 내게 온갖 잡다한 지식을 주입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말을 아예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는 별로 재미도 없고 딱히 알아듣고 싶지가 않아서 그만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밤엔 공부를 쉬고 즐거운 일을 하자고 치근덕댔다. 그런데 그녀의 잠옷바지 속으로 손을 넣자마자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왔다.

 “당신은 항상 내 몸만을 원하는군요?”

 아내의 목소리엔 은근하기는 해도 확실히 분노가 배어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다, 일단 그녀의 속옷을 벗기려 했던 손을 빼냈다.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약간의 재치마저 발휘했다.

 “아까까지 몸이랑 영혼은 하나라면서요!”

 그러나 웃어줄 줄 알았던 그녀는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고, 나로부터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차라리 욕지거리를 듣는 게 나을 만큼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아내가 정말로 육체와 영혼이 하나라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둘이라고 믿는 것인지에 대해 아주 잠깐 생각해보다가 머리는 쌩쌩한데 몸이 피곤해서 잠에 들어버렸다.

 그 후로도 밤마다 애절한 요구와 단호한 거절이 반복되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로 회상을 마무리하고 나를 대신해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철학자에 관한 책을 아무 장이나 펼쳐보았다. 마침 그의 영혼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장이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에 따르면, 그리스어로 ‘프시케(ψυχή)’인 영혼은 오직 생물만이 갖춘 생명의 원리로서 다섯 가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양섭취 능력으로, 개체와 종의 생존을 보장해줍니다. 식물은 오로지 이 능력만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는 감각 능력으로, 바깥의 사물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셋째는 욕구 능력으로,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넷째는 장소이동능력으로, 오직 일부 동물만이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사고 능력으로, 오직 인간만이 앞의 네 가지 능력에 더해 이 능력을 가집니다……”

 이로써 나는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가 로마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 된 도리로서 아내가 전공하는 사상가의 출신지 정도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섹스마저 영혼의 소관으로 보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섹스도 기본적으로는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행위니까 말이다. 당연히 몸에 귀속되리라 생각했던 활동도 생명의 원리인 한 영혼이 담당하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섹스로봇인 영미도 몸-기계가 아니라 영혼-기계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그 생각이 우습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영미는 자극을 적절하게 읽을 줄 알았으니 감각 능력도 가진 셈이었는데, 책의 각주에 의하면 감각 능력을 가질 경우 자연스럽게 욕구의 능력도 갖추게 된다고 쓰여 있었다(나는 이에 동의했다). 만약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작자가 옳을 경우, 영미는 지각할 수도 욕구할 수도 있는데다가 가끔씩 몸을 움찔거리기도 하니 약간의 장소이동능력까지도 가진 듯이 보였다. 생각하는 혼만 없다뿐이지 영미는 적어도 동물의 반열에는 오른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섹스로봇은커녕 로봇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시대의 철학에 영미를 대입해가며 그녀의 영혼을 분석하는 일에 열을 올렸다. 이것이 바로 철학의 재미인가, 싶어 시시거리다가 그것마저 지겨워졌을 때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혼은 그리스어로 ‘소마(σῶμα)’인 신체 없이는 이 능력들을 발휘할 수 없으며, 신체를 떠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해석상의 논란이 있는데……”

 논란이 있다는 그 부분부터는 내용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나는 던지듯이 책을 내려놓고 서재를 나왔다. 그동안 아내는 거실 소파에 내팽개쳐져 있던 나의 지갑에서 회원카드를 발견하고선 기겁하고 있었다. 거기엔 내가 언제, 얼마나 자주 섹스로봇을 이용했는지에 관해 아주 정직하게 적혀있었다. 아내는 무료 서비스의 고지를 코앞에 둔 카드를 내게 들이밀면서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카드를 따로 숨기지 않은 것이 후회됐지만, 어쨌거나 떳떳했으므로 영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몸-기계, 아니 영혼-기계 영미, 인간이 아닌 영미, 생각할 줄 모르는 영미, 당신과는 다른 영미…… 조금 장황하게 말한 듯 했고 내 목소리가 떨린 것도 흠이었으나, 그렇게 똑똑한 아내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으므로 설득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퇴근할 때마다 아주 자유롭게 영미를 만나러 갔다. 아름다운 영혼-기계와 한바탕 뒹굴고 나서야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아내가 예전보다 ‘빨리 들어오라’는 말을 자주 했고 전화도 평소보다 많이 걸긴 했어도 내가 그녀의 요구에 굳이 굴복할 이유는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학교를 쉬는 날이었는데, 퇴근 시간 전후로 한 두 통의 부재중 전화가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전부터 일찍 들어오라는 문자가 쌓였다. 안 그래도 일이 산더미 같은 마당에 난 데 없이 재촉을 당하니 신경질이 나서 핸드폰을 꺼버렸다. 실제로 유난히 늦게 퇴근한 뒤에는 업무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미를 찾아갔다. 업소의 주인이 “우리 단골손님”이라고 말하면서 내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방음벽을 뚫고 터져 나오는 다른 이들의 신음소리를 웃어넘기면서 곧장 영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영미의 눈에 불이 들어왔고 빔 프로젝터가 환하게 켜졌다. 오늘의 배경은 양장된 책으로 빼곡한 도서관이었다. 표지에 글씨가 하나도 없는 가짜 책들이었지만 진짜라고 해도 어차피 읽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책을 대신해 영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한참 몸을 움직이면서 나는 섹스 없이는 인간이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것 없이도 인간이 살 수 있었더라면 영미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물건에게 태어났다는 표현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 영미에겐 영혼조차 없을 테니까…… 그 흐뭇한 생각에 이르러 사정했다.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내의 눈가가 까맸다. 너무 울어서 아이라이너가 몽땅 지워져버린 것이었다. 학교도 안 간 날에 왜 화장을 했냐고 물을 차에, 과일 따위가 올라간 접시와 소주 두 병이 식탁에 놓인 것을 보았다. 나를 기다리다 지친 듯이 보이는 아내는 서재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그 너머로 그녀가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머리가 아파져서 나도 모르는 사이 습관에 따라 텔레비전을 켰다가 1분 뒤 껐다.

*

 종전의 눈물을 기점으로 아내는 나의 행보에 대해 더 이상 불만도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귀가 시간이 늦든 이르든 신경 쓰지 않았으며, 휴일에 화장을 하거나 나들이를 가자고 조르는 등의 기행도 그만 두었다. 덕분에 나는 가상의 바닷가, 오두막, 그리고 호텔 스위트룸 등에서 영미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건 아내가 아니라 나의 성기 쪽이었다. 전부터 약간씩 간지럽더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줌이 나오는 순간엔 마치 전기충격기로 고문이 가해지는 것만 같았다.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며칠을 앓다가 하루는 회사의 점심시간을 틈타 비뇨기과에 다녀왔다. 의사는 이것저것을 검사해본 뒤에 내가 요도염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그건 성병이 아니냐고, 최근엔 단 한 번도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약간은 더듬거리면서 따졌다. 의사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매우 드물긴 하지만 성관계 외의 원인으로도 요도염이 발병할 수 있으니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다.

 나는 충격에 휩싸인 채 병원을 빠져나와서 회사로 돌아갔다. 남은 업무를 설렁설렁 끝낸 뒤 바로 귀가했다. 당분간은 성기에 무리를 주지 말라기에 그 날은 영미에게 가지 못했다. 그렇게 얌전히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분명 불이 켜져 있어야 할 우리 집이 컴컴했다. 오늘은 아내가 유일하게 수업이 없는 요일이었고 말없이 외출할 사람도 아닌데 이상했다. 혹시 층수를 잘못 셌나 싶어서 옥상에서부터 아파트 창문들의 개수를 눈으로 훑었다. 10, 9, 8…… 아내와 내가 사는 802호는 확실히 불이 꺼져 있었다. 그녀가 저녁부터 일찍 잠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1층을 지나면서 우편함 안에 우리 집 앞으로 봉투가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겉 부분에 발신인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아 이상스러웠지만 호기심에 못 이겨 열어봤다. 그 안에는 아내의 손글씨로 쓰인 편지가 담겨 있었다. 내 몸도 영혼도 한 인간의 것으로 존중하지 않는 ○○ 씨에게, 라는 말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별거를 요구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나는 한 손에는 요도염 약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아내의 편지를 쥔 채로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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