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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10619 강릉 탐방

 며칠 간 서울을 떠나있었다. 에어비앤비를 빌려 강릉 바닷가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언니를 찾아서. 강원도는 학부 막바지에 문예창작 동아리 친구들과 춘천에 갔던 것 이후 처음이다. 영진의 해변에 머물렀는데, 날씨가 서울보다 쌀쌀했고 바람도 대차게 불었다. 그런가 하면 해가 비칠 때만큼은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었다. 여건이 되지 않아서 해수욕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바다는 실컷 보았다. 시간 순으로 남기고 싶은 기억들을 기록한다.

 

 

 밤 열차를 탔는데, 바깥 풍경을 보려고 아무리 열심히 눈을 치떠도 이따금 새빨간 십자가 사인들만 보일 뿐이었다. 터널을 지나고 있지 않았을 때에도 세계가 어둠으로 뒤덮여서 창은 내 지루한 얼굴만을 되비쳐주었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거울 보기를 중단하고 수업 과제를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을 꺼내들었다. ⟪정신현상학⟫은 정말이지 굉장하고, 그 굉장함에 비례해 난해하기도 한 책이다. 평생을 침대 맡에 두고 읽어도 모르고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남을 그런 책. 헤겔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리포트를 쓰기로 생각한 '양심' 장에 이르기도 전에 열차가 강릉에 도착해버렸다. 서울과 동해 사이는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 않았다.

 언니가 머무는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정신현상학⟫을 마저 읽었는지 그냥 자버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모기가 엄청 많았다는 점, 그리고 그 모든 모기들이 너무나 힘이 없었다는 점만은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시공디스커버리 총서의 ⟪뉴턴: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로 1분만에 모기 네댓 마리를 처치했다. 책을 다시 꽂아넣으면서 언니가 모기들이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니 후련하지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곳만 찾아 숨고, 무언가로 내리치려는 순간 쏜살같이 도주하고,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아 밖으로 나갔나 하고 자리에 누워 잠들려 하면 귀 근처를 앵앵거리는, 그러니까 나에게 적지않은 골칫거리인 대등한 적이 아니라 한참 아래인 피라미들을 학살한 듯한 느낌을 나도 가졌다. 하루이틀 뒤부터는 벽에 붙은 모기를 봐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밤이 돼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에 붙어있는 것만으로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고 있는 것 같았다. 

 

  
 

 둘째 날엔 언니와 나란히 인쇄해간 헤겔을 깔고 앉아 바다를 봤다. 날이 흐려서 수평선이 뚜렷하지 않았다. 바다를 보면 본능처럼 가슴이 뻥 뚫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도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적당히 앉아 있다가 깔고 있던 헤겔의 모래를 털고 카페에 가서 마저 읽었다.

 

 

 저녁에는 주문진으로 나가 대게를 먹었다. 얼마 전에 쯔양이 대게 8kg을 먹는 방송을 눈이 휘둥그레져가지고는 봤었는데... 나는 다리 몇 개와 등딱지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갔지만 숙소로 돌아올 때는 소화를 위해 걸었다. 플립플랍 대신 구두를 신고 나간 것을 후회했다. 밤에는 언니에게 화상회의 일정이 있었고, 나도 옆에서 '양심' 장을 끝까지 읽었다.

 셋째 날은 정말 별 일이 없었다. 바닷가의 카페에 나갔다가 추워서 한 시간만에 되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예전에 수집해뒀던 2차 문헌을 읽었다. 관광지들을 가까이에 두고 안타까웠지만 여행만 할 만큼 한가롭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감동적이고 유용한 글들을 여럿 접했다. 다음은 제일 마음을 울렸던 구절.

 "양심은 그러므로, 인정된 것의 모든 구체적 영역으로부터 고로 의미있는 행위들로부터 떨어져있는 의무의 순수한 개념에 적합한 침묵 상태에 남아있고 싶지 않다면 행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 한편으로 그렇다면, [양심]은 행위해야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양심]은 각 행위에 대해 그것이 자신에게 의미하는 바와 타인들에게 의미하는 바 사이의 '안티테제'가 있을 것임을 늘 알아야 한다. 위반의 본성적 가능성은 언제나 발발한다. 왜냐하면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의 핵심에는 심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María del Rosario Acosta López, Hegel and Derrida on Forgiveness: The Impossible at the Core of the Political, Derrida Today 5.1, 2012, p.60)

 

 

 저녁에는 나도 화상으로 세미나가 있었고, 언니도 일을 했다. 굽네 치킨의 갈비천왕을 시켜 먹고 '무드 인디고'란 영화를 봤다. 후설이 종종 세계가 기존의 모든 질서를 잃고 무화되는 일이 상상 가능하며, 그때에도 지향적인 내용은 존재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런 무화를 필름으로 담은 듯한 정말이지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에 나왔던, 음악을 연주하는 대로 그에 맞는 술을 제조해주는 칵테일 피아노는 아직도 가지고 싶다...

 넷째 날에는 우리나라의 1세대 바리스타인 박이추 씨께서 운영하시는 카페에 갔다. 구부정한 등에 커피콩처럼 둥근 얼굴, 산뜻한 옷차림이 인상적인 분이셨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파는 가게를 열어 손님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삶은 뭐랄까, 물론 애환도 많으셨겠지만, 참 낭만적이다.

 

 
 

 저녁에는 언니와 사소한 다툼이 있어서 혼자 카페에 나가 공부를 했다. 그래도 덕분에 밤바다를 볼 수 있었다. 해변에 해맑게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웃는 소리를 들으며 등대가 깜빡거리는 주기를 마음 속으로 측정했다.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언니와 자연스럽게 화해했고, 같이 프렌즈 시즌1을 보며 떡볶이와 복숭아를 먹었다.

 

  
 

 마지막 날. 숙소를 떠났다. 줄곧 창밖으로 보였던 대저택은 대저택이 아니라 대펜션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내의 오죽헌에 들렀다. 철학 공부하면서 율곡 이이 생가도 안 가니? 라고 언니가 꾸짖었기 때문이다. 이름대로 정말 근처의 대나무들이 까마귀처럼 검었다. 오죽은 마치 사람처럼 60년을 사는데, 처음에는 연두색이었다가 점차로 검어지고, 늙어서는 하얘지는데 죽기 직전에 꽃을 한 번 피운다고 한다. 너무나 신비스러운 식물이었다. 율곡이 '문성공'이라 불린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기념관까지 둘러보고 나서는 강릉역 근처의 카페에 잠시 들렀다. '이진리 커피'라는 곳이었는데 구석구석 모든 곳을 절실하게도 레트로풍으로 꾸며놓은 카페였다. 옛날 시계가 놓인 창문 밖으로는 쨍한 색깔의 지붕들이 보였다. 어쩌다 그런 원색을 고르기로 결심하셨는지 사시는 분들께 여쭙고 싶을 정도로 쨍했다. 그 위로 하늘엔 구름이 목화솜처럼 둥글었다.

 

  
 
 

 언니를 두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사실 지금 일기를 쓸 때가 아니고 얼른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면 기억들을 잃을까 두려워 블로그를 켰다. 어떨 때는 이 카테고리에 있는 글들이 부질없게 느껴져 다 지워버리고 싶다가도 어떨 때는 그래도 소중하디 소중한 일상의 기록들로 여겨진다. 방금도 이전의 일기들을 지우려다 하트를 보내준 친구들에게 미안해 그만두었다. 개인 블로그에서까지 완벽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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