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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10506 기도와 작약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 문득 너무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내 머릿속은 온갖 비관적인 시나리오들과 잠재적 갈등들로 가득 차올랐다.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테라스로 나가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꽤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다. 우선 저의 모든 비관을 멈춰주시고, 어떤 경로로든 내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매 순간 최선의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어떤 불행 가운데서도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선함과 희망을 달라고.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부탁을 드렸다.

 눈을 뜨니 나뭇잎들이 단박에 내 좁은 시야를 메웠다. 벌써 단풍이 돋은 나무가 있었고, 앞으로도 청록빛을 간직할 소나무도 보였으며, 초여름을 맞이하는 푸르른 잎들이 잔잔한 바람에 흔들렸다. 문득 내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는 당장 수행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철학을 공부할 수 있으며, 소설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고, 블로그에 심경을 적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 읽고 싶은 책을 구할 수 있고, 꽃집에서 원하는 꽃을 살 수 있다. 며칠 전 집에 빈 와인병이 생겨서, 어제 집으로 돌아오다 분홍색 작약 한 송이를 샀다. 물에 담그자마자 몇 분 되지도 않아 만개해서 깜짝 놀랐다. 영원히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리가 없어서 슬프다.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잘 가꿔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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