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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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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연대기> 한유주, , 문학과 지성사, 2018 어떤 것이, 누군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다시 말해,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우선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란 서글픈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투명한 인간이 아닌 이상 존재는 존재만으로 쉽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증명되기 위해 자신 이외의 다른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유주의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신하고 타인에게도 그 당연한 것을 인정 받기 위해 분투한다. 나아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것을 확정하고 구체화하며 충분히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상실을 애도하려고도 한다. "나는 있다. 내가 있다(, 157)" 또는 "네가 있다[또는, 있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이 소..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전체에 대해: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읽었다. 을 좋게 읽었었는데 이번에도 사랑이라는 폭력적일 수도, 달콤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여성 인물의 내면을 꼼꼼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인상이다. 주인공 희주는 둘째 아이를 가진 뒤엔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주부이다. 희주의 욕망은 가족의 테두리를 허물지 않는 선 내로 통제된다. 그녀는 "붉은 지붕의 집(11)"에 사는 삶을 공상하며 그 속에서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바비큐를 먹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곧 그 선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심지어는 강화하는 허락된--고로 통제된--욕망의 예다. 그 붉은 지붕의 집이 허물어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집의 골격만 남은 그 터 위에서 희주는 근육질의 인부를 향해 허락받지 않은 자유로..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김혜진, , 현대문학, 2020 "그쪽으로는 아예 발길도 마라(140)." "그러게. 내가 남일동에 가지 말라고 했잖니. 그 동네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남일동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동네야(169)."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세세하게 묘사하기보다 홍이('나')의 내면을 따라가는 데 더 집중하는 서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남일동의 풍경이 내 마음의 눈 앞으로 스쳐지나갔다. 남일동은 재개발 계획이 몇 차례나 무산되고, 산사태가 산 아래 집들을 덮치기도 하며, 바로 옆동네인 중앙동 사람들의 무시의 대상이 되는 허름한 동네다. 남일동의 주민들은 서로에게 정을 기대하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온기가 있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지만, 다른 주민을 대함에 있어 세간의 편견이나 억측을 넘어설 만큼의 사랑은 품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