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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요약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도덕의 계보학(Zur Genealogie der Moral: Eine Streitschrift)⟫, 연암서가, 2020 ⟪도덕의 계보학⟫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도덕 또는 선악의 기원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주제이자 발생의 문제다. 니체는 이 문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정사실화되는 선 즉 이타심, 동정, 희생, 인내, 겸허, 용서 등등의 가치 자체를 의문시한다. 결론적으로 니체는 선악의 기원을 ①고귀함, 능동성 및 긍지와 ②비천함, 반동성 및 원한 사이의 대립--그리고 전자에 대한 후자의 정신적인 복수--에서 찾는다. 나아가 진리를 (힘에의) 의지와 소망, 심지어는 취향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대범한 시도를..
진리의 짧은 자서전(2017.2) 처음 습작을 시작했던 시절에 끄적였던 글들 중 그나마 완성도가 높았던 아이다.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부족한 대로 약간의 수정만 거쳐 아카이빙해둔다. 2017년 2월이라니 4년도 더 전인데, 글재주는 부족했어도 열정만큼은 무모할 정도로 컸었어서 오히려 그리운 느낌도 있다. 나는 글재주의 기준에선 얼마나 발전했을까. 열정의 기준에서는 얼마나 깊어졌을까. 스물넷에서 스물일곱이 되는 사이, 무엇을 잃고, 대신 무엇을 소화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중간에 내가 소설 쓰기를 진심으로 포기했었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을 대단한 과거형으로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유년기 스스로 돌이켜본 나의 어린 시절은 토막나 있다. 7살 이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는 말도 부적절할 정도로 무에 가깝다. 그래서 나란 역사의 초창기는 ..
사드(Marquis de Sade), <미덕의 불운> 사드(Marquis de Sade), ⟪미덕의 불운⟫, 열린책들, 2011 '사디즘'이란 말의 원류가 된 사드 후작의 소설들을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왔고, 마침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번역된 판본이 있기에 구매했다. ⟪미덕의 불운⟫은 온갖 술수로 백작부인이 된 언니 쥘리에뜨와 달리 정직함과 자상함,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 타인을 해치지 않고자 하는 마음, 은혜 입은 사람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등 거의 모든 미덕을 갖춘 동생 쥐스띤느가 미덕을 발휘할 때마다 바로 그 미덕을 이유로 매번 새롭고 보다 잔인해지는 불운들을 끊임없이 맞이하는 이야기다. 소설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어, 쥐스띤느가 아직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언니 쥘리에뜨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20210506 기도와 작약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 문득 너무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내 머릿속은 온갖 비관적인 시나리오들과 잠재적 갈등들로 가득 차올랐다.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테라스로 나가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꽤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다. 우선 저의 모든 비관을 멈춰주시고, 어떤 경로로든 내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매 순간 최선의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어떤 불행 가운데서도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선함과 희망을 달라고.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부탁을 드렸다. 눈을 뜨니 나뭇잎들이 단박에 내 좁은 시야를 메웠다. 벌써 단풍이 돋은 나무가 있었고, 앞으로도 청록빛을 간직할 소나무도 보였으며, 초여름을 맞이하는 푸르른 잎들이 잔잔한 바람에 흔..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홍성광 옮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열린 책들, 2011. 1952년, 가난한 중년 부부의 하룻밤. 독일의. 흔히 사랑은 명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표상된다. 무엇보다도 삶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감정으로서 꿈꾸어진다. 그러나 사랑이 가난과 만나면 도리어 절망의 근원이 된다. 프레드 보그너와 캐테 보그너는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그들은 단칸방에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다가,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하자 별거를 감행한다.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노동에 지쳐 집에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하지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을 때리자마자 죄책감에 시달려 그들이 우..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요약 및 논평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공간에 대한 푸코의 짤막한 사유들을 조각조각 모아놓은 책이다. 작년 9월 나는 절망에 빠져있었고, 절실한 마음으로 서촌에 나가 보안서점에서 구매했는데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이제 와서야 펼쳐봤다. (한참 니체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느낀 탓도 있다.) 이 책에는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적인 몸', 그리고 '헤테로토피아'의 정제된 판본 격인 '다른 공간들' 등이 실려있다. '유토피아적인 몸'은 우리의 몸은 그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장소이며, 그곳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모든 유토피아적인 공상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푸코의 에세이는 결국 몸이 세상의 중심으로서 그 자체가 유토피..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선악의 저편(Jenseits von Gut und Böse)⟫, 아카넷, 2018 파죽지세의 작가, 성실한 역자, 깔끔한 내지 디자인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완벽한 철학서. ⟪비극의 탄생⟫의 창의적이지만 장황한 성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감동적이지만 암호와 같은 성질, ⟪우상의 황혼⟫의 가독성 좋지만 산만한 성질, ⟪이 사람을 보라⟫의 재미있지만 난잡한 성질이 ⟪선악의 저편⟫에는 없다. ⟪선악의 저편⟫은 내가 읽어본 니체의 저작 가운데서 가장 명료한 논지와 서술을 갖춘 책이다. 그의 핵심적인 사상들이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비록 1886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저술되었기는 하지만 니체 이전의 철학사에 익숙하기만 하다면 니체 입문서로 제격인..
Oh my lov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2018.4) ⟪화실⟫이란 장편소설을 쓰기 전--제 1회 박상륭 문학상에 호기롭게 응모했다가 심사평도 받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언젠가 다시 제대로 써내서 세상에 내보일 것이다--그 이야기를 아주 막연하게만 예감하면서 자유롭게 써내려갔던 소품이다. 낙성대역의 바에서 처음으로 마셔봤던 위스키 맛을 열심히 기억하고 있다가, 대학동 고시촌의 어느 카페에서 늦은 저녁시간에 끄적였었다. 영감의 원천이 됐던 노래를 첨부한다. 과거의 내 딱딱한 문체와 유치한 표현들은 지금 봐서는 견딜 수 없다. 그래도 그때 나름의 정취가 담겨있으니 최대한 내버려두었다. www.youtube.com/watch?v=u3QZVdqUidw 밤을 꼬박 새우고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취기를 내 안에서 쫓아내려 몸부림쳤다. 몸부림이라고 해봤자 날 집으로 돌아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