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문학과지성사, 2023.
우다영의 세 번째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모두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인간성의 본질, 혹은 (본질주의의 언어가 부담스럽다면) 조건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그것은 그 개념상 선험적으로 성립하는 것으로서, 한낱 경험적인 변화에 불과한 문명의 발달이나 지구적 사건에 의해 좌우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SF라는 장르는 인간적 삶의 선험적 구조를 극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한다. 여기서 '극적으로'란, 인간의 조건 가운데 하나를 과감히 삭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에서는 자아의 단일성을,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에서는 한 번의 탄생과 한 번의 죽음으로써 규정되는 삶의 유한성을, <긴 예지>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기도는 기적의 일부>에서는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욕망을, 표제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에서는 육체성을 삭제 당한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인간성의 골조들이 문학적 실험대--혹은 단두대--에 오른다. 결과적으로 우다영은 이 삭제가 영혼의 상실로 귀결되는지, 아니면 인간성의 초월을 의미하는지를 독자에게 에둘러 묻는다.
우다영이 삭제시킨 인간의 조건들은 다양하되, 결국 인과라는 테마에로 수렴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과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려면 반드시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범주(Kategorie)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 내 모든 대상은, 그것이 인간에게 대상인 한, 인과의 사슬 속에 있는 것으로 주어질 수밖에 없다. 인과의 사슬 바깥에 놓인 것은 물 자체(Ding an sich)로서, 인간의 순수이성이 가닿을 수 있는 한계 바깥에 놓인다. 이로써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 아치에네미인 데이빗 흄의 인과적 필연성에 대한 회의주의를 반박하고, 인과적 필연성을 원래대로--그러니까 우리네 상식대로-- 경험적 세계 내에 돌려놓고자 한다.
인간의 조건이 변경된 우다영의 세계에서 역시 인간은 인과의 굴레에 얽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대개 인과에 입각한 패턴 분석 및 예측 행위의 효용을 신봉한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원인에서 친숙한 결과에로 이어지는 인과의 필연성을 무너뜨린다. 이때 필연성이 무너지는 방식은 우연과 사랑, 정확히 말하면 우연한 사랑에 깃드는 간절한 마음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세계 규정이자, 그를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 또한 규정하게 만드는 인과의 개념이 무너지는 순간, 우다영의 인물들은 비로소 가장 인간적이 된다. 이를테면 단일해야 하는 자아가 자기 안의 타자를 그리워하고(<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사랑이 불발될 것을 아는 인물이 사랑하는 이에게 아침의 세상을 보여주며(<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세계의 배후적 시스템 매기가 가동하는 '자동완성' 시스템의 결점을 이용하는 혁명적 인간군이 있는 식이다(<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이렇게 우다영은 인간의 패턴 바깥에서 인간성을 재발견한다. 현재 활동 중인 한국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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