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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단편소설

배수아, ⟪올빼미의 없음⟫ 중 '올빼미'

배수아, ⟪올빼미의 없음⟫, 창비, 2010, 모든 강조는 필자의 것.

명불허전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면 더더욱 처절하게 타인의 존재를 갈구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칠 법한데도 '날 찾아올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강인함이란, 내가 이번 생에서 모방이나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일까.


 "일년에 한 번 정도 날 찾아와요.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매년 이맘때 도시를 방문해서 집의 문앞에 적힌 이름을 읽어줘요. 내 이름이 있으면, 나는 여기 살고 있는 거니깐. 그러면 망설일 필요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여기서 한두 주일 지내요. 내게는 낡은 타이프라이터가 있으니 그걸 사용해서 방에서 번역 일을 해도 좋아요. 부엌은 비좁긴 하지만 간단한 아침식사나 수프 정도는 만들어 먹을 있죠. 그리고 바로 아래 골목에는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 많고 상점에서는 언제든지 과일과 빵과 만두, 맛있는 커피를 있답니다. 이곳은 일년 내내 창문을 열어둘 수 있어요. 저녁 때는 폐허로 산책을 가요. 원한다면 이 방에서 당신의 난초나 새를 길러도 좋아요. 당신의 난초나 새에게 당신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고 아침마다 말을 걸어도 난 조금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나도 몇시간이고 난초와 새와 나란히 앉아 당신이 모국어로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겠어요. 당신은 난초에게 물을, 새에게 모이를, 그리고 내게는 당신의 언어를 주는 거죠. 내게 그것은 가사 없는 사랑의 노래처럼 들릴 거예요. 당신의 가방을 일년 내내 이곳에 놓아두어도 괜찮아요. 그런 유행가를 알고 있나요? 가방을 놓아두면 이듬해에도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하겠지만, 당신이 놀랄 만큼 많은 일을 함께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밤에는 둘이 나란히 앉아 레몬차를 마시면서 내가 글을 당신에게 읽어주겠어요. 그러면 당신은 나의 첫번째 독자가 되는 거죠. 그건 내가 당신에게 해줄 있는 작은 선물이에요. 그렇게 일년에 한 번 정도 날 방문해요. 이 도시에서 휴가를 보내요. 이 도시에서 당신이 가보지 못한 다른 도시를 꿈꿔요. 가보지 못한 도시들에 관한 글을 써요. 함께 꿈으로 여행해요. 그러다 어느해 이 집의 문앞에 내 이름이 없으면, 그때는 내가 더이상 당신을 맞아들이지 못하고, 그리고 더이상 당신을 기억도 할 수 없게 된 걸로 생각해요. 당신에게 읽어줄 것도 없고, 당신의 말을 들을 수도 없어요. 그때부터는 해가 바뀌어도 날 찾아올 필요가 없어요. 마침내 아무것도 없게 것이고, 그리고 정말로 너무나 혼자가 되었을 테니까. 그래서 당신조차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것일 테니까."(<올빼미>, 6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