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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단편소설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최애리 옮김, ⟪행복한 왕자⟫, 열린책들, 2021.

표지의 색감이 무척 예뻤다.

 오스카 와일드의 짧은 소설 네 편이 실린 책이다. 가장 유명한 <행복한 왕자>는 뭉클했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너무 작위적이었다. 사랑에 실패한 뒤 실속 있는 형이상학 공부로 되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젊은 학생의 독백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분석형이상학도 분께 보내드렸더니 "그게 실속이 있다고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내보이셨다. <별 아이>도 그저 그랬지만 <어부와 그의 영혼>만큼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어부와 그의 영혼>은 인어에게 반한 어부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제거하면서 시작된다. 영혼은 계속해서 어부에게 자신을 다시 받아들여달라고 유혹하지만, 지혜에 대한 약속도, 부에 대한 약속도 어부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부는 끝내 춤추는 여자의 맨발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에 넘어간다. 그의 아내인 인어에게는 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혼은 춤추는 여자의 맨발을 보여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어부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그에게 여러 악행을 명령한다. 어부는 자신의 영혼에 저항하지 못하고 끝내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어부가 어째서 자신을 죄로 물들이느냐고 묻자, 영혼은 어부가 모든 마음을 인어에게 줘버린 탓에 자신은 마음 없이 지냈고, 그 탓에 선악에 무뎌졌다고 답한다. 어부의 마음은 자신이 사랑한 인어가 시체로 되돌아오자 터져버린다. 영혼은 마음의 공백을 기회로 삼아 주인에게로 되돌아가지만, 실연의 아픔을 딛지 못하고 익사를 선택한 주인과 함께 죽음을 맞는다. 사랑 및 선악 판단의 기관으로 상정된 마음과, 압박 및 지적 판단의 기관으로 상정된 영혼 사이의 경쟁이 흥미진진했다. 하나를 포기하면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만, 하나를 포기해버린 이상 다시는 결코 둘 모두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춤추는 여자는 결국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