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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각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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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스스로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망상과 다르게 지각의 정당성이 유지되며, 비현실감과도 다르게 주위 세계 자체는 그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다만 마치 자신이 그 부분이 아닌 듯이, 또는 스스로의 몸으로부터 '영혼'이 빠져나온 듯이 감각하게 될 뿐이다. 내 식으로 표현하면 실재에 대한 경험은 유지되는데, 실존의 경험은 배제된다는 뜻이다. 내가 나로서 살아있다는 느낌, 달리 보면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되찾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인감은 만성이 되면 정신장애에 해당하지만,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무엇이다. 이러한 병리가 가능함은 우리네 존재의 방식이 결코 눈앞의-존재가 아니라는 하이데거의 주장을 진실로 만든다. 철희도 영수도, 이인감을 느끼는 그 와중에조차 여전히 키가 몇 센티이고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라는 등 그들을 눈앞의-존재로 보았을 때에만 가능한 규정성들을 한결 같이 예화한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적 병리에 대하여 그것을 '비정상적' 사태로 보기보다 인간성이 무엇이며 사람에게 자기의 존재가 무엇이기에 그와 같은 병리마저 가능한지 물어야 한다.


 "우리가 보았듯, 사실적으로 죄책-있기(to be factically guilty)란 특정한 요구를 이행하지(discharge) 않음이며, 존재적으로 죄책-있기(to be ontically guilty)란 특정한 존재가능성을 이루는 무한한(불확정적인, indefinite) 요구들을 [전부] 이행할 수[는] 없음이다. 이제 나는 다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현존재가 존재론적으로 죄책-있기(to be ontologically guilty)란, 그가 그 어떤 존재의 특정한 가능성에로 스스로를 투사하든[가능성을 스스로의 프로젝트로 생각하든], 그가 그 자신으로부터 해방될(discharge) 수 없고 도리어 스스로에게 불가피하게 의무-지워져(beholden) 있거나 묶여(bound) 있음이다."(Guy Elgat, Being Guilt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271, 강조는 원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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