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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zehn

빛의 무게(2023.8)


 그르체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저는 미국 시를 읽고 있었습니다. 다른 승객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만 소리를 내서 말입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 절반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감각을 즐겁게 해준 것은 알아듣지 못한 나머지 절반이었습니다. 뜻을 모르는 단어들이 맞추는 각운에 저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황홀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알아들을 수 있었던 행들이 감동을 못 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합니까(So how should I presume)?’ 가장 눈에 밟혔던 구절이어서, 되풀이해서 중얼거렸는데, 흥분했는지 말소리가 너무 커진 모양이었습니다. 옆에서 졸고 있던 승객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공교롭게도 영국인이었습니다. 영국인은 다행히 왜 사람을 잠에서 깨우냐면서 저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양인의 얼굴을 한 제가 영어로 된 시를 읽고 있다는 데 관심을 보였지요. 자기도 대학 시절 그 시를 좋아했다고 말하면서요. 저는 제 눈에 가장 밟혔던 구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이 나와 과연 같은 구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단어 하나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presume’의 뜻과 ‘resume’의 뜻을 혼동했던 것입니다. 그 구절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그래서 나는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합니까, 가 아니라 그래서 나는 어떻게 추정해야 합니까, 가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류였다는 데 당황했고, 정확하게 해석된 문장을 통 이해할 수 없어 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시를 읽는 목적은 이해가 아니라 몰이해일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혼란에 빠지기 위해 시를 읽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미 혼란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시를 통해서 더 큰 혼란에 빠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는 시집을 덮고 영국인과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는 열차가 경유지에 정차했을 때 묵직한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마 긴 여행을 계획했거나,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겠지요.

 제가 이미 빠져있었던 혼란은 며칠 전에 받아든 검정색 소포 때문이었습니다. 소포의 발신인을 확인했을 때, 저는 너무 놀라서 동거인 미하엘라가 구해둔 자낙스를 입 안에 털어넣어야 했습니다. 낮부터 술을 꽤 많이 마신 상태였으므로, 어떻게 봐도 부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저는 부적절한 선택들만 하며 살아왔기에 부적절한 선택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낙스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미하엘라와 저는 늘 무언가에는 취해 있었고, 그중에는 잘 알려진 마약도, 출처도 이름도 알 수 없지만 현실감은 확실히 무뎌지게 만들어주는 정체불명의 약품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잊기 위해 현재와 미래를 말소시키는 길을 택해왔습니다. 그런데 소포의 발신인을 확인한 순간, 과거가 다시 저를 덮쳐왔습니다. 

 소포 속에는 가까운 이국의 초콜릿과 홍차 가루가 든 틴 상자, 편지 한 통, 무엇보다 청첩장이 한 장 들어있었습니다. 먼저 열어본 청첩장은 소포의 발신인과 제가 모르는 어떤 남자 사이의 결혼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어야만 그녀가 저의 주소를 찾아내고 제게 청첩장까지 보내게 된 정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읽기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녀를 평생 불구로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는 종종 정신을 잃곤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성을 잃곤 했습니다. 이성을 잃고 나면 머릿속이 코카인의 왕국이 된 양 새하얀 가루로 뒤범벅이 되었고, 저는 이유 없이 용솟음치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집어들어 첫 번째로 보이는 형체를 향해 던졌습니다. 물건을 던지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으면 대상이 벽이건 가구건 간에 그것을 제 손이 피로 흥건해질 때까지 손톱으로 할퀴었습니다. 칼처럼 위험한 물건을 들고 되는 대로 휘두른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녀, 미오는 당시의 제가 저지른 숱한 잘못의 피해자들 가운데 하나였고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했습니다. 저 때문에 한 쪽 손을 아예 쓰지 못하게 됐으니까요. 당시에 미오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그 지루한 스케일과 아르페지오를 하루에 몇 시간씩 치던 학생이었습니다. 이웃이었던 우리는 그 일이 있은 뒤로 더 이상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미오는 눈물을 흘리며 이사를 갔고, 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단지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은 더 씩씩거렸습니다.

 소녀와 소년 들을 위한 교도소에서 제게 주어진 것은 무한에 가까운 시간과 책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의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단 한 권만을 회피했는데 그것은 바로 성서였습니다. 당시 주일 미사를 주재하던 신부 님의 아무런 흠도 없어 보이는 깨끗한 미소가 싫었기 때문, 가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일곱 살의 어느 날,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호기심 반, 모종의 두려움 반으로 성서를 읽게 됐을 때, 저는 제가 저지른 잘못의 심각성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행위를 넘어 저의 존재함 자체에 대해 구토기를 느꼈습니다. 당장 저의 두 손을 다 잘라내서 하나라도 미오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성서는 신에게 의지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주일 미사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찬송가를 불렀고,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아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동안 저는 제 것을 비롯한 모든 죄조차 어떤 섭리 하에 종속된다는 데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세계 전체가 절대자의 품 속에 마치 난폭하지만 어디까지나 무력한 아이인 양, 폭 안긴 채로 운행되고 있다는 데 전율했습니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울타리쳐진 운동장을 홀로 빙빙 돌다 불현듯, 저 섭리야말로 제 잘못을 사해주기 이전에 야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오의 삶을 파괴하고, 저에게는 죄책의 고통을 심어준 신의 질서가 미웠습니다. 심지어 그것은 어디까지나 섭리가 존재한다면 오직 그 경우에나 통할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잘못을 제것이 아닌 섭리의 소관으로 돌리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잘못이 저의 잘못으로 남기 위해서는 섭리가 있어선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신의 꼭두각시나 윷가락 같은 것이 아니라, 저의 자유와, 따라서 저만의 책임을 가지는 한 명의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곧장 신부 님을 찾아가 저의 고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신부 님이라면 저에게 해법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부 님께서는 너의 책임과 전체의 섭리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세계가 만들어져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의 눈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조차 손쉽게 성취하는 것이 바로 신의 전능성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사람이 누리는 자유와 질서의 장악력 사이 저 조화를 믿을 수 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불가해했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서는 신부 님께서 저처럼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의 무게를 모르시는 것이라는 불경한 생각마저 일었습니다. 과연 그가 저와 동일한 무게를 진 채로도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수긍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신부 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의 이해력이 얼마나 누추한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우선은 고개를 끄덕여보였고, 주일 미사에도 계속 나갔지만 가슴 속에서 불신의 싹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처음 신앙을 갖는 것도 어쩌면 일종의 능력이며, 저는 그것에 무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퇴소 이후로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일지언정 아름다운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뒤늦은 데다 꼴사나웠으니까요. 저는 저의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고, 다만 스스로를 혐오함으로써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것으로 되었다, 생각하며 비밀스럽게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특히 미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는 한, 약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이 제가 책임을 다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미오가 저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날 중 하나를 축하해주러 와달라는 말을 전한 것입니다. 벌벌 떨며 열어본 편지 속에서 미오는 마치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저를 초대하고 있었습니다. 갖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밀려왔습니다. 우선 무서웠습니다. 제가 어떤 낯짝으로 미오를 볼 수 있겠습니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합니까? 어떤 각도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까? 그녀의 상체에, 건강한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음악의 근원이 될 뻔한 자리에 어떻게 시선을 둘 수 있습니까? 그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 동시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결코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으로서, 저는 그 빚을 만회하기 위해 미오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어야 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미오는 제가 자신의 결혼식에 와주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미오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미오의 삶에 행복을 더할 수만 있다면 저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저는 저의 모든 과거를 아는 미하엘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술과 자낙스에 취해있던 미하엘라는 이미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멍한 시선은 피안을 겨누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의 동거인이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의 너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다. 그런 나조차 너의 삶에 관여하지 않겠다. 너는 네가 해야 하는 것을 하라. 그런데 네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마저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의무가 아니라 너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비롯하는 선택임을 명심하라. 그런 동시에 너의 선택이 단순히 네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도록 주의하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저는 식장에 들어갈지, 말지를 채 결정하지 않은 채 우선 결혼식이 열린다는 작은 호텔에 도착해 생각을 매듭 짓기로 했습니다. 미오는 그 호텔의 프론트 일을 보다가 호텔의 주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편지에 써주었습니다. 호텔의 이름은 ‘펠릭스 쿨파’였고, 제가 사는 곳에서 기차로 아홉 시간 정도 가면 닿을 수 있는 도시인 그르체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르체크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기차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는 여느 때처럼 미하엘라와 함께 약에 취해 지냈습니다. 저는 제가 집을 떠나있는 사이 저보다 습관이 더 고약한 미하엘라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낯빛이 시퍼런 미하엘라에게 약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 무엇보다 죽지 말라, 왜냐하면 나 같은 존재에게도 돌아올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는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남기고 저는 그르체크로 떠났습니다. 그르체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저는 미국 시를 읽었습니다. 결국에는 가족도, 종교도 아닌 오직 문학만이 저에게 도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르체크는 듣던 대로 신과 성인을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 같았습니다. 도시 거주민의 무려 90퍼센트 이상이 독실한 신자라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저는 커다란 십자가 모양의 시계와 마주했습니다. 목을 축이기 위해 들른 카페에서도 찬송가가 흘러나왔고, 차를 내온 웨이트리스마저 저를 신의 이름으로 축복해준 뒤 커튼 뒤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차를 끝까지 마시지 않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르체크 중앙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텔 펠릭스 쿨파는, 미오의 말 때문에 작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작았습니다. 이곳을 호텔이라는 화려한 명칭으로 불러도 되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누런 색 벽에는 그림 대신 어느 좌파 정당의 조악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그 옆에는 역시나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프론트의 직원은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결혼 준비로 일을 쉬게 된 미오를 대신하는 직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센스 같은 것이 피워져 있었지만, 눅눅한 공기 때문인지 향기롭지는 않았습니다. 낮은 천장과 가짜 보석으로 이루어진 샹들리에도 호텔에 허름한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그러나 체크인을 마치고 직원의 권유에 따라 야외 정원을 방문하자 호텔에 대한 저의 인상은 백팔십도 바뀌었습니다. 내일의 결혼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평소에도 이렇게 꾸며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원 속 풍성한 백장미들의 자태에 저는 아찔해졌습니다. 아직 봉오리 상태여서 기대와 안타까움을 함께 자아내는 송이도, 하루만 지나도 시들 것 같아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송이도, 너무나 적절한 형상으로 자라나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송이도 있었습니다. 꽃 하나 하나가 모두 제 가슴을 다른 종류의 애정으로 차오르게 했습니다. 미오가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바로 내일, 머리를 예쁘게 빗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채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을 맹세하리라고 상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저로 인해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게 되고도 그녀가 행복의 길을 찾아냈다는 데 감사했습니다. 동시에 행복의 길을 찾게 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헤아려보니 죄의식이 밀려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언젠가 용서 받을 수 있을지, 이 초대는 용서로 해석될 수 있을지, 설령 미오가 저를 용서하더라도 제가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백장미들의 한가운데 서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프론트에 잠시 맡겨두었던 짐을 되찾고 객실로 올라가 낡은 침대 위에 누웠습니다.

 삼 층에 위치한 객실의 공기는 로비의 그것보다 더 눅눅했고, 아니 꿉꿉했고, 제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안에서 숨 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빽빽하게 들어찬 가구들도 답답한 느낌을 배가했습니다. 냉장고는커녕 커피 포트도 없으면서 서가가 있었고, 책상은 두 개나 있다는 게 불가해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누워있는 채 서가를 눈으로 훑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죄다 고전이었기 때문에 어떤 책들인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어로 된 카프카의 ⟪소송⟫을 꺼내 몇 페이지 뒤적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프랑스어의, 아니 많은 서구의 언어들이 공유하고 있는 수동태라는 언어 구조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살던 도시의 어학원—그곳은 미하엘라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습니다—에서 프랑스어를 배웠을 무렵이었습니다. 초급 반의 학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교수자는 프랑스어로 수동태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먼저 능동문에서의 목적어를 주어 자리에 올리고, 알맞은 être 동사를 써주세요. 그 다음엔 과거분사를 붙인 뒤 ‘누구, 무엇에 의해’라는 의미를 담는 전치사 ‘par’를 능동문의 원래 주어와 함께 적어주면 됩니다. 교수자의 지시에 따라 수동태를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가 현재 시점에서 무슨 일을 당한다고 하면, 단순히 ‘je suis’ 뒤에 적절한 과거분사를 써 붙이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je suis’는 홀로 쓰였을 경우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suis’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être’ 자체가 ‘있다, 존재하다’라는 뜻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존재한다’라는, 어쩌면 가장 능동적인 의미를 가지는 문장이 어떻게 수동태를 만드는 데 쓰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삶이 그것의 주인인 자기의 자유로운 선택들로 이루어지는 것일 때, 존재 역시 최대한 능동적인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수동태로 쓰인 문장 가운데서 특히 ‘나’를 주어로 가지는 것은 모두 어떤 싸움의 광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까? 동사가 수동적인 상태를 강요하는 와중에도 ‘je suis’가 그 억척스러운 강요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je suis’가, 자신을 때려눕히려는 과거분사와 힘을 겨루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 성경에서 야곱이 괴력의 천사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구원되었다, 라는 뜻을 가지는 ‘je suis sauvée’ 같은 문장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문장은 원래의 의도에 반해 이제 구원의 불가능성을 함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성립하려면 구원받는 대상은 스스로를 완전히 포기한 채, 오로지 구원을 주는 손길에 자신을 내맡겨야 합니다. 구원은 정의상 자력으로 얻어낼 수 없고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부과되는 것, 닥쳐오는 것, 그리하여 그저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하다’라는 뜻의 동사 ‘sauveur’의 과거분사인 ‘sauvée’가 지닌 수동성의 위력은 다른 타동사들이 잠재적으로 지니는 수동성의 위력보다 몇 만 배는 더 강했습니다. 그러나 ‘je suis sauvée’  속 ‘je suis’는 그처럼 거센 강제 아래서도 꾸준히, 자신의 능동적 존재를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가 마지막까지 내세워지는 한, 구원은 좌절됩니다…… 그렇게 제 오후의 사변은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저는 모순을, 그것도 논리적인 모순을 범하지 않고서는 결코 ‘Je suis sauvée’라고 외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배낭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배낭 속에는 미하엘라에게서 훔쳐온 지퍼백이 들어있었습니다. 한 달 전쯤 되었을까요? 미하엘라가 새벽 네 시를 넘어 귀가한 어느 날, 그녀는 제가 실눈을 뜨고 있는 줄도 모르고 저의 눈치를 보면서 냉장고의 깊은 곳에 지퍼백 하나를 몰래 숨겨놓았습니다. 내용물은 미하엘라의 평소 취향을 생각했을 때 분명 아무 일도 없으면서 바보 같이 웃게 만들어주는, 그러나 물론 깨어났을 때는 극심한 혼란감과 고통이 따를 물질인 것 같았습니다. 성분도 효과도 알 수 없는 가루를 콧속으로 흡입하면서, 저는 머지않아 깊은 환각에 빠져들어 내일 미오의 결혼식이 끝난 다음 깨어나고 싶은 욕망을 느꼈습니다. 눈을 떴을 때 미오의 결혼식이 이미 끝나 있다면, 저는 어차피 아무 선택도 할 수 없었던 것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자유가 박탈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겁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양을 흡입했습니다. 약효가 발생하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 뒤로 제게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말로 형용해야 할까요? 한동안은 방 안이 만화경을 통해 보아지는 양 빙빙 돌면서 어지럽게 반짝였습니다. 방 안의 습기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면서 온몸이 물에 휩쓸리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촉각뿐만 아니라 청각도 예민해져, 창밖으로 보이는 야외 정원에서 하얀 꽃잎들이 햇살과 바람에 쓸리는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습니다. 당황스럽게도 그 과정에서 어떤 쾌락이 솟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강렬한 감각들이 저의 주의를 송두리째 빼앗아가 당장의 선택에 얽힌 두려움을 가려주었을 뿐입니다. 감각들의 향연 뒤로는 절대적 이완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찾아왔습니다. 죽은 듯이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저는 자정이 돼서야 깨어났습니다. 깨어나자마자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직전의 평온이 어처구니없어졌을 정도로 사나운 불쾌감, 온몸에 마치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 엄습했기 때문입니다. 가려움을 참을 수 없어 저는 온몸을 할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오는 고통도 참을 수 없어지자, 옷을 벗을 새도 없이 샤워 부스로 뛰어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었습니다. 화상을 입기 직전의 물 세례를 받으며 실컷 구토를 하고 나니 고통이 조금 진정되었습니다. 부작용이 그 강도에 비해 지속 시간이 길지 않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저는 불현듯 술을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체크인을 하면서 로비에 있는 바를 보았던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홀딱 젖어버린 옷을 쥐어짜서 세면대 위에 널어놓고, 내일 입으려고 했던 회색의 원피스로 갈아입었습니다. 머리에 물기가 가득했지만, 그래서 원피스 위로 물이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독한 술을 마시고 싶다,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는 이 가려움을 얼른 떨치고 싶다,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객실을 떠나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바에는 다양한 술로 빼곡하게 들어찬 선반이 있었습니다. 불꽃놀이를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선반이 지저분하게 누런 벽지와 대비되어 보물 창고처럼 빛났습니다. 그곳 앞에는 술잔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는 바텐더와 새까만 옷을 입은 채 나무로 된 바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자정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술 대신 커피를 시키고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향해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남자의 호의에 감동을 받은 저는 수첩에 무엇을 적고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내일 있을 부부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게 되었는데, 주례사를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남자가 멋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바람에 긴팔 옷의 소매가 살짝 내려갔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손등과 손목 그리고 팔로 이어지는 부분에 한때 거대했을 문신을 제거한 얼룩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그의 과거가 궁금해졌지만, 저의 운명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신 저는 신부 님이신 것 같은데, 성당이 아닌 곳에서 혼인성사를 주재하셔도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저의 당돌한 질문에 남자는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는 신부가 아니라, 말하자면 ‘유사신부’입니다. 그의 대답은 지나치게 우렁찼습니다. 마치 자신의 신분이 불법에 가깝다는 것을 알지만, 스스로라도 떳떳하지 않으면 어쩌겠냐는 듯이 말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세례를 받은 자와 세례를 받지 않은 자 사이의 혼인성사를 금하고 있습니다. 비영세자가 포함된 결혼의 경우, 교회 식으로 혼인할 수가 없게 되어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결혼을 위해 강론을 준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결혼에서는 신랑 측이 세례를 받지 않은 자입니다. 그는 다른 대륙에서 왔거든요. 저는 그의 친절하고 풍부한 설명을 통해 미오가 종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영세자와 결혼하면서도 신부에게 주례를 받고자 할 정도로 독실하다는 사실도 함께 말입니다.

 생김새를 보아 하니 여행자인 것 같은데, 당신에게도 신앙이 있습니까? 유사신부가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정의로운 동시에 자비로운, 심판하는 동시에 용서하는 단 하나의 신. 그를 믿느냐는 물음에 저는 교도소에 있었던 시절이 떠올라 목이 메였습니다. 저는 유사신부가 갖추고 있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설득력에 이끌렸습니다. 어쩌면 그의 지워진 문신이 설득력의 근원인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신앙을 희망합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유사신부는 신앙을 희망하면서도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제가 입 열기를 망설이자, 유사신부는 역시나 호탕한 목소리로 제가 처음 뵙는 분께 지나치게 까다로운 질문을 했군요, 심란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합니다,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를 향해 따뜻한 호의만을 가진 그에게 사과를 요구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제가 심란해진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끝까지 믿지 못한 것은 어쩌면 섭리가 아니라 대속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인간을 대신해 속죄한다뇨. 이를테면 저의 죄를 어떻게 다른 누군가가 대신 속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의 죄는 오직 저의 것이며, 참회도, 만회가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만회도 모두 저의 몫이었습니다. 저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는 신이나 그의 아들이 아닌 곧 미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줄곧 침묵하고 있던 바텐더가 유사신부가 입을 연 후로부터 키들거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저희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재미있는 대화로군요, 하면서 말입니다. 알고 보니 그는 이 호텔의 바텐더 겸 주인이자, 이 도시에서 드문 비영세자, 외국인, 그리고 미오의 예비 신랑이었습니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저와 비슷한 황갈색의 피부에 이곳 사람들만큼 뚜렷하지 않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습니다. 코가 높은 편이었지만 유사신부의 것처럼 우뚝하지는 않았고, 웃을 때마다 얼굴 한 쪽에만 보조개가 파였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어쩌면 동향인일지도 모르는 그를 향해서 제가 왜 적대감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터를 잡고 호텔을 운영하는 데 성공했을 정도로 성실한 사람인데. 그리고 분명 저와 달리 미오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일 텐데도 말입니다. 저는 주먹으로 이마를 거칠게 문지르며 그를 향한 저의 반감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땀을 흘렸는지, 신랑이 땀을 닦으라고 저를 향해 손수건을 내밀어주었습니다. 머리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알고는 계세요? 하고 익살스럽게 첨언하면서요. 손수건을 받아든 저는 감사를 표했습니다.

 내일이 예식인데 밤 늦게까지 일하셔도 괜찮으세요? 이렇게 질문하자 신랑은 킥킥 웃으며 저는 이 일이 좋습니다, 미오의 허락도 받아왔고요, 하고 답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일반 투숙객입니까? 아니면 결혼식의 하객입니까? 제가 미오의 지인들을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이번에는 그가 저를 향해 물었습니다. 일반 투숙객이라고 말해도, 하객이라고 말해도 거짓말이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식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아직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여전히 킥킥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하객이시군요. 미오의 옛 친구 분 아니십니까? 예전에 미오가 한쪽 눈썹에 긴 흉터가 있는 여자아이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자기 얼굴을 자기가 할퀴어서 난 흉터였다던데, 맞습니까? 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미오가 그에게 저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고는 절망했습니다. 놀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불가피한 일이었겠지요. 불구가 된 왼손에 대해 연인과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신랑의 말을 듣고 나자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생각들이 한 갈래로 모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내일 있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혼식에 참여한다면, 저의 존재는 미오의 기억에 보다 깊게 아로새겨질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미오의 기억에 저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 희미하게 남을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의 결심에 확신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식장에서 하객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미오와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칠 수 있다면. 그리고 혹시 그녀로부터 나만을 향한 미소를 수신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 제가 저 자신의 죄와 화해할 수 있으리라고 이기적으로 기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랑은 저의 속도 모르고 계속해서 미오의 웨딩 드레스와 야외 정원의 백장미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음식도, 아주 비싼 재료를 쓰지는 못했지만, 정성 들여 준비했지요. 사람 수보다 훨씬 넉넉하게 준비했으니 실컷 드셔도 좋습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제가 미오의 옛 친구 분께 술도 한 잔 대접하지 않았군요. 공짜로 한 잔 올려드리겠습니다. 어떤 것을 드릴까요? 선호하시는 술이 있습니까? 그가 기나긴 혼잣말의 끝에 제게 물어왔습니다. 저는 아까 받아든 손수건으로 괜히 눈을 비비며 눈물을 감추고 있던 차였습니다. 와인으로 만든 칵테일이 특히 맛있다는 그의 말에 저는 아무거나 달라고 말했습니다. 눈물을 참느라 본의 아니게 무심한 투로 뱉어진 대답에 신랑은 기분이 상한 것 같았습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알겠습니다, 하고 짧게 답한 다음 빠르게 획 뒤돌아섰습니다. 그는 계량 컵에 제가 라벨지를 읽을 수 없는 병으로부터 무언가를 계속 따르면서 줄곧 미오의 옛 친구, 라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친구라는 표현이 저는 거듭 거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는 유사신부가 수첩에 무언가를 막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피 같이 붉은 술이 담긴 유리컵이 저의 앞에 놓였고, 얼른 입에 대보라 부추기는 신랑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얼른 입에 대보세요, 그가 힘주어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술을 들이키자 식도와 윗배가 따뜻하게 달아올랐습니다. 첫 모금부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모금을 마시고 나니, 기분은 여전히 좋았지만 이상하게 숨이 가빠지면서 가벼운 흉통이 찾아왔습니다. 술 속의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일 수도 있었고, 객실에서 흡입한 약과 술의 상성이 맞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가 어떤 약을 흡입했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런 것을 따져가면서, 그러니까 죽음을 무서워하면서 약을 하는 쪽은 오히려 미하엘라였습니다. 아무튼 흉통은 저의 음주를 막기는커녕 재촉했습니다. 바텐더인 신랑의 자신감대로 와인이 담긴 칵테일은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습니다. 저는 가슴의 통증을 무시하고—어디까지나 가벼운 통증이었으니까요—혀에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잔을 모두 비울 수 있었습니다. 술을 다 마시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영혼의 일부가 육체를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사지에 힘이 빠졌고, 특히 다리가 휘청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내 균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힘도 그러모았습니다. 꼭 칵테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몸이 말을 안 듣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저 그런 일들 중 하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유사신부와 신랑에게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에게 내일 보자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만 웃어 보였습니다.

 객실로 돌아온 저는 찌릿찌릿한 감각이 남아 있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잠을 청했습니다. 눕기 직전 침대 모서리에 구겨넣어진 시트 일부를 꺼내고 있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꿈을 꾸고 싶은 욕망을 느꼈습니다. 하늘을 날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부 후원해주는 등의 진부하고도 달콤한 꿈들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꿈 없는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깨어있을 때 너무 많은 꿈을 꾸어온 나머지, 진짜 꿈을 꾸고 기억할 능력은 상실한 것만 같았습니다.

 

*

 

 이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는 허기를 느꼈습니다. 호텔에서 죽과 과일 따위를 조식으로 제공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어, 옆구리에 시집을 끼고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려는데 프론트의 직원이 저를 불러세웠습니다. 새벽에 저를 찾는 전화가 호텔에 걸려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미하엘라 소로라는 여자가 당신에게 몇 마디 전해달라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다시 전화하시겠어요? 직원은 말하는 중간 중간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어왔습니다. 저는 전화를 하지는 않고 메시지만 받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직원이 메모지 한 장을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미하엘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메시지의 내용은 별 것 없었습니다. 냉장고 속에 숨겨둔 지퍼백을 가져간 것 같은데, 그건 내 신경안정제이고—그녀는 정말 많은 종류의 약품을 ‘나의 신경안정제’라고 불렀으므로 딱히 실용적인 명명법은 아니었습니다—아마도 무해할 것. 하지만 모든 신경안정제가 그렇듯, 판매자를 믿을 수 없음. 그리고 네가 남기고 간 홍차는 별로지만, 초콜릿은 맛있게 먹고 있음…… 저는 직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뒤 메모지를 원피스 가슴께의 포켓 속으로 쑤셔넣었습니다. 저는 어째서 직원이 미하엘라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 외에도 세계의 구성원 모두가 약쟁이라고 생각하는 미하엘라가 너무나 쉽게 호텔 직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댄 것입니다. 저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벽과 바닥이 하얀 타일로 된 아담한 식당 안에는 여섯 개 정도의 원형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대륙에서 왔다는 미오 신랑의 지인들 같았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남은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원래 먹으려던 죽 외에도 소시지와 계란까지 그릇에 담은 채 말입니다. 미하엘라의 소식을 들으니 왠지 식욕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음식을 집어들면서 그르체크에 오면서 읽던 시를 펼쳤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그저 아름다운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던 구절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저녁이 하늘에 대하여 퍼져 있을 때 /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처럼(When the evening is spread out against the sky / Like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이라는 구절이었습니다. 특히 ‘환자’라는 시어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 선택해서 병에 걸린 것일까요, 적어도 자신의 선택의 결과 중 하나로서 병에 걸린 것일까요, 정말 존재는, ‘je suis’는 능동적이기만 한 것일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구원을 받을 수도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마치 방금 먹은 음식들로 인해 체라도 한 듯이 가슴이 답답해졌고, 어제 칵테일을 마시고 일었던 흉통이 되살아났습니다. 어제의 흉통이 전기적인 자극 같았다면, 오늘의 흉통은 마치 신의 손이 저의 심장을 움키고 쥐어짜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주 짧고 희미한 희망 뒤로 너무나 확실한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구원을 다시 꿈꾼 데 대해 벌을 받은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음식을 절반 정도 남기고 식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오후가 되면 미오의 결혼식이 치러질 야외 정원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식장을 거닐며 미오를 생각한 다음 호텔을 빠져나와 미하엘라의 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미하엘라의 품에 다시 안긴 채, 언제나처럼 약을 하거나 꿈 없는 잠에 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야외 정원에는 어제는 없던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저 멀리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주위는 미오의 신랑으로 보이는 남자와 제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잠들어있던, 그리고 미하엘라가 저를 찾았던 새벽에 인부들이 옮겨온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랜드 피아노는 설치되어있었을 뿐 아니라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두 손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섬세한 연주였습니다.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서있는 곳에서는 아직 연주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움직이면, 각도를 틀고,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연주자의 얼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마무시한 양질의 희망에 다시 사로잡힌 채 걸었습니다. 아니, 뛰었습니다. 그렇게 몇 걸음만 더 뛰면 연주자의 얼굴이 보일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발을 또 떼려던 순간이었습니다. 어젯밤 처음으로 시작되고, 식당에서 재개되었던 흉통이 마치 번개인 양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통증은 눈 깜짝할 사이 팔을 지나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그것은 곧 저의 움직임 전체를 마비시켰습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시각의 내용물도 흐릿해졌습니다. 결국에는 모든 사물이 새하얀 빛으로 번졌습니다. 저는 제가 서서히 의식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나온 삶에 대한 죄의식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약에 빠져살아왔던 것이 잘못이었을까요? 아니면 신랑이 성급한 목소리로 건네준 칵테일이 문제였을까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정신을 빼앗겨가는 채, 저는 죽음의 빛깔 그 한가운데에 매장되고 있었습니다. 사지가 굳어가는 것을 느끼며, 피아노를 두 손으로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미오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제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추정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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