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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zehn

커피하우스가 타버리고 남은 재(2021.7)

Raphael, Madonna del Prato(1506), oil on board, Kunsthistorisches Museum in Vienna

https://knower2020.com/forum/view/564861에서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커피하우스가 타버리고 남은 재

커피하우스가 타버리고 남은 재 7월의 비엔나는 마음이 부풀은 관광객들에게조차 역겨울 정도로 더웠다. 그들은 미술사 박물관 앞에서 한 마리의 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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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비엔나는 마음이 부풀은 관광객들에게조차 역겨울 정도로 더웠다. 그들은 미술사 박물관 앞에서 한 마리의 굵은 뱀이 되어 줄을 서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노랑이나 갈색, 올리브색의 상의를 입고 있었으므로 그냥 뱀도 아닌 구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의 비늘은 폭염을 견딜 만큼 두껍지 않았고 그늘 또한 구시가지의 악명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햇빛이 잔인할 정도로 공평하게, 박물관 앞의 가능한 한 세분된 공간의 모든 단위들 위로 촘촘히 바늘처럼 내리꽂히는 낮이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포기할 생각 없이 입장을 기다리는 무리에는 예라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녀가 차마 닦지 못한 땀방울이 뚝, 하고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문장 위로 떨어졌다. 미술사 박물관에서 베른하르트를 읽는 일은 예라의 로망 그 자체였다. (그 로망이 땡볕에서 처음 실현되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예라는 비엔나를 배경으로 한 『옛 거장들』 속의 인물처럼 틴토레토의 그림 앞에서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할 계획이었다. 흰 수염 어쩌고 하는 그 그림 곁을 서성이겠다는 작은 계획 하나가 그녀를 비엔나로 이끌었다고 봐도 좋았다.

 물론 이 작은 계획 외에도 예라를 이 도시로 이끈 요소들이 여럿 있었다. 비엔나로 오기 전에 그녀는 베른하르트와 같은 소설가가 되겠다는 몽상에 취해있었다. 낮에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장롱만으로도 꽉 차는 원룸에서 글을 쓰는 생활이 꽤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대충 머리만 감은 채 누구보다 먼저 카페의 문을 연 뒤, 한 나절 내내 자신의 직장이라면 직장인 곳을 회사원들의 점심 마실방이자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로 만들어준 비엔나커피를 제조하고 나서 녹초가 돼 원룸으로 돌아온다—이것이 예라가 보내는 낮의 윤곽이었다. 평일의 3분의 1 정도는 인간이 아니라 비엔나커피 제조기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그녀가 여행지마저 비엔나로 고른 것은 마치 기행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라는 그냥 비엔나커피 제조기가 아니라 소설가가 꿈인 비엔나커피 제조기였다. 하나의 사연과 다른 사연을 매끄럽게 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사는 탓에 그녀는 자신의 삶, 그것을 이루는 하루하루마저 어느새 서사의 파편들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 <비엔나커피 제조기가 모처럼 짬을 내서 여행을 갈 때 비엔나커피를 마시러 간다>는 관념에 아무런 의심스러운 구석도 찾지 못한 것이다.

 예라는 어쩌면 그 강박마저 일종의 긍지로 삼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문학을 사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처음 사랑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읽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반드시 써야 한다고까지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창작은 선망하기만 쉬울 뿐, 실천하기엔 여러 모로 고달픈 점들이 따랐다. 예라는 자신의 삶이 한갓된 신변잡기들만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신변잡기에 불과한 것이 문학이 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지내야 했다. 그녀는 온실 속에서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온 나머지, 가끔은 자신이 왜 혁명의 폐허 위에서나 독재자의 군홧발 아래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를 한탄하기도 했다. 그녀가 살면서 강렬하게 느낀 감정이라고는 세 가지뿐이었다. 첫째, 나이에 따라 사회가 떠맡기는 정형화된 요구들에 대한 권태. 둘째, 그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데서 외에는 행복을 찾을 줄 모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현실감각을 상실한 자 또는 사회부적응자로 매도해버리는 가장 순종적인 권위자들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셋째, 남이 시키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 예라는 이 감정들을 제 아무리 강렬할지언정 흔해빠진 것들로 여겼다. 그럼에도 그 낡고 지루한 감정들로만 채워진 일상 가운데서 문학으로 정제될 만한 원석을 찾아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굴려보고 땅바닥에 떨어뜨려도 보면서 이야기의 전개를 가늠할 때, 마침내 손을 들어 그것을 실현시키기 시작할 때에는 진정한 삶 같은 것을 찾은 듯한 기쁨을 느꼈다. 문학이 된 신변잡기라면 더 이상 신변잡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문학만이 자신을 평범하거나 흔한 일상 이상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이처럼 독실한 몽상가적 성향의 딸을 부모는 이해해주지 않았다. 방황하지 말라는 요청과, 내가 사는 일에 멋대로 방황이란 이름을 붙이지 말라는 요청은 아무런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예라는 부모님과 항상적인 갈등상태에 있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드물게 함께 밥을 먹는 순간마저 비극으로 느껴졌다. 결국 예라는 어느 새벽, 집을 무작정 뛰쳐나오는 길을 택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한 달의 에어비앤비살이 끝에 그녀는 아예 독립된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단, 부모님이 새 원룸의 보증금을 대는 대신 그녀에게는 딱 1년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전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겠다는 구두계약이 이루어졌다. 처음에 예라는 자신만만했다. 1년이 꽤 긴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니와 적어도 당분간은 소설을 쓰는 일에만 몰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녀는 그때까지 자신에게 남아있던 돈을 비상금으로 저축한 뒤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자신의 생활에 질서를 부여해나갔다. 두세 달쯤 지나자 예라의 낮밤에 그녀만의 균형이 생겼다.

 그러나 부모님과 약속한 1년이라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예라는 우울감에 빠졌다. 그녀는 어째서 20대 중반이 돼서도 부모라는 벽에 매번 머리를 찧고 마는지, 어째서 모든 반대를 거부할 깡은 자신에게 없는 것인지에 대해 서러워했다. 오랜 아르바이트에서 온 육체적 피로 또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꼈다. 그 세속의 피로들은 성역이라고 생각했던 글쓰기의 시간마저 침범했다. 정말로 영원히 무명으로 남거나 세상에서 버림받으면 어쩌지, 싶은 불안이 예라를 엄습해왔다. 그녀는 불현듯 스스로에게 이 이상의 모험을 감행할 만큼의 자신감이 없음을 느꼈다. 그녀는 등단한 대부분의 소설가들처럼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었고, 고작해야 주위의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수준이었다. 그 친구들은 그녀가 갑자기 사막의 대상(大商)이 되겠다고 해도 ‘예라 네가 뭘 하든 언제나 너를 응원해!’라고 말해줄 정도로 순진한 애들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투고한 응모작에 대해서도 단 한 번의 심사평조차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꿈이 있어서 글쓰기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 꿈의 기원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이 어디서 기원했든 간에 점점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일그러져 감을 느낀 그녀는, 충동적으로 스카이스캐너를 켰다. 여행을 하는 거야, 돌아오면 어딘가 달라져있겠지, 같은 판에 박힌 생각에서였다.

 머릿속으로 세계지도를 그려보던 그녀는 문득, 비엔나의 고급 호텔들을 전전하며 예술을 논하는 소설 『옛 거장들』 속 한량 레거와 아츠바허를 떠올렸다. 그녀는 카페 사장님을 향한 오랜 설득 끝에 일주일만 소꿉친구를—그녀는 다행히 카페 알바의 또 다른 베테랑이었다—자기 대신 일하게 하는 데 성공했고, 통장에 잠자고 있던 소중한 비상금을 탈탈 털었으며, 베른하르트의 틴토레토를 보게 될 날에 입을 청록색 보세 원피스도 한 벌 주문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잠시나마 불안을 잠재워주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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