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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zehn

라 누벨 마리(2022.9)


누벨 마리

 아담한 식당이었다.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을 에메랄드 색 벽지가 따스한 빛깔로 둘러싸고 있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종업원이 나에게 메뉴를 가져다주면서 설명해줄까요? 라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가 무엇을 먹을지를 알고 있었다. 치즈와 감자를 섞어 걸쭉하게 만든, 알리고란 이름의 프랑스식 요리였다. 삼 년 전, 무라사키 하나라는 이름의 여행 작가의 책에서 알리고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끈적하지만 잘 끊어지고, 황금빛이지만 구수하고, 먹다 보면 든든해지는 것을 넘어 듬직한 것이 뱃속에 들어차는 기분이라고 무라사키는 썼다. 듬직한 것을 먹는다는 그 기분을 궁금해한 지가 무려 삼 년이었다. 궁금증은 오랜 시간 환상의 입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직장의 점심 시간에 동료와의 수다나 간식 먹기, 몇몇 사람들이 몰두한 명상 대신에 여행의 꿈을 꾸었다. 호텔스닷컴 같은 사이트에 접속해 잠재적인 여행지들의 숙박업소를 뒤졌고, 마치 당장 내일 숙박할 것인 양 세부 사항을 살폈다. 조식은 얼마인지, 욕조가 있는지, 국립 미술관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등. 그래봤자 관광객이 될 뿐이라고 누군가 무자비하게 경멸해도 좋았다. 다른 맛을 보고, 다른 냄새를 맡고, 다른 소리를 듣고, 다른 발걸음을 걷고, 다른 풍경을 지켜보는 일이 좋았다. 낯선 곳에서 나는 걸음걸이가 변했다. 콧망울을 더 크게 부풀렸으며, 눈꺼풀을 다르게 떨었다. 나에게 여행은 감각을 재장착하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 파리에 있다, 라는 키치하지만 황홀한 문장을 속으로 곱씹었다.

 주문한 오리 콩피와 알리고, 부르고뉴산 와인이 도착했을 때 나는 수첩에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본 아뻬띠, 라고 말하는 종업원에게 나는 메르씨 보꾸, 라고 대답했다. 알리고는 나의 백일몽 속에서만큼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맛이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점심부터 와인을 마실 짬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이 기뻤다. 몇 년만이었다. 이토록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본 지가. 당장의 나는 버둥거리면서 쳇바퀴를 도는 노동자가 아니라 순탄한 흐름에 몸을 맡기는 여행자였다.

 그렇게 들뜬 채로 식당을 나서는데, 맑은 하늘 아래 시퍼런 불빛을 껌뻑거리는 큼직한 차 한 대가 파리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다른 차들은 그 앞에서 길을 내주느라 애를 먹었고, 여행객들은 쇼핑백을 두 손 가득 들고 가던 길을 멈추었다. 레, 라, 레, 라, 레, 라, 레, 라…… 나는 나를 지나쳐 가는 요란한 소리의 근원이 좌회전을 해 어느 건물 뒤로 사라질 때까지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파리의 응급차였다. 소리가 멀어지자 사람들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식당 앞에 청동상이 되어버린 양 어두워진 얼굴로 붙박여 있었다. 슬퍼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두 다리에게 얼른 움직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실제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햇살의 방향이 달라졌을 정도로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응급차가 지나간 경로를 따라 땅이 갈라지기라도 한 듯, 도시의 지대에 균열이라도 간 듯 자꾸만 발을 삐었다.

 시큰시큰한 발목으로 몽파르나스를 떠나 쁘띠 빨레로 향했다. 주말이다 보니 루브르나 오르세보다는 훨씬 한산할 것 같아 고른 행선지였다. 버스가 나를 세느 강변의 알렉썽드흐 다리에 내려주었다. 한강에 비하면 폭이 터무니없이 작지만,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 덕분에 충분히 웅장해 보이는 강을 건너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은 그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쁘띠 빨레는 전혀 ‘쁘띠’하지 않았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곳치고 소장품의 수준도 매우 높았다. 그러나 응급차의 레, 라, 레, 라 소리가 계속해서 양 관자놀이에서 번갈아가며 울려퍼졌고, 나는 이명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피곤해져서 앉을 자리를 찾아야 했다.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에 앉아 잠시 쉬려 하는데, 눈을 뜨니 거대한 그림 두 점이 시야를 메웠다. 위쪽의 그림은 별다른 매력이 없었지만, 아래쪽의 그림은 달랐다. 얼굴 표정을 잃은 채 줄지어서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그린 그림이었다. 회색의 이목구비는 몇 번의 붓터치로만 거칠게 표현되어 있었으며, 옷에는 그림자가 주름마다 강조되어 있을 뿐 조금의 무늬도 없었다. 앞 사람과 뒷 사람 사이의 윤곽이 선명하지 않았는데, 눈을 게슴츠레 뜨니 그나마 남아있던 윤곽마저 흐려져 사람들의 얼굴과 얼굴이 서로 끈적하게 뒤섞이기 시작했다. 세 개의 눈을 두 사람이 공유하고, 한 뭉치의 수염이 다른 뭉치의 수염과 이어지느라 안 그래도 작았던 코가 사라져버리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심연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심연으로 흘러들어갔으므로 저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지, 식당에 가는지, 아니면 애인을 만나러 가는지 겉모습만 봐서는 분간되지 않았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생명이 없는 것에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옆모습으로 묘사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뒷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경관의 등이 유독 커다래보였다. 나는 불현듯 소름이 끼쳐 앉아 있던 자리를 떠나 최고급 가구들이 시대별로 진열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흥미로웠지만, 결국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물건들이었다. 저 시계가 분홍색이든, 화병에 금박이 칠해져있든, 파리에서의 내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고, 꽃은 쓸모가 없었다. 거리로 나와 카페 테라스에 앉았다. 밤에 잠을 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 담배를 연거푸 피웠다. 담배를 피울 자리 값으로 차와 크루아상 하나를 주문했다. 그것들을 저녁 삼아 숙소에 일찍 돌아갈 생각이었다. 일정을 중단하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찾아온 불안감은 나를 마음 편히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은 험했다. 우선 지하철을 타고 파리 시내를 벗어나야 했다. 낯선 정거장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탄 뒤에도 또 한 번 버스를 갈아타는 일이 남아있었다. 첫 번째 정거장에는 관광객이 없어 보였고, 두 번째 정거장에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나는 행선지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이런 곳들도 여행 책자에 소개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런 곳까지 소개해주는 책은 여태까지 없었으니, 오히려 매력적인 글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졌다. 글을 쓸 생각을 하니 용기가 솟았고, 잠시 설레는 마음을 느꼈다.

 예약한 숙소 근처의 정거장에 내리자 호스트인 엘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렌은 키가 크고 체구가 마른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주황색의 포카닷 원피스 위로 소재가 가벼운 항공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봉 스와, 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활짝 웃어보였다. 그렇게 엘렌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직선으로 쭉 뻗어있지만 하도 비좁아서 걷기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골목길을 지났다. 엘렌이 근처에 있는 가게들을 설명해주었는데, 시간이 늦어 불이 켜진 곳은 없었다. 나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안고 거리를 통과했다. 저 크레페 집에서 아침을 먹어야지, 저 서점에서 책 표지를 구경해야지…… 같은 기대에 들떠 있다 보니 어느새 엘렌의 집 앞에 도착했다. 집은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본 대로 으리으리했다. 엘렌의 집은 나의 우유부단함을 깨준 결정적인 계기였다. 시내에서 멀기는 했지만 옛 귀족의 시골 별장과 비슷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고, 가격도 그런 대로 합리적이었다. 오랜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고 충동적으로 예약 버튼을 눌렀던 것이 며칠 전이었다.

 거실과 부엌을 지나 안내받은 방에서는 희미한 인센스 향기가 났다. 침실은 아이보리색 침대와 나무 책상, 책상 앞의 1인용 소파 하나, 여닫이문이 달린 옷장 그리고 창문을 갖추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철제 스탠드와 와이파이의 비밀번호, 비상연락처, 따뜻한 물 쓰는 법 등이 적힌 엘렌의 메모, 또 몽당연필이 놓여있었다. 무엇보다 벽에 걸린 수많은 액자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구도가 납득되지 않는 그림들이 많았으므로, 미술관에 걸릴 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았지만 모두 옛날에 그려진 골동품임에는 분명했다. 그림의 장르와 주제는 다양했다. 나이 지긋한 여성이 그려진 초상화와 젊은 소년이 그려진 초상화, 시장 한복판의 풍경화와 한적한 농장의 풍경화, 축 늘어진 사냥감이 그려진 정물화와 원근법을 무시하는 채 차곡차곡 쌓인 꽃들이 그려진 정물화. 총 여섯 점의 그림이 마치 이 방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만드려는 듯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엘렌은 이만 나가보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가 되자마자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낡았지만 충분한 크기의 욕조에 누워, 지난 한 주를 곱씹어보았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어느 회사원 A의 하루를 보냈다.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까지 야근을 하고, 잘못하지 않은 일로 상사에게 혼이 나고, 욕을 들을 줄 알면서 신입에게 혼을 내고, 외롭게 잠들었다는 뜻이다. 수요일에는 야근을 하지 않은 대신 회식이 있어 밤늦게 집에 도착했다. 얼른 쓰러져서 자지 않으면 다음날 출근할 수 없는 시각이었다. 목요일은 엄마가 세 번째로 죽은 날이었다. 회사를 뛰쳐나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동생이 깎은 사과를 먹고 있었다. 동생은 혼자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것에 지칠 때면 나에게 엄마가 죽었다는 문자를 보내곤 했다. 차라리 자신이 돈을 버는 쪽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엄마를 맡기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의 병이 악화된 뒤로 우리는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다. 소득이 있는 나는 병원비를 댔고, 아직 학생인 동생은 휴학계를 내고 엄마의 곁을 지켰다. 입원 당시 의사에게 곧 호전되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상황이 몇 달만 가고 말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1년이 지나도록 퇴원하지 못했고, 안 그래도 인내심이 부족한 동생의 피로는 누적되었다. 나 역시 진작에 그만두고 싶었던 회사를 계속해서 다녀야 했다. 금요일에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단 사흘치의 짐을 쌌다. 짐 속에는 파리에 가서라면 쓸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는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 공항에 가기 전,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고모에게 90만원을, 동생에게 용돈 60만원을 송금했다.

*

 다음날 아침, 어젯밤 마음에 그렸던 대로 엘렌이 소개해준 크레페 가게에 도착했다. 메뉴판이 온통 프랑스어로 되어있었는데,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번역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급한 마음에 아마도 부정확했을 발음으로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무언가를 주문했다. 크레페가 다 같은 크레페지 뭐,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서빙받은 크레페는 맛이 문제이기 이전에 겉표면이 거뭇거뭇하게 그슬려있었다. 음식이 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웨이터는 크레페가 원래 그런 거라고, 아무 문제가 없다며 갑자기 유창해진 영어로 퉁명스럽게 답해왔다. 주변에 손님이 나뿐이었기 때문에 가게의 요리 방침을 확인할 방도가 없었고, 나는 내 상식을 의심하면서 홀라당 탄 크레페를 먹어야 했다. 음식을 반 이상 남겼지만, 다행히 에스프레소의 맛은 좋았다. 사람이 아닌 커피머신이 만들어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버스를 두 번 타고, 지하철을 한 번 탄 뒤 시내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도 여행객은커녕 동양인조차 한 명도 보지 못한 여정이었다. 에펠탑이 보이고 곳곳에서 프랑스어가 아닌 말들이 터져나오는 시내에 도착하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안도한 것도 잠시, 한국에서 날아온 문자 한 통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 언니 미쳤어?

 잠금화면에서 미리 동생의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진동이 한 번 더 울렸다.

- 연락을 안 받아서 회사에 전화해봤어. 근데 휴가라니? 제 정신이야? 엄마가 오늘 내일 해.

 그 자체로는 무미건조해야 할 활자에서조차 동생의 화가 느껴졌다.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동생은 지금 병실에서, 간호사들도 슬금슬금 피하는 엄마의 신경질을 모두 받아준 뒤 그녀를 겨우 재우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하루를 시작했을 터였다. 하지만 엄마가 정말로 ‘오늘 내일’ 한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그 말까지 믿어버리면 비행기표를 산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오늘 내일’ 한 지는 이제 1년이 넘었고, 그 사이 동생의 거짓말이 세 번이나 있었으니까, 오늘은 그 오늘이 아니고, 내일은 그 내일이 아니다, 이렇게 자기암시를 걸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자.

- 나를 놔두고 어떻게 한가롭게 여행이나 하고 있어? 동생이 불쌍하지도 않아? 언니가 에펠탑 보는 동안, 나는 간호사들이랑 엄마 똥오줌 받고 있어.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휴가가 끝이 아니야. 나, 회사 그만둘 거야. 미안해, 너무 힘이 들어…… 이제는 내 꿈을 찾을 거야, 라고 보낼까 말까 망설였다. 현실 파악 좀 하라는 답이 돌아올 게 뻔했다. 하지만 그렇게 파악된 현실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끔찍한 업무량과 그 와중에 피 비린내나는 경쟁, 사내 정치질. 성과를 두고 팀장들끼리 벌이는 싸움에 새우등이 터졌고, 팀원들은 팀원들대로 저만이라도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서로를 헐뜯었다. 분명 다른 팀원에게 정식으로 인수인계를 해준 뒤, 옮겨가게 된 새로운 팀의 업무를 하느라 참여하지 않았던 회의에 내가 ‘노쇼’했다는 추궁을 들은 뒤에는, 엄마와 동생 때문에 겨우 버티고 있던 나도 인내심이 바닥났다. 딱 봐도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내가 일일이 당사자들을 찾아가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서러웠다. 승진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개의치 않았지만, 나의 성실성이 의심 받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그날밤 인터넷 세상에서 만난 것이 엘렌의 집이었고, 나는 그곳이 베르사유라도 되는 것처럼 허겁지겁 예약을 확정지었다. 오래 숙고해온 것이 민망할 정도로 한 순간에 선 결단이었다. 여행을 갈 것이다. 푹 쉴 것이다. 글감을 생각해낼 것이고, 책을 쓰기 위해 회사를 관둘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남만 생각하다가 죽을까 봐 무서웠다.

 나는 동생의 문자를 무시하고 생 샤펠 성당으로 향했다. 13세기부터 그곳에 있었던 오색의 유리로 들어오는 찬란한 빛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위에서 인류가 창조되었고, 예수가 태어났으며, 온 지구가 심판을 받았다. 세계는 경이롭게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혹은 만화경처럼 불가해한 모양새의 서사를 펼쳐 보였다.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을 느낀 나는 성당에 들어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카페를 찾아 헤맸다. 처음에는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그곳에서 파는 가장 도수 높은 술을 주문하고 있었다. 담배 몇 개비를 술과 함께 연속으로 피우니 중력이 강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두통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들어 흔들리는 풍경이라도 찍어볼까, 생각했지만 멈칫했다. 똥오줌. 엄마의 똥오줌이라는 말이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 그 정도로 약해진 걸까. 나에게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엄마의 나이인 마흔에 멈춰 있었다. 그녀는 이십 대, 삼십 대 못지 않게 머리칼이 풍성했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눈썹이 짙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예민한 성정 탓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지만, 나란히 걸을 때만큼은 꼭 내 손을 잡아주었다. 손을 잡지 않아도 우리가 모녀지간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매부리코에 두꺼운 쌍꺼풀이 있다는 점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외모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와 나는 같은 나이에 ⟪안나 카레니나⟫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었고, 둘 다 키티보다 안나를, 알료샤보다 드미트리를 좋아했다. 엄마는 나에게 키티보다 안나를, 알료샤보다 드미트리를 좋아하는 그 마음의 이름은 ‘자비에 대한 강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너 자신에게 자비를 가지는 거야, 라는 말을 덧붙여서.

 정작 엄마는 나에게 해준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엄마와 외로운 마음이 컸던 동생 사이의 골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자책은 심해져갔다. 엄마는 지켜보는 사랑, 마주앉아 각자의 책을 읽는 사랑만을 베풀 줄 알았지만 동생은 지켜주는 사랑, 꼭 안고 책을 한 자 한 자 읽어주는 사랑을 원했다. 동생의 결핍감은 엄마와 친했던 나에 대한 태도까지 물을 들였다.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잖아? 이 정도 반응도 예상 못했어?’

 마음을 다잡고 휘청이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 세느 강을 찾았고, 유쾌한 생각을 하려 노력하면서 강변을 무작정 걸었다. 평소에 잘 듣지도 않는, 신나는 스타일의 앨범을 찾아 들었으며, 일부러 박자도 타보았다. 그러나 결국에 나는 가로수들이 줄 지어 자라나고 있는 작은 잔디밭에 카키색 자켓을 깔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술기운에 세상이 빙빙 돌았고, 봄 햇살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마로니에 나무가 여기는 사람이 아닌 우리를 위한 자리인데, 우리만으로도 비좁은데, 라고 불평하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로니에 나무에 맺히는 열매는 독성이 있어서 구토나 위 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열매는 가을이 되어서야 나고, 지금은 봄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는데 언젠가는 가을이 되지, 라는 말이 동생의 비아냥 섞인 목소리를 덧입은 채 들려오는 듯했다.

 성적이 좋아 당연히 사 자 직업을 달리라 생각했던 딸이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집안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나를 예뻐해주기만 하던 할아버지가 난 데 없이 네가 우리 손녀가 맞느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통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책을 시작했다. 엄마와 이혼한 지 5년, 나와는 얼굴을 본 지 2년이나 된 아빠에게서까지 연락이 왔다. 가장 심한 반응을 보인 건 중학생이었던 동생이었다. 갑자기 예술가병에라도 걸렸냐면서 나를 조롱해온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꺼내 보인 꿈이 이토록 거칠고 야만적으로 부정당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원해온 단 하나를 이해받기 위해 그동안 얌전하게 자라왔는데, 가족들은 그 하나를 짓밟았던 것이다. 엄마를 제하고서는 그랬다. 방 안에서 혼자 울고 있었던 나를 달래주러 들어온 것은 엄마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네가 글을 참 잘 썼지.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백일장에 나가서 상도 타오고 말이야. 나는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고 엄마의 품에 안겨서 울기 시작했다. 엄마,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어요.

 입시철이 되어 결정을 내려야 했을 즈음, 엄마가 가슴 통증을 이유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훨씬 낮은 봉급의 파트타임 잡을 구했다. 엄마는 하루를 일하면 하루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통을 호소하며 침대에 누워있느라 함께 식사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동생을 앞에 앉혀놓고 식은 김칫국을 덜어주던 어느 날, 나는 우리 가족에게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빠르게 졸업을 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미래인 것으로 그려졌다. 결국 내가 내 꿈을 포기했을 때, 엄마는 너무나 미안해 했다. 우리 희정이, 너무 빨리 자랐구나. 더 오래 아이로 남았어도 좋았을 텐데. 그 말도 침대 맡에서 들은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속마음을 헤아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던, 그런 엄마가 지금은 병실에 누워 있었다. 투병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는 알 수 없었다. 나를 응원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소멸. 그녀의 생을 연장하기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죄의식. 그제야 나는 내가 나만 생각하다가 죽을까 봐 무서워졌다.

*

 술과 담배를 많이 한 날이 으레 그러하듯, 나는 뭔가를 충동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일필휘지로 대단한 것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야심에 사로잡혔다. 나는 엘렌이 남겨두었던 몽당연필을 쥐고 생각이 가닿는 대로 글자들을 수첩에 적어넣기 시작했다. 글 속에서 나는 미인 콘테스트에 나가는 백인 여자아이의 매니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열일곱 살에 불과했는데도 끊임없이 내게 맥주를 사다 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아이가 미성년자여서가 아니라 그녀의 체중 감량을 이유로 계속해서 거절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너는 일주일 후 저 비키니를 입어야 하고, 배가 조금도 튀어나와선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갈비뼈가 너무 보여서도 안 돼. 하지만 나는 배도 갈비뼈도 가지고 있는데요? 아이와 서너 번 실랑이가 오가자,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무서워져서—무엇이?—우리가 함께 있던 좁은 방을 빠져나와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그토록 급한 얼굴과 동작으로 맥주를 사는 고객은 처음이었는지, 캐시어 너머 점원의 눈빛이 나를 미심쩍은 사람으로 내몰았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해 아이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아이가 있던 자리는 쪽지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울상이 되었다. 나는 40킬로그램 남짓 되었던 존재가 한때 앉아있었던 의자를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옆 방의 다른 매니저들이 와서 나를 위로해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맡은 아이들도 죄다 40킬로그램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써놓고는, 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썼지, 청승을 떨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고 연필을 내려놓았다. 안 그래도 짧았던 연필이 내 새끼손가락만한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양치조차 하지 않은 채 그냥 침대에 누웠다. 내 입에서 악취가 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꿈 속에서 나는 내 방 안에, 그러니까 엘렌의 방 안에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분홍색 옷을 입은 노인이 기지개를 편 뒤 천천히 액자를 빠져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옷과 비슷한 질감의 의자를 떠나 약간의 연기를 일으키면서 3차원의 공간 속으로 진입했다. 현실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부활을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침대 맡으로 다가와 늙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새벽에 잠시 깨어났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용을 되살리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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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죠, 나는 제 2의 마리아였어요, 라고 안나가 말했다. 그동안 사람들의 죄가 너무 많이 쌓여서, 예수가 재림 이전에 한 번 더 육화되어야 했죠. 내가 열네 살이었을 무렵의 어느 날, 나는 방 안에 앉아 언제나처럼 자기 전에 소설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 한 명이 한 줌 빛의 모양새로 나를 찾아왔어요. 내가 아이를 배야 한다면서요. 그리고 그 아이가 사람들 대신 스스로를 희생해, 모두의 죄를 사해줄 거라면서요. 당신 역시 어린 시절부터 저질러온 죄가 있을 테니, 당신까지도 당신의 아들 덕에 구원될 거라고 말하면서요.

 저는 입이 얼어붙었습니다. 우선 너무 무서웠어요. 그 천사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도, 날개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똑바로 쳐다본다면 눈이 멀 것 같이 밝은 빛, 밝음 자체였습니다. 나는 시선을 비스듬히, 나의 책장에 꽂아넣은 채 불꽃처럼 스파크를 일으키며 제 침대보를 태우고 있는 천사의 음성을 잠자코 들어야 했어요. 어느새 손이, 나아가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그의 풍채보다도 그가 가져온 소식이었어요. 수태고지라뇨, 저는 그 당시 열네 살이었어요. 생리를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었었죠. 아이를 낳고 싶기는커녕, 내 성기에 털이 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공포스러웠어요. 그제야 나는 어른들의 집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명화들의 거짓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림 속에서 수태를 고지받는 마리아들은 모두 하나 같이 결연한 얼굴이었습니다. 마치 하루아침에 당신이 신의 아들을 배리라는, 심지어는 이미 뱄다는 소식이 차분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실제로 마리아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신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졌을까요? 나 역시 몹시 두려웠어요. 나는 침대보가 다 타버리기 전에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요. 나는 너무 어려서,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고요. 낳다가 죽어버리면 어떡하냐고요. 빛의 천사는 의아스러운 눈치더군요. 신의 아들을 낳다 죽는 만큼 명예로운 죽음이 어디 있냐면서요. 게다가 당신은 바로 천국에 갈 텐데? 라고 말하는 그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어요. 내가 대답했어요. 나는 천국을 아직은 원하지 않아요, 할머니가 되어서야 원할 생각이에요. 나는 완고했습니다. 이 씨발년! 천사가 말했습니다. 너는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다. 왜냐하면 너로 인해 인류는 구원 받을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악과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너 때문에 지상에서도 지옥을 경험할 것이다, 라고 저를 저주하고서 천사는 창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지옥이 무서웠지만 저는 다시 읽고 있던 책으로 돌아갔어요.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저는 지옥이 아니라 액자 속에 안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저의 공포를 헤아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알게 되었어요. 각자의 삶은 각자의 것이며, 그 삶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액자 속으로 넣어주신다는 것을요. 물론 어떤 그림일지는 알지 못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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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창가로 다가갔다. 타락한 천사가 빠져나갔을지도 모르는 그 창가에로 말이다. 새벽의 거리는 잠잠했다. 침묵과 이국, 그리고 나뿐이었다. 나는 소리를 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이 조용한 공기를 깨고 싶다. 여기저기 소리를 흘려넣고 싶다. 말을 하고 싶다. 어 떤 대 가 를 치 를 지 라 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이 터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밝자마자 잠옷차림으로 거리에 나가 온갖 잡다한 것을 파는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남은 동전으로 새 연필을 구매해 가지고 돌아왔고, 엘렌이 남겨놓은 메모지 옆에 올려두었다. 짧아진 몽당연필은 내 지갑 안에 넣었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울렸던 핸드폰은 서랍 속에 넣어둔 채 엘렌의 집을 빠져나왔다. 타지 않은 크레페를 파는 음식점을 찾아갔고, 튈르리 공원의 분수가에 앉아 납작복숭아를 베어물었다. 소르본 대학 바로 옆의 철학 서점에 들러 대학 시절 읽었던 책들의 원문을 구경했고, 또 한 번 카페 테라스에 앉아 기분 좋게 담배를 피웠다. 밤에는 식당에서 우연히 한국어를 공부하는 프랑스인을 만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프랑스어로 1에서 10까지 세는 법을 배웠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습까지 했다. 앙. 두. 트와. 꺄트르. 씽크. 씨스. 셉트. 위. 뇌프. 디스. 언니, 왜 전화 안 받아? 엄마가 죽었어. 언니가 에펠탑 보는 사이 갑자기 죽어버렸다고. 동생의 문자와 부재중전화들을 확인한 것은 목욕으로 술기운을 개운하게 잠재운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