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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용기에 관하여

폴 틸리히, <존재에의 용기>

Paul Tillich, The Courage to Be (The Third Editi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모든 강조는 필자.

약수터에서

 1950년에 처음 출간된 폴 틸리히의 ⟪존재에의 용기⟫는 용기를 단순히 윤리적인 덕목인 것을 넘어서 존재론적인 개념, 즉 우리의 존재를 규정 짓는 실존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용기란 (그 자체로 실존에 속하긴 하지만 스스로의 존재를 승인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는 일(self-affirmation of one's being)이다. 이러한 자기긍정은 ①운명/죽음, ②공허/무의미, ③죄의식/비난에 대한 삼중의 불안에 의해 위협되며, 그들의 극복이 곧 용기에 해당한다. 삼중의 불안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실존적 조건이지만, 신경증 환자의 경우에서처럼 병리화될 경우 안전, 확실성, 도덕적 완벽성에 대한 비현실적인 강박을 초래한다.

 그런데 자기긍정에서 긍정되는 자기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아질 수 있다. 한편으로 자기는 언제나 공동체에 의해 대상과 매개되는 세계 속의 자기이다. 다른 한편으로 자기는 그가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지와 무관하게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말하자면 자신만의 자기이다. 이에 따라 존재에의 용기 역시 [집단의] 부분으로서 존재할 용기(the courage to be as a part)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용기(the courage to be as oneself)로 나뉘게 된다. 전자의 용기는 원시사회와 중세 봉건 사회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의 집단주의(collectivism) 그리고 미국의 민주적 순응주의(democratic conformism)에서 두드러지는 한편, 후자의 용기는 중세 후기의 유명론(nominalism)과 낭만주의 및 실존주의 사조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전자는 후자의 용기를, 후자는 전자의 용기를 억압하며, 궁극적으로는 불안을 완전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과 개인의 구분을 초월하여 두 종류의 용기를 연합할 수 있는 용기가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로서 틸리히는 '신 이상의 신', 즉 신에 대한 의심 속에서마저 긍정되는 신에 대한 신앙(faith)을 제시한다. 신앙 안에서 신자는 신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며(accept) 모든 무의미를 가능케 하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It[courage] is the act of the individual self in taking the anxiety of nonbeing upon itself by affirming itself either as part of an embracing whole or in in its individual selfhood. Courage always includes a risk, it is always threatened by nonbeing, whether the risk of losing oneself and becoming a thing within the whole of things or losing one's world in an empty self-relatedness. Courage needs the power of being, a power transcending the nonbeing which is experienced in the anxiety of fate and death, which is present in the anxiety of emptiness and meaninglessness, which is effective in the anxiety of guilt and condemnation. The courage which takes this threefold anxiety into intself must be rooted in a power of being that is greater than the power of oneself and the power of one's world."(143)

 

 내가 생각하기에 틸리히의 분석은 너무 많은 것을 용기의 일종으로 포섭한다. 그는 단순히 불안을 억제하거나 인정하는 수단(e.g. 미사에 참여하는 것, 공산주의적 활동, 표현주의적 예술 등) 전부를 용기의 매개체로 설정한다. 또 용기의 의미가 다른 모든 개념과 마찬가지로 상호주관적으로 규정되어야 할 텐데도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용기를 해설하는 가운데 사회로부터 절연된 ⟪이성의 시대 (L'âge de raison)⟫ 속 주인공과 같은 인물 역시 용감한 인간상 중 하나로 평가한다. 이는 모두 틸리히가 분석의 초점을 윤리적 덕목으로서의 용기가 아닌 존재론적 개념으로서의 용기에 맞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자의 근본적인 성격을 내세우면서도 전자가 어떤 의미에서 존재에의 용기로부터 파생되는지는 해명되지 않는다. 나아가 용기의 존재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존재 자체' 또는 '존재의 힘'의 개념이, 비록 그러한 모호함이 필연적일지언정 지나치게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에의 용기⟫는 사회 및 역사에 대한 철학적 비평서로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서구 문명의 흥망성쇠를 불안의 통치라는 일관된 테마 하에 분석할 수 있는 그의 지식의 깊이와 통찰력이 부럽다. 많은 영감을 주는, 즐거운 독서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