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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현상학

알렉산더 슈넬, <후설과 하이데거에게서의 현상개념과 현상학적 구축>

Alexander Schnell, Phänomenbegriff und Phänomenologische Konstruktion bei Husserl und Heidegger, Studies in Contemporary Phenomenology, 2012, Vol.6, p.43-54. 모든 강조는 필자.

후설과 하이데거에게서의 현상개념과 현상학적 구축[Konstruktion]

 슈넬의 본 연구는 현상학의 근본개념인 현상에 대해 탐구한다. 현상학은 후설과 하이데거 모두에게 초월론적 철학의 일종인 초월론적 관념론이다. 이에 세 가지 질문이 잇따른다. "1. 초월론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은 어디에 존립하는가[Worin besteht]? 2. 초월론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과 다른 초월론적 관념론은 어디서 차별화되는가? 3. 초월론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정당한가? 현상학적 전통 자체의 내부에 후설과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근본적인 차이가 곧바로 있지 않은가?"(44) 이에 슈넬은 초월론적 관념론이 무엇인지 정의하려면 한편으로는 현상의 개념이, 다른 한편으로는 인식정당화와 인식합법화[Erkenntnisrechtfertigung und Erkenntnislegitimation]의 개념이 규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에 따르면 인식을 초월론적으로 근거짓기[begründen] 위해서는, 곧 객관적[객체에 대한] 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객관적 세계를 하나의 현상적 세계로서 간주"해야 한다(45). 칸트에게 이는 "인식의 객체가 감성과 지성의 아프리오리한 형식들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됨으로써 수행된다. 이에 따라 인식의 객체는 즉자가 아닌 현출, 현상이 된다. 피히테 역시 지식을 근거 지우기 위해 존재와 진리의 개념을 현상화[phänomenalisieren]했다.

 그렇다면 후설에게서 현상(과 인식정당화)의 개념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칸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칸트와 후설에게서 나타나는 '초월론적인 것'의 개념 차이가 규정되어야 한다. 칸트에게 초월론적인 것이란 "대상들에 대한 인식을 아프리오리하게 가능케 하는 것"이다(46). 그러나 이 가능성은 시공간이라는 감성적 아프리오리와 범주들이라는 지성적 아프리오리를 거쳐서만 실현된다. "그것[초월론적인 것] 자체는 다시금 경험될 수 없다. 그것이 경험, 또는 인식을 비로소 가능케 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46) 여기서 후설과 칸트 사이의 차이가 비롯한다. 칸트는 후설이 신비적인 표현방식과 관점을 활용한다고 비판했다. 후설에게는 "그 자신은 경험 불가능한, 경험의 토대에 놓이는 조건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가 의문스러웠던 것이다(46). 시공간이 그리고 딱 열두 개의 범주가 어떻게 경험을 가능케 하는지에 대한 내용적[inhaltlich] 지지를 칸트는 어디서도 얻지 못한다. 이에 후설은 사태 자체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그는 형이상학적 구축을 멀리하며, 둘째, "경험의 초월론적 조건들의[에 의한] 인식정당화를 고려하는 경험의 형식으로의 귀환"(46)을 추구한다. 이 형식은 달리 말해 "인식의 초월론적 조건들을 근거지우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47). 이러한 경험이 바로 초월론적 경험이다. 칸티안에게는 초월론적 경험의 개념이 부조리일 것이지만, 후설에게는 아니다. 현상학은 초월론적 경험을 활용하기 때문에 초월철학의 일종이 된다. 이런 의미의 초월철학은 후설에게서 현상 개념의 두 의미를 통해 표현된다.

 '런던 강의'에 따르면, 현상은 첫째, "사실[Tatsache]로서의 순수한 체험함"이며, 현상들의 총체는 "자아학적 사실들의 왕국"이다(재인용). 이때의 현상은 "의식의 권역 내부에 있는 모든 것", 현출하는 모든 것--노에마타(대상적 의미), 노에시스적 구성적 성취, 노에시스가 그에 가해지는 질료적 자료--을 모두 가리킨다(47). '이념들'과 '데카르트적 성찰'에서는 이 첫 번째 의미의 현상 개념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내적 시간의식과 수동적 종합에 대한 후설의 작업수고는 현상 개념의 두 번째 의미를 가리켜 보인다. 예를 들어 후설은 파지나 근원인상 등에 대해 말한 뒤, "그러나 무엇이 근원적으로 시간을-구성하는[zeitkonstituierend] 현상들인가? 무엇이 파지들의 시간성 자체를 구성하는가?"라고 묻는다(48). 그러므로 이 두 번째 현상 개념은 "첫 번째 현상개념의 구성"을 주제화하는 개념으로, "초월론적 주관성의 '기능하는 성취[fungierenden Leistungen]'"에 해당한다(48). 첫 번째 현상 개념은 기술적 현상학에서의 탐구 대상이다. 반면 기술적 분석은 두 번째 현상 개념에 상응하는 사태에 접근할 수 없다. 이로써 구축이 현상학자의 시야 안에 들어온다.

 현상학이 맞닥뜨리는 사실[Tatsache, Fakta]은 삼종이다. 첫째는 첫 번째 현상 개념에 상응하는 자아학적 사실들이고, 둘째는 '근원적', '절대적' 사실로서 형이상학의 대상이다. 여기에는 (필증적 명증이 아닌) 실존에 대한 질문, 초월론적 의식흐름의 유한성 또는 무한성에 대한 질문이 속한다. 세 번째는 (슈넬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경계[에 놓인 ]사실들[die Grenzfakten]이다. 예를 들어, 근원적 시간성은 주관적인가, 객관적인가, 선객관적이거나 선주관적인가? 현상학하는 자아는 유아론적인가, 상호주관적으로 구성되어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는 오직 두 번째 현상 개념에 접근 가능한 구축적 분석만이 답을 제공해줄 수 있다. 한편 현상학적 구축은 형이상학적 구축과 구별되어야 한다. 현상학에서 구축함이란 허구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으며, [실제로] 구축된 것이 무엇인지를 경계사실들과 관련한 진자운동을 통해 알고자 한다. 현상학적 구축만이 인식을 확정적으로[definitiv] 정당화하고 합법화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칸트와 후설이 차별화된다.

 그러나 후설은 현상학적 구축의 개념을 주제화하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구축을 행한 사례는 후설이 핑크와 함께 작업한 1930년대의 초반 작업물들에서 발견된다. 핑크는 현상학적 구축의 개념을 하이데거로부터 인수해왔다. "달리 말해, 현상학적 구축의 개념은 사실 하이데거에게서 근원을 가진다."(50) 후설에게서의 현상학적 구축과 하이데거에게서의 현상학적 구축은 평행하는 의미관계를 가진다.

 '존재와 시간'의 7절에서 하이데거는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내비친다. 하이데거에게 '현상학적인' 현상의 개념이란 "현출함[das Erscheinen]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51). 현상학적 현상은 현출의 의미와 근거를 이룬다. 이때 현출의 의미와 근거를 이루는 것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는 소여에서 소여의 근거로 시선을 옮긴다. '근거지움'을 주제화함에 있어 하이데거는 가능성과 (가능성을) 가능케-함[가능화, Vermöglichen]에 주목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상학자들이 가능성에, 가능성의 조건에, 가능성의 근거에 주목하는 이유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현존재 자신이 될-수-있음, 가능-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가능성에 대한 탐구는 "가능성의 가능성 자체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이중적 질문에로 이끌기 때문이다(52).

 슈넬은 하이데거에게서 분석되는 가능화 개념의 사례를 든다. 첫째는 죽음으로의 선구에 대한 분석에서 나타난다. 현존재는 눈앞의-존재가 아니라 무엇인가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즉 될-수-있음으로 성격규정된다. 이 때문에 현존재의 모든 가능성은 선구하는 가능화[vorlaufenden Vermöglichung]에 의해 근거 지워진다.* 둘째는 근원적 시간성에 대한 분석에서 나타난다. "현존재의 모든 존재기투는 시간성의 자기기투를 전제한다"고 하이데거는 주장한다(53). 세 번째는 생명체의 작동[Trieb]에 대한 분석에서 타난다. 생명 자체에도 초월론적 차원이 있는데, 기관의 '유능함[Fähigsein]'이나 유능성은 작동의 가능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람은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눈을 가지는 것이다."(53)**

*Q.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Q. ???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초월론적 관념론은 후설의 초월론적 관념론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후설의 초월론적 관념론에서 인식근거지움의 근본개념은 현상학적 구축이다."(53) 그러나 하이데거에게선, 현상학적 구축의 개념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근거지움의 전략이 (그가 피히테에게서 인수한) 가능화의 개념에 놓여있다. (게다가 하이데거는 전회를 통해 가능화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하게 된다.) 그럼에도 두 현상학적 구축의 개념은 함께 생각되어야 하며, 둘 다 경험의 최종적인 인식적 근거지움과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