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까지 논문을 학과 사무실에 제출해야 한다. 남은 일은 결론과 초록 쓰기, 인용 형식 통일하기, 참고문헌 목록 작성하기 등이다. 새로운 생각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긴장이 풀어졌다. 느슨해진 마음으로 지난 한 주는 망중한을 즐겼다. 한 주 내내 카뮈를 읽었고, (카뮈를 철학자로 생각해주지 않지만 재미있는) 분석철학도 분을 따라 술자리에 나갔다. 오늘은 9년지기 동아리 선배와 경기 필하모닉의 슈만을 듣고 왔다. 3번 교향곡은 활기찼고, 4번 교향곡은 격정적이었다. 4번 교향곡은 1841년 초연 당시 청중 반응이 좋지 않았어서 실망한 슈만에 의해 개정되었다. 보통 콘서트 홀에서는 그렇게 개정된 버전이 연주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오늘 공연에서 들은 개정 이전의 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반응이라든지, 평가라든지 하는 것은 한두 세기 전에나 지금에나 그렇게까지 신경 쓸 것이 못 된다. 모두가 그저 자기 해석을 관철하려 들 뿐이다.
어젯밤에는 내가 욕망들의 주체라는 사실에 슬픔을 넘어서 화가 났다. 번거롭기 짝이 없는 식욕과 무자비한 외로움. 실제의 지성에 비하면 오만할 정도의 철학적인 야심. 언제나 머리가 아픈 소설가라는 꿈. 하지만 결국은 그런 욕망들이 멈추는 지점에서 나라는 인간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나에게 불가능한 것 사이의 고유한 경계가 개성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자주, 다양한 두께를 가진 불가능성의 벽에 부딪힌다고 할지라도 결코 내가 존재하는 일에 대한 욕망은 금지되지 않는다. 누구도 내 존재함을 금할 수는 없으며, 그러므로 얼마든지 그것을 원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나니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염세의 감각이 삶에 대한 사랑으로 바뀌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앞으로 사는 일이 경멸스럽다고 느껴지는 날이 또 온다면 그냥 잠을 자고, 자고 일어나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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