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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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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그르기치, <탐구도 하고 유보도 하는 회의주의> 필리프 그르기치, 박승권 옮김, "탐구도 하고 유보도 하는 회의주의", 전기가오리, 2020. 원숙한 퓌론주의 회의주의자는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지속적인 탐구자이면서 동시에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가? 판단을 유보했다면, 고통의 원인을 이미 모두 제거했음으로써 평정에 이르러 더 이상 탐구를 이어갈 동기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르기치는 회의주의자가 판단을 유보한 뒤에도 앎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의주의자에게 고통의 원천은 의견상의 불일치--현상의 상충 때문이든, 본성상 좋거나 나쁜 것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든--에서 온다. 의견상의 불일치가 고통을 야기하는 이유는, 의견들 가운데 한 가지(또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으며, 우리네 인식의 목표가 그러한 진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미하엘 프레데, <회의주의자의 믿음> 미하엘 프레데, 박승권•박준호 옮김, "회의주의자의 믿음", 전기가오리, 2022.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와 같은 퓌론주의 회의주의자가 (1)아무런 믿음 없이도 행위가 가능하다고 이론적으로 믿었거나, (2)아무런 믿음 없이도 행위하는 삶이 실천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은 역사적 오해이며 철학적으로도 문제적이다. 회의주의자는 사물이 그에게 어떻게 현상하는지--판타지아의 평결--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참이라는 생각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이성을 통해 현상 배후의 실재를 알 수 있다는 독단주의에 반대하고, 현상 너머의 실재(사물이 '실제로' 어떻게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일체 유보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퓌론주의 회의주의자가 '(이를테면 실재는 없고) 현상만이 참이다'라고 주장했다는 생각 또한 오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