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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 문학과 지성사, 2019, 모든 강조는 필자. 읽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 이건 시집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고 시 하나 하나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시 내에서도 여러 이미지와 메시지가 교차하는, 한 마디로 묵직한, 밀도 높은 시들이었다. 이제니 시인이 시어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방식은 참 독특하다. 내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기표들 사이의 유사성에 의존해 기의를 창출시키는 기법이었다. 말소리가 서로 비슷한 단어들을 늘어놓음으로써, 마치 그 표면적인 비슷함 너머로 의미상의 진정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문장들을 꾸며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무수하다. "열리고 열리는 여리고 어린 삶"(21, 중에서)이라든지, "완고한 완만함으로 나아가는 흐름이 있다"(52, )라든지, ..
강성은, <Lo-fi> 강성은, , 문학과지성사, 2018 예전에 보안서점에서 제목과 두께만 보고 구매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독한 시집이다. 직설적이고 의도적으로 투박한 듯한 언어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1달에 1권의 시집을 완독하는 삶'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해준 책이라 감사하기만 하다. 그 외의 시간엔 무엇을 했든, 얼마나 무기력하게 살았고 어떻게 스스로를 헐뜯으며 지냈든 간에 1달에 1권의 시집은 완독했으므로 죽기 직전 한 가지의 긍지는 가지고 눈 감을 수 있는 삶의 이미지. 꼭 시집이 아니더라도 소설, 영화, 철학... 무엇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밭을 최대한 단조롭게 경작하되 펜 끝은 화려하게 남겨두었던 중세의 필사가들을 연상시키는 활동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지금 정신을 수련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