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선, <도움받는 기분>
백은선, ⟪도움받는 기분⟫, 문학과지성사, 2021 화자는 무인 존재가 되고 싶다. 생명을 저주하는 삶이고 싶다. '0'이라는 기호를 동경하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한다. 절망, 하강, 몰락, 우울에 대한 열정과 그로부터 따라나오는 역설적인 생기로 넘치는 이 시들을, 단순히 모순으로 취급해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독법을 선택해야 할까. 어쩔 줄을 몰라서 그저 읽고 또 읽었다. 잘 와닿지 않은 구절도, 마음을 날카롭게 찌르는 구절도 모두 수용하려 애쓰며 페이지를 끝까지 넘겼다. 그렇게 내내 혼란스러웠던 마음으로, 아픔과 슬픔으로 가득한 이 시집의 끝에 다다랐는데 어째서 나는 '도움받는 기분'을 느낀 것일까? 그 숱한 아픔과 슬픔을 죄다 통과하고도 어째서? 이전에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박하게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