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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번역

에드문트 후설, <정적 현상학적 방법과 발생적 현상학적 방법들> 번역

Husserliana XI, Analysen zur Passiven Synthesen, s.336-345 (Statische und genetische phänomenologische Methode) 번역. 모든 강조는 필자의 것이다.


[336] 우리는 발생의 법칙들이라는 표제(Titel) 하에 [다음을] 구분해야 한다.

 1) 체험류 속 개별적 사건들의 잇따름에 관한 법칙들에 대한 소급지시(Nachweisung)라는 의미에서의 발생의 법칙들. [이] 무매개적인, 필연적인 연속의 법칙들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위한 것이거나 추상적인 국면들, 그와 같은 사건들의 계기들, 예컨대 경과하는 체험들에 파지들이 또는 그때그때마다의 인상적 국면에 파지적 국면이 필연적으로 연결됨[과 같은 사태(Anschluß)]를 위한 것이다. 또는 연상법칙들과 같은 매개적인 잇따름, 체험되는 현재에 재생산이 들어서는 것과 기대지향이 들어서는 것--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공허한 지향, 충족된 또는 충족되지 않은 저리로 지시함과 뒤로 지시함에 대한 법칙들이기도 하다.

 2) 통각들의 형성을 규제하는 합법칙성들. 통각은 그 속에서 체험들 속에서 스스로 주어지지 않은 (일어나지 않은) 무언가를 지각된 것으로 의식해 가지는 지향적 체험이다. 그리고 통각은 이때 그 속에서 진실로 스스로 주어진 것과 같은 것들 또한 인식해 가질 수 있는 특성을 가지는 한에서 통각이라 불린다. 통각은 그것의 내재적 내용물을 초월하며, 여기에는 같은 의식흐름 속 흐름의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구간 속에서 [공허하게 지향되기만 했던 것이] 충족되는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 본질에 맞게 속한다. 이 체험은 충족종합 속에서 그것의 스스로 주어진 것[자기소여]을, 저 다른 스스로 주어지지 않은 것 그리고 동일한 것과 같은 것으로서(als dasselbe, in jenem andern Nicht-selbstgegebene und Selbige) 가르쳐준다. 여기에 미래를 규제하는 법칙이 미리 놓이는 한, 단 그것이 [337] 의식흐름의 가능한 진전에 대한 다가올 가능성들만을 위한 법칙일 때에만 [그 법칙은] 이념적으로 가능한 법칙이다.

 이러한 일반성 속에서 정의된 통각은 모든 자기부여하는 것, 모든 직관적인 의식을 그러므로 포괄하는 개념이다[각주 생략]. 원본적인 통각은 지각이며, 통각의 모든 상의식적(imaginative) 변양은 곧 자신 안에 이러한 변양의 형태 속에서 통각을 간직한다. 이제 모든 현재적인 의식(체험류의 모든 현전구간)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서 현재적으로 인상적으로(impressional) 의식된다는 것, 그러므로 "지각된다는" 것, 그렇게 또한 모든 현재적인 의식 속에서 하나의 "통각"이 놓인다고 함께 말해진다는 것을 숙고해보자. 실제로 [다음과 같은 것은] 상상가능하지 않다. 그것[의식]이 현전으로부터 새로운 현전들로의[,] 그것[의식]의 본질에 맞는 흐름(Fluß) 속에서 본래적으로 현전한 것을 넘어 붙잡지 않을 것(hinausgriffe)[이라는 점이 말이다.] 파지적이고 예지적인 지평들 없이는, 과거의식 그리고 다가올 의식에 대한 선기대 [338] (가능한 만큼 미규정적인)에 대한 공의식(필연적으로 비직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없이는 아무것도[아무런 현전도] 상상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의식흐름 일반 속에서 무언가가 "무언가로부터 발생할" 때, 필연적으로 통각으로부터 통각이 발생한다(entsteht). 여기서 의식흐름의 "시작"에 세워질 수 있는 근원통각이 있는지 여부는 고려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든 경우에서: 위에서의 예시들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의식삶의 일반적인 합법칙성들을 따라서 흐름의 모든 자리에서 발원해야(entspringen) 하는 통각적 지평들, 그와 같은 것들의 종류들, 통각적 지향들의 종류들(나는 또한 말한다: 파생현전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또한 흐름의 모든 자리에서 발원할 필요가 없더라도 발원할 수 있는 것들, 말하자면 그것들이 모든 것[자리]에서(an jeder) [발현] 가능한 조건들에 묶여있는 한에서 [그런 것들이] 있다. 이 후자에는 보통 연상의 표제 하에 문제시되는 지향들이 속한다. 흐름의 모든 자리에서 유사한 성좌들(나는 학문적으로 비로소 내용물을 받아야만 할(bekommen müßte) 숙어적인 표제를 선택한다)이 이전의 것들[성좌들]과 함께 다시 회복되는 것, 이전의 유사한[유사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되돌아지시하고, 그것들을 또한 경우에 따라서 직관으로 가져오며 그래서 현재적인 것과 종합적으로 통일된 충족들로서 보여주는 것 등등이 가능하다. 벌써 이러한 통각들은 따라서 단지 나타날 수[만] 있으며(schon diese Apperzeptionen können sich also nur einstellen) 마찬가지로 이러한 통각적 연결들 -- 그것들[현상들]의 연결들이 통각들을 전제하고 자신 속에 함께 포함하는 연결된 현상들의 통일성을 현시하는 -- [도 나타날 수 있는데,] 다른, 특수한 성질을 가진 통각들이 선행했을 때 [그렇다.]

 (우리는 또한 통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는 없을까[?]: 대개 무언가를 자신 속에서 의식해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무언가]을 동시에 다른 것을 위한 동력들(Motivanten)로서 가지고, 그러므로 순전히 무언가를 의식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게다가 또 다른 것을 그 안에서 결정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 다른 것을 그것[무언가]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것[무언가]을 통해 동기화된 것으로서 지시하는 의식. 모든 경우에서 기존의 정의의 확장과 그것[정의]의 더 상세한 한정이 필연적이게 된다.)

 그러나 또한 더 복잡한 통각들의 유형이 나타날 수 있다. 한 번 거기 있으면[있게 되면], 근원법칙들을 따라 일반적으로 생산 가능한 조건들 하에서 나아간 의식흐름 속에서 반복되는, 다만 자신들의 본질에 따라 스스로 하나의 역사[339], 근원법칙들을 따르는 발생을 가지는 모든 자연적인 통각들, 모든 객관적인 현실통각들과 같이 심지어(ja) 그것[의식흐름]을 지속적으로 관통해서 가는 통각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들 하에서 근원통각으로부터 통각의 형성이 일어나는(steht) 일반적이고 원초적인 법칙들을 정하고 가능한 형성들을 체계적으로 도출하는(abzuleiten) 것, 그러므로 모든 주어진 형성물을 그것의 근원에 따라서 해명하는 것이 필연적인 과제이다.

 이러한 의식의 "역사"(모든 가능한 통각들의 역사)는 사실적 의식흐름 속에서의 또는 또한 모든 사실적 인간 속에서의 사실적 통각들이나 사실적 유형들을 위한 사실적 발생의 내보임과 관계하지 않으며 -- 그러므로 식물종과 동물종의 진화와는 유사하지 않은 것[이다] --, 오히려 통각의 모든 형태가 하나의 본질형태이며 본질법칙에 따라 그것의 발생을 가지고, 그로써 그와 같은 통각의 이념 속에 그것[통각]이 하나의 "발생적 분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포함된다(beschlossen). 그리고 그때그때마다의 개별적인 통각(그것이 사실로서 생각될 때)의 필연적인 생성은 주어지지 않으며[생성의 필연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도리어 본질발생과 함께 오직 발생의 양식, 그 속에서 이러한 유형의 어떤 통각이 개인적인[개별적인](individuellen) 의식흐름 속에서 근원적으로 발생했을 양식만이 주어진다(단번에(in einem Zuge), 또는 나누어서); 그리고 그것[통각]이(소위 근원설립하는 것으로서) 발생한 이후, 동일한 유형의 개인적인[개별적인] 통각들이, 말하자면 더 이전에 이미 형성된 것의 발생적인 여파로 완전히 다르게 발생할 수 있었다 -- 원초적인 형식의 이해할 수 있는[합리적인] 법칙들을 따라서. 의식에 대한 이론은 그러므로 곧바로(geradezu) 통각들에 대한 이론이다; 의식흐름은 지속적인 발생의 흐름이며, 순전한 뒤따름(Nacheinander)이 아니라 도리어 분산(Auseinander), 필연적인 잇따름(Folge)의 법칙들을 따르는 생성, 그 안에서 근원통각들로부터 또는 원초적인 종류의 통각적 지향들로부터 상이한 유형학을 가진 구체적인 통각들이 자라나는 [생성이다.] 그 아래에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통각을 현실화(erstehen)하게 하는 모든 통각들[이 있다.]

 모든 통각은 노에시스와 노에마를 따라 하나의 구조를 가진다. 모든 것[통각]은 자신의 방식대로(in ihrer Art) 의미부여와 의견적(doxischen) 양상성 속에서의 대상정립을 수행한다. 이것은 통각의 지향성을 규명하기 위해, 충족의 가능한 유형들과 가능한 전면적, 완전한 또는 [340] 지속적으로 완전해지는 충족의 체계를 노에시스적이고 노에마적인 구조들을 따라서 서술하기 위해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분석의 고유한 형식이다. 구성적인 것들인 이러한 서술들에서, 설명하는(erklärenden) 발생에 대한 물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든 통각과 관련되는(angehen) 보편적으로 전형적인 유-성격으로서의 원래의(originalen) 인상들(지각들)로부터 파지들, 재기억들, 기대들 등등 속의 모든 양상적 변양들에 대한 서술들 속에서 하나의 구성적인 성격으로 이행할 때, 그리고 그로써 통각의 체계적인 질서의 원칙, 대상들(현실적이고 가능적 방식으로 존재하는 대상영역들)의 최상위의 유에 따른 통각들의 구별(Scheidung)과 교차되는 원칙을 따를 때에도 아니다[그런 물음은 없다].** 의식에 대한 보편적인 교설은 그러므로 통각들에 대한 보편적인 교설이며, [이는] 가능한 대상들의 최상위의 범주 그리고 그것의 범주적 변양들에 대한 보편적 교설과 상관적이다 -- [이는] 가장 일반적인 것들, 통각들의 모든 범주들을 포괄하는 구조들과 양상성들의 보편적 현상학과 관련되는 보편적인 구성적 현상학이다. 여기에는 그런데 발생의 다면적(universell) 이론이 [속한다]. (각주: 현상학: 1) 일반적인 의식구조들의 보편적 현상학 2) 구성적 현상학 3) 발생의 현상학)

*협의의 '구성'은 발생과 독립적이다. 그 경우 '발생적 구성'은 부조리이다.

**이는 정적 현상학의 탐구 대상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합법칙적 발생의 현상학으로서의 "설명하는" [발생적] 현상학순수한 의식 속에서 가능한, 언제나처럼 생성되어있는(wie immer gewordenen) 본질형태들의 현상학, 그리고 "대상"과 "의미"라는 표제들 하에 가능한 이성의 왕국 속에서 그것[본질형태]의 목적론적 질서의 현상학으로서의 "서술하는" [정적] 현상학이 특정한 방식으로 구별된다. 강의들에서 우리는 "서술하는"이라고 말하지 않고 도리어 "정적인" 현상학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것[정적 현상학]은 지향적 수행, 특히 이성수행과 그것의 무효화(Negate)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그것[정적 현상학]은 우리에게 더 높은 단계의[,] 정초된 통각들 속에서 대상적인 의미로서 그리고 의미부여의 기능 속에서 들어서는 지향적 대상들의 등급(Stufenfolge)을 그리고 그것[의미부여]이 그때 어떻게 기능하는지(fungieren) 등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탐구들 속에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통각적 형식들, 너무나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서 (그러므로 너무나 미규정적으로 남겨져서) [341] 모든 모나드의 장비(Ausstattung)에 속해야만 하는 의식의 방식들(지각, 기억 등)을 취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일반성과 필연성을 가진다[취급한다]. 우리가 말하자면 "자연적 세계개념"으로부터 그리고 인식의 주체로서의 인간적 나로부터 벗어나면, 형상적 포착(Fassung)은 모나드의 이념을, 곧장 이 상응하는 개념의 "세계"와 관련된 이념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그로써 우리는 그 안에서 모나드의 순수한 구역(Umfang)을, 그것의 의식흐름 속에서 통각들의 상응하는 유형(시공간적-인과적 사물, 동물적 존재, 인간)이 필연적으로 들어서는 구역을 가진다. 그것[통각]이 아마 모나드의 이념 일반에 필연적으로 속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이는 모든 경우에서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아프리오리하게 확실하지는 않은 것이다.

 나아가: 자연적 태도에서 우리는 인간에 상응하는 모나드에게서 개별적 형태 속에서의 이성의 특유한 발현(Vorkommnisse)을 사실적으로 발견한다. 우리는 "인간"과 "세계"라는 이념의 현상학적-형상적 포착을 통해 우리의 손 안에 쥐어진 지향적 유형학을 <찾는다.> 모든 가능한 이성의 연관들을 따라서 체계적으로 (그러므로 맨 밑에서는(zuunterst) "조화하는 것들의" 가능한 연관들, 해당되는 대상성들에 대한 입증되는 경험 속에서 그것[대상성들]의 연관들과 마침내 이러한 모나드들의 전체 세계를) 연구<해내>기(<er>forschen) 위해 그리고 그것[이성의 연관]의 본질형태를 획득하기 위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능성의 자유로운 왕국 속에서 형식적-논리적 등등인 이성으로서의 이성 일반의 형식적 합법칙성의 본질구조를 연구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상응하는 사고를 형성하고 진실을 실현한다는[이미 실현하고 있다는] 점을 도외시한다면 -- 우리는 그것[이성?]을 통해 가능한 이성주체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인식하고, 그로써 우리는 미규정적 일반성 속에서 순수한 이성의 주체*와 그것[주체]의[,] 그 속에서 그것[주체]이 참된 존재와 진실, 마찬가지로 참된 가치들과 선들(Gütern)을 살아내고(entgegenleben) 목표로 삼는 이성활동성들(Vernunfttätigkeiten)의 형태들을 구성한다. 이 모든 것과 함께 우리는 그러나 하나의 모나드가 완전성 속에서 말하자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그리고 그러한 완전한 모나드적 개인성[개별성]들의 어떤 가능성들이 미리 그려지는지 그리고 개인성[개별성]의 어떤 합법칙성을 통해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식도 획득하지 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성의 권역 속에, 활동하는 나의 왕국 속에 서있으며 활동적인 통각의 그 어떤 형태도 [아직] 서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거기서 발생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것(Rede)이 아니면 [342] (의식의 통일체로서 지향적인, 따라서 통각적인 형태화인) 활동적인 형태화의 연관된 통일체가 아니다. 모든 폐쇄함(Schließen)[포함함?]은 활동적인 통각함이고, 다른 판단들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활동적인 형태화함으로서 그것은 하나의 판단함이다 -- 하나의 판단은 이루어진 다른 판단들을 향해 이루어진다(ein Urteil fällen[fällt] auf andere gefällte Urteile hin). 최종판단은 전제판단들로부터 비롯하며, 그것[최종판단]은 그[전제판단]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 체험은 발생적으로 기초하는 체험들로부터 비롯했다. 다른 발생적 연관들이 그때 정초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모든 활동은 동기부여되며, 작용을 수행하는 내가 확실히 다른 작용들을 수행했음을 통해 존재하는 형식으로(in der Form, dass ich, den Akt vollziehend, bestimmt bin dadurch, dass ich die anderen Akte vollzogen habe) 순수한 작용발생으로서의 작용<의> 권역 속에서 우리는 순수한 발생을 가진다. 우리는 촉발들을 통해 동기부여된 그리고 능동적이지 않은 영역과의 발생적 관계 속에서 동기부여된 더 나아간 작용들을 가진다. 마침내 우리는 순수한 수동성의 영역 속에서 발생을 가진다. 거기서 이전의 능동성 속에서 근원을 가지는 형성물이 역할을 수행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이전의 능동성]은 그러나 지금 그 자체로 수동적으로 떠올려진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발생의 교설[이론](Lehre)에서, "설명하는" [발생적] 현상학에서 [다음을] 가진다:

 1) 수동성의 발생, 이것은 항상 거기 있는[항상 작동하고 있는] 그리고 의문의 여지 없이 통각 자체가 계속해서 뒤에 놓이는(zurückliegende) 근원들을 가지는 방식(wie)인 수동성 속에서의 발생적 생성의 일반적인 합법칙성이다. 수동적 발생의 보편적 이념에 속하는 특수한 유형들.

 2) 나-관여(Ich-Beteiligung)* 그리고 능동성과 수동성 사이의 관계들.

*촉발에 대한 능동적 반응을 가리킨다고 한다.

 3) 순수한 능동성의 연관들, 형성들, 이념적 대상들에 대한 능동적 수행과 실제적 생산물들(Erzeugnissen)에 대한 수행으로서의 발생. 이차적인 감성: 습성의 일반적인 의식법칙. 모든 습관적인 것은 수동성에 속한다. 그러므로 습관적이 된 능동적인 것 또한 그러하다.

 4) 발생의 모든 종류들과 그것들의 법칙들이 획득되었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것이 물어진다. 어떤 한도 내에서 하나의 모나드의 개인성에 대해, 그것[모나드]의 "발전[전개]"의 통일성에 대해, 모든 개별적인 발생들의 본질에 맞게 모나드에 통일성을 주는 합법칙성에 대해 무언가를 진술할 수 있는가, 개인적[개별적] 모나드의 어떤 유형이 아프리오리하게 가능하고 구성 가능한가.

 5) 그리고 이 모든 것과 함께, 우리는 어 [343] 떤 의미에서 하나의 모나드의 발생이 다른 모나드의 발생 속으로 끼워넣어질(hineingreifen)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발생의 통일성이 모나드들의 다수성을 법칙적으로 연결시켜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연결시켰다. 한편으로는 구성된 심리학적 과정들 그리고 같은 것의 제약성(Bedingtheit) 위에서 인류학적 세계(또는 동물적인 [세계])를 물리적 세계의 통일성 속에서 구성하는 경우에 서로 맞서있는 [타인의] 신체(Gegenleib)와 함께 지시하는 수동적 종합,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것을 통한 내 생각함, 가치평가함, 의지함의 동기부여의 형식 속에서의 능동적 종합. 그러므로 모나드의 개인성[개별성]에 대한 고찰은 공존하는 그리고 서로-함께(miteinander) 발생적으로 연결된 모나드들의 다수성의 개인성[개별성]에 대한 질문 위에서 이루어진다** -- "우리의" 세계와 관련하여 자연적 심리-물리적 세계와 공동체를 모나돌로기적으로 이해시킴(Verständlichmachung)에 관한 질문 위에서.

**모나드에 대한 고찰은 상호주관성을 전제한다.

 6) 그로써 다시금 하나의 모나드, 그 속에서 하나의 통일적 자연과 하나의 세계 일반이 발생적으로 구성되고 그곳으로부터 그것[모나드]의 전체 생을 통해 또는 하나의 탁월한 삶의 구간을 통해 [하나의 통일적 자연과 하나의 세계 일반이] 구성된 채로 남는, 그리고 나아가 동물들과 인간들이 있는 세계가 지속적인 부지-확정(Ausweisung)* 속에서 구성되는 모나드의 발생적 설명에 대한 질문이 연관되어있다.

 [이에] 선행되어있는 것은 세계통각에 대한 그리고 그것[세계통각] 속에서 수행된 의미부여에 대한 정적인 해명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wie es scheint), 개인화[개별화](Individuation)에 대한 발생적 고찰을 통해서야 비로소 절대적인 세계고찰, 하나의 "형이상학"을 끝까지-수행(durchzuführen)하고 세계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Q. 더 본래적으로는 '추방', '제명'의 뜻이던데 여기서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Aufweisung'의 오타인가?

 7) 나의 수동성은 모든 타인의 수동성과 결합(Konnex) 속에 서있다: 우리를 위한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세계가 구성되며, 하나의 동일한 시간이 객관적 시간으로서, 이러한 나의 지금과 모든 다른 지금을 통해 그리고 그렇게 그[타인]의 생의 현재 (모든 내재들과 함께) 그리고 나의 생현재가 객관적으로 "동시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어서(In weitere Folge) 내가 객관적으로 경험하는 그리고 나의 입증된 장소들 그리고 모든 타인의 그것들은 동장소적[gleichörtlich]이다. 그것은 같은 장소들이며, 그리고 이러한 것은 나의 그리고 타인의 현상적 체계들을 따로따로 분리된(getrennter) 질서들이지 않게, 도리어 "같은 시간" 속에서 조정된(koordinierter) 질서이도록 질서부여함을 위한 지표들이다. 이는 나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이 일반적으로 두 개의 것일 뿐만 아니라(nicht nur überhaupt beide), 도리어 하나가 다른 하나에 "향해"져있다는 것이다. 내 속에서 타인 속의 감각들이 그리고 [344] 나에게 하나의 자연이 구성됐음에 틀림없는, 그리고 이 자연을 스스로 보존했던 발생의 법칙에 따르는 질서가 들어설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나의 전형적으로 고정된 신체가 여기에 매개되어있다; 또한 나의 신체와 유사한 사물들이 나에게 주어진 자연 속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에 따라 타인경험이 발발했을(ist eingetreten) 뿐만 아니라, 다른 나의 내면적 삶이 규칙을 가지는 채 표현되었고 그에 따라 나의 파생현전이 언제나 다시 새로이 규정되었고 입증되었음을 통해 타인경험이 입증되었다(es hat sich die Einfühlung dadurch bestätigt, dass das Innenleben des anderen Ich sich geregelt ausdrückte und danach meine Appräsentation sich immer wieder neu bestimmten und bestätigten).

 발생의 근원법칙들(Urgesetze)근원적인 시간의식의 법칙들, 재생산의 그리고 나서는 연상의 그리고 연상적 기대의 근원법칙들이다. 여기에[게다가] 우리는 능동적 동기부여의 근거 위에서의 발생을 [또한] 가진다.

 우리가 정적 연관과 발생적 연관을 대립시키면, 다음이 의문시된다. 노에시스와 노에마의 그것[연관]과 같은 정적인 연관의 체계적 현상학을 성취할(zustande bringen) 수 있는지, 그러므로 발생적인 것이 그때 완전히 배제되는지. 대개 탐구들이 어떻게 질서화되어야 하는지가 의문이다(Es ist überhaupt die Frage, wie die Untersuchungen zu ordnen sind). 명백한 것은 우선 개별적인 근원유형, 내가 위에서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부분적으로는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부분적으로는 가능성들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근원유형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질문은 체계학의 실마리들에 대한 질문이다. 이러한 것[체계학의 실마리들]으로서 대상유형들, 그러므로 존재론의 실마리들이 모습을 겉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구성적인 목적론들. 여기서 조화로운 소여들의 이념적 가능성들[의 실]이 자아내지며(ausgesponnen), [즉] 그 속에서 수행의 통일성이 구성되는 모나드적 흐름들의 이념적 가능성[의 실이 자아내지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다른 가능성들이 대립형식들로서 고려된다.

 또 다른 실마리는 발생의 통일성으로서의 모나드의 통일성 그리고 나서는 가능한 모나드들을 위한 유형학의 연구, 말하자면 하나의 개인적인[개별적인] 모나드의, 하나의 개인적인 나의 통일성의 가능한 유형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것[나?]이 찾았어야 하는 것과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야 했는지 또는 그것이 어떻게 자신 속에서 개별적인 성격특성들의 규칙을 담지하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이 이것[규칙? 성격특성들?]은 그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것을 통해) 인식가능해진다.

 실마리로서, 자연적 태도를 가지고 시작하면서, "자연적 세계개념"을 취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연적 세계를 형상적인 것으로 치켜세우고(erheben), 그것을(자연적 세계를) 쌓아 올리고(schichtet), 구성하는 대상들의 유형을 끄집어내고(herausheben), [345] 발생에 대한 고려 없이 구성하는 의식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유형의 세계의 구성을 서술한다.

 아마도 내가 [다음과 같이] 쓰면 명석성에[사태가 명석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열려있는 경험권역 속에서의 필연적 잇따름들: 다가올 것(Das Kommende)은 그렇다면 다가올 것일 뿐만 아니라 필연적 잇따름에 대한 통찰력 있는(einsichtigem)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겨나는(erfolgend)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적으로 발생의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에서(In dieser Art) 자연적으로 모든 "지평" 또는 모든 "통각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정적인" 고찰에서 우리는 "완성된(fertige)" 통각들을 가지며, [이때] 통각들은 들어서고 완성된 것으로서 일깨워지고 멀리 뒤에 놓이는 "역사"를 가진다. [정적 현상학으로서의] 구성적 현상학은 그 속에서 형상적으로 동일한 대상이 구성되는, 그것[대상]이 경험되고 경험 가능한 것으로서 그것의 구성된 자기성(Selbstheit) 속에서 보여지는 통각들의 연관들을 고찰할 수 있다. [한편] 하나의 [또] 다른 "구성적" 현상학, 발생에 대한 현상학은 역사, 이러한 객관화의 필연적인 역사와 그와 함께(damit) 가능한 인식의 객체들로서 객체들 자체의 역사를 뒤쫓는다. 객체들의 근원역사는 질료적 객체들에로 그리고 내재적인 것 일반에로 되돌아 이끌며, 그러므로 근원적인 시간의식 속에서의 같은 것의 발생에로 되돌아 이끈다. 모나드의 다면적 발생 속에는 이러한 모나드를 위해 거기 있는 객체들의 구성의 역사들이 내포된 채(beschlossen) 놓여있다. 그리고 발생의 다면적인 형상적 현상학 속에서 이러한 것들(dieses[?])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나드들과 관련하여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객체들을 위해 똑같이(selbe) 수행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역으로 객관적 단계들에 상응하는 모나드의 등급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또한 모든 내재적인 것을 "구성적으로" 고찰할 때 무엇이 구성적인 고찰들로부터 의식구조들에 대한 교설을 여전히 분리시키는지 더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 번은 "이념들[책]"을 이제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