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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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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천사는 침묵했다> 발췌 하인리히 뵐, 임홍배 옮김 ⟪천사는 침묵했다⟫, 창비, 2019. 전쟁 직후 독일의 폐허를 응시하는 책. 주옥 같은 구절들이 많은데, 손목이 슬슬 아파서 두 부분만 옮긴다. 차례대로 사랑을 집어삼키는 피로를 다루는 93쪽, 1948년의 독일의 본질을 꿰뚫어버리는 듯한 144-5쪽. "나와 함께 있어줘."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키스를 하자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그녀를 놓아주자 그녀가 말했다. "아냐, 이러지 마. 날 놓아줘. 너무 피곤해서 죽을 지경인데,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배도 고파, 너무너무 배고파."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그가 말했다. "당신도 날 사랑해?" "그런 것 같..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김연수 옮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민음사, 2008 제목에 굉장히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단순히 조금은 바보 같고, 위태로운 사랑에 빠졌을 뿐인 카타리나 블룸이 언론에 의해 테러리스트, 창녀, 체제에 위협적인 공산주의자 등으로 낙인 찍히면서 명예를 실추 당하고, 조금의 죄의식도 없이 자신의 아픈 어머니와 자신을 문자 그대로 죽음 또는 적어도 죽음에 가까운 억울한 처지로 내몬 기자 퇴트게스를 살해한다. 황색 저널리즘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거의 투명하다시피 한 인물들과 서사를 곧장 통과해 독자에게 아무런 매개도, 해석의 여지도 없이 전달된다. 아무리 이 글이 '소설'보다는 '이야기' 또는 '팸플릿'으로 의도..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홍성광 옮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열린 책들, 2011. 1952년, 가난한 중년 부부의 하룻밤. 독일의. 흔히 사랑은 명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표상된다. 무엇보다도 삶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감정으로서 꿈꾸어진다. 그러나 사랑이 가난과 만나면 도리어 절망의 근원이 된다. 프레드 보그너와 캐테 보그너는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그들은 단칸방에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다가,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하자 별거를 감행한다.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노동에 지쳐 집에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하지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을 때리자마자 죄책감에 시달려 그들이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