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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특별히 긴 글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의 사랑(2020.6)

이하영,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의 사랑⟫, 봄들, 2020

쇼팽의 음악, 그중에서도 야상곡, 특히 No.13을 사랑한다면.

©김연우

I. 본문 발췌

"그녀의 슬픔에 나는 솔직히 안도했다. 엄마가 내게 마음을 쓰고 있긴 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 자기 때문에 상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의미심장했다.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보다 강한 죄의식으로 묶여있는 듯했다." 본문, <사랑보다 강한> 중에서

"소리는 멀리 있는 음들 사이를 널뛰지 않고, 고음에서 차츰 미끄러져 내려가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 오른손의 미끄러짐을 왼손의 셋잇단 음표들이 위태롭게 떠받쳤다. 비슷한 멜로디가 되풀이되면서 내 머릿속에서 흐릿하기만 했던, 이 녹턴에 대한 인상이 또렷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나는 시력을 잃어가는 딸이 춤을 추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을 상상했다. 투명한 관객이 된 나는 어머니와 나란히 숨죽여 그녀의 춤을 관조했다." 본문, <콩쿠르 혁명> 중에서

"공통의 죄를 지닌 사람들은 같은 어둠 속에 놓인 이들이다. 그들에게선 자긍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같은 죄를 저지른 상대를 보며 아, 나 같은 저열한 인간이 저기 한 명 더 있구나, 그래도 저 인간이 모든 걸 포기하지는 않았구나, 라 되뇌며 앞으로도 저열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을 뿐이다. 이들은 서로를 통해서 생활의 자격을 찾기 때문에 살아가려는 한 그 무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그랬다. 주호와 나는 그런 방식으로 서로가 필요했다." 본문, <망한 서커스> 중에서

"그 시절의 나를 짓누른 것은 과거만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리란 그 예감이 가장 무거웠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그리고 누군가 나 따위에게 사랑을 건네줘도 결국은 그 아름다운 사람들을 내 손으로 다시 공격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귀납의 끝에 스스로를 변호할 의욕도, 능력도 잃어버렸다." 본문, <망한 서커스> 중에서

"무엇보다 잦은 비극은 좋아하는 일이 없거나, 있어도 그것이 해야 하는 일, 또는 하도록 기대 받는 일과 충돌하는 경우들이었다. 어느 쪽이든 대부분의 학생들이 깊은 허무감에 시달렸다. 그나마 나 같은 1학년생은 안일하게 구는 것이 허락되었는데, 어쨌거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담은 가중되었고, 모든 1학년은 언젠가 더 이상 1학년이 아니었다. 허무는 얇지만 무거운 갑옷의 모습으로 젊은 피부에 밀착했다. 가끔은 대학 건물들 자체가 상아색 허무의 벽돌로 쌓아올려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곳에서 점수를 몇 점 더 따기 위해 밤을 샌다는 것은 오히려 허탈감을 더하는 일이었다." 본문, <감정은 기침 같은 것> 중에서

"이러나저러나 이득 없이는 어떤 계약도 성립하지 못한다. 우리의 계약결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를 통해 스스로를 벌할 수 있었고, 그는 내 덕에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인간을 만났다. 이외에도 검은 구름처럼 알기 어려운 요인들이 얽혀있을 터였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자기혐오로부터 실존적 이득을 취해왔으며, 이 이득이 지속되는 한에서 앞으로도 함께였다." 본문, <계약결혼> 중에서

"나는 그녀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녀 안의, 한때 내게 필요했던 모든 영양을 공급한 따스한 자궁보다 현정민의 서늘한 미소가 더 좋았다. 뱃속은 어머니와 자식이 하나 되는 가장 오롯한 공간이라고도 불렸으나, 그 살의 집 속에 웅크릴 바엔 추위 속에서도 저 멀리 어느 아름다운 창을 바라보는 편이 나았다." 본문, <녹턴, Op.48 No.1> 중에서

"보고 싶어, 라는 글자들을 수천 번 다시 읽었다. 눈물이 흘렀다. 눈과 살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던 풀 같은 것이 모두 마를 것만 같았다. 내 모든 과거를 인식했던 그 눈이 사라진다면, 같은 구멍으로 이 몸의 다른 낡은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오리라. 그렇게 나는 새로운 정신을 얻게 될 것이다……. 남아있는 극소의 힘으로 영혼의 커튼을 몇 센티 열어보았다." <에필로그> 중에서


II. 정보 및 판매처

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6730031 등지에서 자세한 책 소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 www.instagram.com/_samotsa_/ 에서 소설의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 콘텐츠와, 소설에 등장한 곡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소설이 절판되었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이 만약 계시다면, 비밀댓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작가로서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III. 테마들(스포일러 포함)

방법적 비관 데카르트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확실한 지식을 발견합니다. 이 책 역시 비관에 비관을 거듭한 끝에도 남아있는 낙관의 가능성을 쫓습니다. 어둠을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태양은 너무나 밝습니다. 희는 갑작스러운 태양빛에 눈이 멀지 않기 위해 우선 자그마한 촛불에 대해서부터 적응하려 하는, 심지어는 태양보다 촛불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고집센 아이입니다. 

자아와 타인(‘나’와 ‘너’) 자아는 자신에게 주어져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자신이 추운지, 더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아는지 알고 뭔가를 모른다면 적어도 무지의 감각 정도는 갖추고 있습니다. (철학사에서 무의식과 내성內省의 한계가 조명되기까지는 전반적으로 이렇게 믿어졌고, 지금까지도 꽤 설득력을 갖는 가설입니다.) 이처럼 투명한 자아와 달리 타인의 내면은 결코 그 안감을 알 수 없는 암막 같은 것입니다. 불투명한 세계를 향하여 자아는 해석하는 존재로서 있고, 타인은 해석의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몇몇 타인들은--아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타인이--해석의 한계를 알려옵니다. 타인은 해석의 유래인 동시에, 해석의 영도零度, 곧 해석의 불가능성을 알리는 펜스입니다. 희에게는 영도가 그런 존재입니다. 

 해석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의 해석입니다. 자신이 가진 배경지식과 선입견 등을 바탕으로 타인을 (아무리 조심스러울지언정) 재단하는 일입니다. 희 역시 영도를 자신의 자아 안으로 편입시켜 이해합니다. 그녀에게 영도는 엄밀히 말해 타자가 아니었고, 자아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런 영도가 진정한 타자임이 드러나는 순간, 희의 ‘환상’이 깨지고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희는 영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희는 자신을 사랑했습니다. 

 자기혐오는 스스로에 대한 과몰입을 촉진합니다. 자기혐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스로의 정신적 불행이기 이전에 타인에 대한 무관심, 나아가 은근한 배척감, 미움입니다. 그렇기에 자기혐오를 해소하는 길은 자기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개선은 소설에서 용서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소연의 용서를 통해 희는 자아의 감옥에서 탈출합니다.

영원한 결핍  희의 근본적인 욕망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현정민에게서 합당한 애정을 받고, 주호와 소연이에게서는 용서를 받는 것이지요. 이중에서 더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했고 희의 생애를 내내 괴롭히는 것은 전자의 욕망입니다. 그 애정을 현정민이 주지 않자, 희는 그 이유를 그녀가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현정민은 희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소설을 쓰는 데만 열중하지요. 사랑에 대한 갈구는 희로 하여금 초라한 바람둥이인 영도를 찾아가게 만듭니다. 희는 그와의 만남을 거쳐 사실 그런 아버지--현정민이 딸 대신에 그리워하는--는 없고, 현정민이 쓰던 소설 역시 희가 상상하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애초에 현정민은 희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였지요.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것만 같은 결핍 앞에서 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음악의 힘을 빌어 외로운 안정을 택합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결말입니다. 

철학하는 여성die Philosophin 한국 문학에서 철학하는 남성 인물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인훈 작가님께서 쓰신 『회색인』의 독고준은 그 표본이자 이상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변화에 발맞춰, 그리고 과거에 스러져 갔던 것들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철학하는 여성 인물을 필요로 합니다. 근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철학하는 여성이 문학에서 과소대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문학이 현실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또는 현실에 뒤쳐지지 않는다면 철학하는 여성들이 곳곳에서 심심찮게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 소설은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여성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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