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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찰스 테일러, <헤겔> 1부(pp.13~235)

찰스 테일러, 정대성 옮김, <헤겔>, 그린비, 2014

 헤겔의 철학을 비교적 명쾌한, 이따금씩 비유적인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1부는 헤겔이 살던 시대에 어떤 문제들이 철학적 해결을 요했는지(헤겔책!!!), 그리고 이에 응한 헤겔이 내놓은 대답은 무엇인지를 청년기에서부터 완숙한 시기까지 개괄한다. 헤겔의 기획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대화해'가 될 것 같다. 서로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매력적인 두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 가능한 것으로 화해시키는 작업이 그의 철학의 기둥을 이룬다. 예컨대 헤겔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천착한다.

(1) 경향성에 맞서 이성으로써 스스로의 도덕법칙을 입법하는 칸트 식의 급진적 자유와, 인간은 욕망/감정/감성 일반을 타고난다는 낭만주의적인 또는 (헤르더Herder 식으로 말하자면) 표현주의적인 인간관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인간은 감성으로부터의 분리를 통해 얻어지는 이성적 자유와 자연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삶'--을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전인적인 존재자가 될 것인가?

(2) 세계를 인간의 주관과 독립적인 의미로 충만해있는 질서로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이 붕괴하고, 기계론이 부상한 이후 맹목적이 된 자연은 인간과 일방적 지배나 예속의 관계를 벗어나 어떻게 통일될 것인가?

(3)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집단과 마찰을 빚는 일이 필연적일 때, 개인은 어떻게 하면 자유로우면서도 자신이 속한 사회 또는 국가에 통합될 수 있는가?

(4) (1), (2), (3)에 대한 대답으로 헤겔은 합리적 필연성을 자신의 형상인(본질)이자 목적인(목적)으로 가지며, 우주라는 물질에 체현embody되어있고--정신의 '체'현은 필연적으로 모순을 낳는다--역사를 통해 자신의 합리성을 전개/실현해나가는 절대 정신을 내놓는다. 절대 정신은 인간, 동물 등과 같은 유한한 존재자들을 매개로 자신의 목적인 자기인식 또는 자기표현을 달성한다. 이때 유한한 존재자와 절대정신/신/무한자는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인가? 개인은 무한자에 의해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예컨대 죽음과 같은 부조리 또는 운명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1)에서는 이성과 감성(또는 자유와 삶/내적 자연)이, (2)에서는 인간과 외적 자연이, (3)에서는 개인과 사회가, (4)에서는 유한자와 무한자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 대립 또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헤겔은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을 원리로 가지는 논리학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대립자들은 존재하기 위해 상대에 의존할 뿐 아니라, 절대정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서로 대립하는 것이 필연적이기까지 하며, 그 대립을 거쳐서만 비로소 통일될 수 있다. 이 통일은 각 대립자들을 파괴하는 융합이 아니라 차이를 보존하는 화해Versoehnung이다. 절대정신은 원초적인 통일의 상태에서 존재자들의 모순을 변화의 동력으로 삼아 그것을 지양aufheben함으로써, 모든 사태가 합리적 질서의 표현임이 알려지는 완전한 자기인식 또는 자기표현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때 절대정신은 일종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개념화하는 개념이다. (이는 세계를 텍스트와 같은 것으로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과 유사한 결론이다. 그러나 절대정신이 정립setzen하는 세계는 주체성과 독립되어있지 않고 주체성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읽힌다.) 아래는 정리하고 싶은 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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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주체 개념

“과거의 견해에 의하면 주체는 우주적 질서와의 연관 속에서 규정되는 데 반해, 근대의 주체는 자기규정적이다.” 19 

“나는 [...] 이와 연관하여 사물들을 내적 의미를 결한 것으로, 세계를 관찰에 의해 확인되고 어떤 선천적 패턴에도 순응하지 않는 그런 우연한 상호 관계의 장소로 특징지었다.” 26 cf. 탈마법화, 탈신성화

“그런데 이러한 근대 객체성 개념은 외부 자연에 한정될 수 없다. 인간은 인식의 주체일 뿐 아니라 자연 안에 있는 객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은 인간에 대해 기계적, 원자적, 동질적 모형에 따라 이해하도록 장려했으며 인간이 우연에 기초해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27

“새로운 객체성과 상관 관계에 있는 자기 규정적 주체성 개념과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따라서 이러한 객체성에 철저히 종속된 것으로 보는 견해의 혼합 [...] 이 두 경향의 화해는 헤겔 세대의 주된 문제였다.” 28-29

 

표현주의 이론과 그것의 열망들

“따라서 인간의 삶을 표현으로 보는 생각은 표현을 목적의 실현으로 볼 뿐 아니라 이러한 목적의 명료화로도 본다. 그것은 삶의 완성일 뿐 아니라 의미의 명료화이기도 하다. [...] 명료화로서의 나의 삶의 형식은 단순히 목적의 완성이 아니라 의미의 체현이며, 의미의 표현이다. 표현 이론은 의미와 존재 사이의 계몽적 이분법을 단절한다.” 40 cf.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상이론의 자기실현 version

“표현주의적 견해는 계몽의 사상가들을 맹렬히 비난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을 쪼갰고,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객체화하는 가운데 인간적 삶의 참된 삶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혼을 육체와, 이성을 감정과, 이성을 상상력과, 사유를 감각과, 욕망을 계산과 나누었다. 이 모든 이원성은 인간의 참된 본성을 뒤틀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오히려 단일한 하나의 삶의 흐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즉 표현주의는 강력한 반이원론”이다. 52-53

또 표현주의적 견해는 “새로운 자유는 진실한 자기표현에 그 본질이 있다”는 자유관을 퍼뜨렸고, “계몽이 위험한 것으로 여겼던 자연과의 연합을 위한 영감을 부여했다.” 54

“[자연과의] 보편적 공감이란 [...] 삶의 범주들로 변형된 스피노자의 사유에 기초해 있었다. [...] 우리는 이 보편적 삶에 주체성을 부여함으로써 아주 진정된 존재론적 가정을 보게 될 것이다.” 59 

마지막으로 표현주의적 견해는 “개인을 보존하는 데 머물기보다 공동체적 삶을 분유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추구했다. “고대의 폴리스는 완전한 자유를 최고의 공동체적 삶과 결합시켰고, 따라서 표현주의적 이상이었다.” 60

“우리는 표현주의적 의식을 주체가 객체화된 세계에 마주 서 있는 그런 곤궁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표현주의적 의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며, 객체성을 주체성의 표현으로, 혹은 주체와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세계와의 통일에 대한 이런 강력한 요청은 주체의 실존을 위협하지 않는가?” 62

 

칸트의 급진적 자유관과 표현주의적 이상의 통합

“여기서 그[칸트]의 근원적 관심은 주체의 도덕적 자유에 있으며, 엄격한 의미에서 이것은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규준을 신과 같은 어떤 외적인 출처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부터 인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만약 우리가 신과 불멸성의 전망을 확실하게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두려움과 희망에 따라서 행동해야 할 것이며, 도덕적 삶의 핵심인 의무에 대한 내적 동기를 결코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다.” 66

“[낭만주의 세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약 급진적 자유에 대한 열망과 자연과의 통합적인 표현적 통일에 대한 열망이 함께 완전하게 충족될 수 있으려면, 만약 인간이 거의 완벽하게 자기 규정하는 주체로 머물면서 동시에 자기 내부의 그리고 우주 안의 자연과 하나로 있을 수 있으려면 나의 기본적인 자연적 경향성이 자발적으로 도덕성과 자유로 방향 맞춰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자연이라는 보다 큰 질서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나의 내, 외부에 있는 전체 질서는 정신적 목표를 향해야 하며 이 질서를 주관적 자유와 통합할 수 있는 형식을 실현하고자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정신적 존재로 머물러 있으면서, 자연과 상호작용을 할 때 아직 자연과 대립해 있지 않다면, 이러한 상호작용은 내가 어떤 정신적 존재나 힘과 관련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상호 간의 교감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적 목표를 향하는 경향이 있는 정신성이 자연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자연적 실재는 스스로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신적 원리이다.” 81-82

“주체와 객체의 실제 통일은 자연이 주체의 진정한 표현일 경우에만, 말하자면 자연이 스스로 자유와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독립적인 정신적 실재일 경우에만 도달할 수 있다.” 83

“자연 속에서 전개되는 우주적 정신은 의식적 자기 인식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고자 고투하며, 이러한 자기의식의 장소는 곧 인간의 마음[정신]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 자체 완전한 자연을 반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이 정신이 스스로를 완벽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담지자[매개체]이다.” 90

“[헤겔이 아닌] 낭만주의자들에게 주체성과 자연의 통일은 직관이나 상상력에 의해 이뤄졌다. 이성은 분리하고 분석하고 나누는 능력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이 능력은 우리를 자연과의 연합에서 아주 멀리 떨어내기 때문이다. 이성을 이렇게 결정적으로 배제하는 현상은 [...] 삶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며, 이것은 자율성과 표현의 종합이 아니라 자율성을 포기한 일종의 항복이다.” 96 

 

청년기 헤겔, 기독교의 실패

“불행한 의식이란 자연과의 분리의 의식이며, 지배와 예속의 의해 대체되는 의식으로서 인간과 자연, 자연과 정신,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전제하는 의식이다. [...] 예수의 메시지는 인간에게 상실된 통일성을 회복하도록 요청한다. 즉 외부에서 명령하는 법, 인간을 자연과 다른 인간으로부터 분리하는 법을 마음의 목소리로 대체하라고 요청한다. [...] 이런 새로운 설명은 칸트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평가와 맞물려있다.” 116 cf. 칸트의 당위sollen, 예수의 존재sein

“맨 처음 아브라함에 대한 논의에서 그는 분리는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자연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지배하거나 자연에 지배되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한다. 그리고 자연적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에게서 정신을 분리하는 것은 우리를 신의 노예로 만든다. 유사하게 이성과 경향성의 분리는 우리를 이성의 규정의 노예로 만든다.” 119

“그리스의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공적 표현을 포기한, 그리고 그 근원에서 카이사르의 것과 신의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사적 종교이다. 하지만 둘째,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이런 분리는 보다 심오한 균열의 외적 표현이다. 이 분열은 삶의 다양한 측면들에서 퇴각하려는 경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런 분열된 삶에서는 온전한 사랑이 통합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 또한 기독교 공동체는 “권위와 지속적 근원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의존해야 했는데, 이것은 예수의 사명의 실패를 보여준다. 예수는 정신[성령]이 그들에게 들어가면 그들이 자신처럼 화해된 삶을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정성으로의 이런 회귀는 현재 기독교의 세 번째 중요한 특성이다.” 124-125

 

예나 시기의 헤겔

1. 분리의 불가피성

“그는 자신의 원래 임무를 통일성을 회복과 분리의 극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립자의 화해를 그 임무로 본다. 이전에는 분리를 단순히 타락으로, 없어져야 할 것으로 봤는데, 성숙한 체계에서는 자유의 발전과 불가피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130

“헤겔은 철학의 형식적 과제를 “분리의 지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를 푸는 방식이 “대립의 한 쪽을 파괴하고 다른 쪽을 무한성으로 올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분리와 동일성 둘 다 고유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공식이 나온다. “그러나 절대자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다. 대립과 통일성은 절대자 안에 있는 두 측면이다.” [...] 분리는 인간에 의해 회피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의 자기 실현에 본질적이다.” 인간은 전통과, 신비적 사유와, 욕망과 감정과, 삶의 “생생한 많은 경험들을 추상한 개념들에 종속시켜야 한다.” 131-133

“그는 역사를 비극적 갈등으로부터, 그런 갈등 내에서, 그런 갈등을 관통해 보다 높은 화해로 나아가는 전개 과정이라는 견해를 발전시켰다. 갈등이 본질적이기에 회피될 수 없다면 두 가지 목표가 서로 완성되는 보다 높은 화해가 있어야 한다. 역사는 자신이 만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움직인다.” 134

2. 철학의 지위

“[종교나 사랑보다도] 철학[이] 최고의 통일성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다. 철학은 정신이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는 매체이다.” 그는 이성Vernunft의 개념을 통해 “오성Verstand과 반성Reflexion을 넘어서는 개념적 사유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자유와 총체적 표현의 대립을 화해시키는 종합은 분리되지 않은 원래의 통일성으로 단순히 회귀하는 것이 아닌데, 헤겔은 이런 종합은 철학적 해명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그는 낭만주의자들과 갈라진다.” 136-138

3. 인간중심에서 정신Geist중심으로

“의무의 내용을 이성의 필연적 형식으로부터 도출하고자 시도한 칸트의 형식주의는 헛되고 공허하다고 끊임없이 공격받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오로지 스스로를 보다 큰 틀의 일부로 봄으로써만 인륜적 삶의 참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는데 있다. 이것은 타율성으로의 후퇴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1절에서 본 것처럼 인간이 스스로를 정신의 필연적 담지자로 여기게 하는 그런 보다 큰 틀이 곧 정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40

4. 행위에 대한 인식의 우선성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해야 하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제도들의 변혁은 더 이상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임무로 간주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 임무들이 사람들에 의해 완수된다고 하더라도, 이 임무들이 완전히 실현된 이후에야 사람들의 역할이 완벽하게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헤겔의 ‘이성의 간지List’라는 사상이며, 역사에 대한 회고적 이해의 사상이다. [...] 이 역사의 주체는 더 이상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그가 분명하게 말하듯이--정신이다. 따라서 의도된 행위를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행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역사의 제도적 변혁이 아니라(왜냐하면 이런 변혁은 더 이상 의도적 의미에서 파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신이 발전 과정에서 산출한 것을 인식하고 그렇게 산출된 것과 인간 자신이 맺는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143

 

성숙한 시기의 헤겔

“인식주체와 그의 세계, 자연과 자유, 개인과 사회, 유한한 정신과 무한한 정신, 혹은 자유로운 인간과 그의 운명 등의 대립들은 철학이 극복해야만 하는 대립들이다. 물론 철학이 이런 대립을 극복한다는 것은 철학이 이 대립들이 어떻게 스스로 극복되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52

“대립과 동일성은 서로 명시적으로 분리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각자는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각자는 주어진 두 개념쌍 사이에서 자기 자신과만 연관성을 가질 수는 없다. 반대로 그 쌍은 일종의 순환적 관계에 놓여 있다. 대립은 이전의 동일성에서 발생한다. 그것도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동일성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고, 대립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 135

“따라서 질료형상의 관계론과 표현에 대한 새로운 견해의 결합으로서 표현주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반이원론적이다. 그리고 헤겔의 주체 이론이 그렇다. 주체, 그리고 ‘정신적’이라고 명명되는 이 주체의 모든 기능이 불가피하게 몸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헤겔 사유의 기본 원리였다.” 158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나의 살아있는 몸체이다. 하지만 동시에 삶에서의 이런 구현체는 우리 자신 내부의 그리고 자연과의 무반성적 통일을 향한 성향과 충동의 흐름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려는 경향을 가진다. 이성은 스스로를 실현하기 위해 이런 경향과 싸워야 한다. [...] 따라서 우리는 주체는 자신의 구현체와 동일하면서 동시에 대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163 cf. 동일한 주체가 불변하는 실존 조건과, 그 조건들을 넘어설 것을 요청하는 자기 실현이라는 목적을 가진다. 그 둘이 충돌하므로 “헤겔의 주체는 자기 자신과의 대립 속에, 혹은 ‘모순’ 속에 있”다. 184

“이성은 자연이 합리적 계획의 일부임을, 즉 분열은 보다 높은 통일을 위해 인간을 준비시키고 교육하는 데 불가피함을 본다. 합리적 주체는 스스로를 이런 보다 큰 이성, 즉 전체를 뒷받침하고 있는 합리적 계획과 동일시하며, 더 이상 자신을 자연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165 cf. 역사라는 큰 계획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의식은 이성이고, 사물들을 분열된 것으로 보는 의식은 오성이다.

“의식은 주체가 객체와 마주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객체와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다른 것에 의해 한정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유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주적 정신이 완전한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유한한 정신들인 매개체를 통해야 한다. [...] 따라서 정신은 필연적으로 유한한 정신들 속에 구현된다.” 170-171

“세계를 정립하는 정신의 ‘활동’은 철저히 합리적 필연성의 노선을 따른다는 사실이 정신의 자유의 제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반대로, 정신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만드는 것, [소여된 본성을 가지는 유한자 인간과 달리] 한계 없이 무한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합리적 주체성으로서의 정신은 합리적 필연성을 따르는 가운데 자신의 본질 이외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177-178 cf. 베르그송적 자유

“만약 세계가 개념적 필연성으로부터 정립된다면, 그리고 세계가 개념적으로 필연적인 사유 속에서만 적절히 이해될 수 있다면 정신의 완전한 자기 이해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가장 완전한 이해와 동일한 것으로서, 개념적 필연성의 형상이어야 하며 일종의 완전무결한 합리성이어야 한다.” 182-183 cf. 추론의 필연성에서 존재론적 필연성으로. 사유와 존재를 구별했던, 그런 구별의 부재를 초월적 변증학으로 규정했던 칸트와 결별.

Q. pp.183-189의 원환을 이해하지 못했다.

헤겔은 유신론이 우주 밖의 신을 설정함으로써 우주가 체현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거스른다고 생각했고, 자연주의 또는 무신론은 우주의 실존을 궁극적으로 소여된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실존 조건을 영원히 만들어가는 신이라는 생각을 다듬어 간다. 이것이 바로 헤겔의 ‘정립하다’라는 말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190-191 cf. 헤겔은 범신론자도 아니다. 193

“이 주체 역시 자신의 목적과 상충하는 실존 조건들을 가진다. 왜냐하면 절대적 주체는 외적인 유한한 실재들에, 그리고 유한한 물질적 사물들의 실재 속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정신들에 체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세계 내에서 사유하는 존재들은 외적 실재를 타자로 마주한다. 유한한 정신처럼 절대적 주체는 통일로 복귀하기 위해 분리를 겪어야 하는 원환 과정, 그런 드라마를 통과해야 한다. 절대적 주체는 내적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그 대립을 겪으며, 자신의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합리적 필연성을 아는 의식으로 나아간다.” 194-195

“이제 우리는 유한한 사물들은 스스로가 아니라 보다 큰 전체의 일부로만 실존할 수 있다고 한 헤겔의 상승 변증법의 근본 원리를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 변증법의 동력은 모순이다. 그리고 모순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즉 유한한 사물들은 공간과 시간 속에 외적으로 실존하고 있기에 독립성을 요청하지만, 이 유한한 사물들의 실존의 토대는 이것들이 이런 독립성을 용납할 수 없는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변증법은 사물들이 절대자의 자기 운동의 일부로 간주될 경우에만 이 모순이 이해될 수 있고 또 화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

“헤겔의 관념론은 외부의 물질적 실재를 부정하는 것과 결코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가장 강력하게 긍정한다. 그 외부 실재는 [정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실존할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실존한다. [...] 절대적 관념론은 이념의 드러남이 아닌, 즉 합리적 필연성의 드러남이 아닌 어떤 것도 실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07

“특히 헤겔은 부정성을 주체와 연결시킨다. 왜냐하면 주체의 본성은 자신의 대립자를 통해 자기 자신(자기 의식)으로 귀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주적 정신의 경우 본성은 자신의 대립자를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8

“절대적 관념론에서는 논리적 언어가 존재론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정당화되는데, [...] 세계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참된 개념들은 세계를 정립하는 근본 계획을 제공한다.” 209 cf. 주체성으로서의 개념.

cf. ‘개념’ 개념의 세 용례: p.211.

cf. 즉자성과 대자성: pp.212-213

“헤겔은 칸트의 물자체에 대항하여 아주 강력히 저항한다. 그리고 그 궁극적 논증은 다음과 같다. 정신은 궁극적으로 실재 전체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인식을 넘어선, 마음이나 정신을 넘어선 어떤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더 나아가 그 대립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궁극적으로 정신의 자기 인식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에서 극복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유를 넘어선 곳에 있다고 추정되는 세계가 실제로는 사유에 의해 정립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세계가 합리적 필연성의 드러남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2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