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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현상학

이소 케른, <후설과 칸트> 발췌

이소 케른(Iso Kern), 배의용 옮김, ⟪후설과 칸트⟫, 철학과 현실사, 2001.

지금은 절판되었다.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이 칸트의 초월론철학(Transzendentalphilosophie) 및 나토르프, 리케르트 등의 신칸트주의자들의 철학에 대해 드러낸 태도를 연구한 명저다. 1960년대 초반에 출간되었지만 무려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후설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1부는 후설이 칸트 및 신칸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들과 대결했던 역사를 개괄하고, 2부는 후설이 칸트의 철학에 관해 내놓은 입장을 그리고 3부는 후설이 신칸트주의자들의 철학에 관해 내놓은 입장을 해명한다.
시간에 쫓겨 3부는 읽지 못했지만, 아무튼지 간에 후설이 칸트를 여러 곳에서 명시적으로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그의 사상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알게 해준 귀중한 책이었다. 철학사는 여러 색깔과 모양의 구슬을 한 줄에 꿰어놓은 목걸이와 같아서, 상이한 외양과 문체를 입은 사상들이 통일된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으로 판명될 때가 잦다. 이소 케른은 후설과 칸트 모두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통해 그와 같은 판명에 성공하고, 그러면서도 후설의 초월론철학과 칸트의 초월론철학 사이의 차이를 조명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석사논문 집필과 별도로 기억해놓고 싶은 사항들을 간단히 발췌 및 정리해둔다.


제1부 칸트와 신칸트주의에 대한 후설의 태도에 관한 역사적 개관
"논리학적 심리학주의에 반대하는 나토르프의 논지는 논리학적 심리학주의를 객관적, 논리적 권역으로부터 주관적, 심리적 권역으로 <부당하게 이행하는 오류>(metabasis)로 낙인찍는 것이다."(35) ➔ 후설이 심리학주의와 결별한 데에는 프레게의 비판뿐 아니라 나토르프의 영향 역시 적지 않았다.
cf. 후설은 ⟪순수이성비판⟫의 초판을 재판보다 더 선호했으며, 내용 가운데서는 특히 '초월론적 감성론' 일반, A판의 '삼중의 종합', '경험의 유추', 이념론, '순수이성의 오류추리' 등을 상세히 연구했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대목들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다(42-3).
"전쟁의 상황[제 1차 세계대전]은 후설에게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 과제를 제기하였다. 후설은 독일 국민에게 저항력의 정신적 원천이 되고 대재난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 될 만한 철학적 세계관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 전쟁은 또 후설로 하여금 그의 철학적 동지들과 독일의 철학적 전통[독일 관념론]과의 정신적 통합을 이룰 필요성을 통감하게 만들었다."(58-9, 강조는 필자)
"사실상 후설의 철학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정태적[정적] 현상학에서 발생적 현상학에로 발전하는 데에 칸트주의 쪽이 끼친 영향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중요하다."(64)
"[⟪위기⟫에서] 데카르트와의 이러한 결별은--물론 전면적인 것은 아니지만--칸트와의 명확한 접속과 결부되어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데카르트[객관주의]와 칸트[초월론적 주관주의]는 영구적으로 완전히 정반대되는 두 극들이다. [...] 그 결과 한 극에서 멀어짐은 필연적으로 다른 극에 다가감을 의미한다."(71-2, 강조는 필자)
"이러한 긴밀한 관계로 볼 때, 후설의 마지막 대저[⟪위기⟫]를 ⟪데카르트적 성찰⟫에 맞세워 "칸트적 성찰"이라고 부른다 해도 자의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77) ➔ ⟪데카르트적 성찰⟫과 ⟪위기⟫ 사이의 거리를 너무 멀게 보는 것은 아닌가?


제2부 칸트와 신칸트주의에 대한 후설의 태도에 관한 체계적 서술
제1편 칸트에 대한 후설의 태도
제1장 후설의 칸트 비판
제9절 케른은 후설에 의해 칸트가 가진 것으로 지적된 편견을 첫째, "칸트에게는 아프리오리의 진정한 개념이 없[음]"(83), 둘째, "칸트는 감성과 오성을 너무 무리하게 분리"함(93), 셋째, "칸트는 노에시스와 노에마를 혼동하여 의식의 노에시스적 측면에 관한 별도의 연구를 소홀히 했"음(97)으로 나눈다.
"칸트에게 아프리오리한 인식의 선험성은 [...] 모든 내용 일반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칸트에 따르면 인식의 내용을 근원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경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질료적 아프리오리란 형용의 모순인 것이다. 하지만 후설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질료적 아프리오리라는 것이 존재한다.실질적[sachhaltig/sachlich] 본질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또 이러한 실질 그 자체에 근거를 두고 있는 법칙들이 존재한다. [...] 정태적 현상학의 과점에서는 [...] 모든 본질 포착의 기초를 이루는 개체적 범례는 상상에 의해서도 표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발생적 현상학의 과점에서는 후설에 따르면 가장 원래적인 인식인 개체지각이 본질인식의 근원이 된다."(86-7, 강조는 원저자, 밑줄은 필자) ➔ 칸트가 본질 또는 이념의 '직관'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
"후설은 여기서 칸트에게 형식적, 합리주의적 선입견의 죄를 묻는다. 즉 칸트는 볼프학파 출신이라서 단지 분석적 인식만을 실제로 합리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88)
"후설에 따르면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은 필연적이고 보편타당한 본질법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실적 주관[e.g. 인간]에 의거하여 상대화될 수 없고, 무제약적으로 타당하며, 따라서 신에게도 타당한 것이다."(90) ➔ 반면 칸트는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의 타당성을 인간적 주관에 한정하여 상대화했다.
cf. 산술의 분석성(93)
"그런데 한편으로 능동성 또는 자발성과 또 한편으로 수동성 또는 수용성 사이의 구분은 후설에게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먼저 자발성은 항상 수용성과 얽혀 있고, 따라서 이성은 그것의 근저가 되는 감성과 함께 얽혀 있다. 나아가 그에게 수용성은 동시에 자발성 또는 능동성의 가장 낮은 단계이다. 단적인 경험의 [대상인] 실재물은 수용성에서, 즉 감성에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수용성에서는 감성적 파악의 자발성이 작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미 순수한 감성 이상의 것이 작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고차적 이성작용(통일적인 자아, 작용), 예를 들어 논리적 빈술[Prädizieren]의 작용은 하나의 소유물을 구성하는데, 이것에 대해 주관은 수동적 자세를 취한다."(94-5, 강조는 원저자) ➔ Hua VII 부록 XII, ⟪경험과 판단⟫ s. 119 참조.
"따라서 후설은 칸트식의 순수한 이성, 즉 감성에서 완전히 분리된 이성의 개념을 알지 못한다. 후설이 '순수이성'이라고 말할 때는 본질의 인식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본질 인식은 감성적 내용의 구역까지도 함께 포괄한다. 왜냐하면 감성적 내용들도, 예를 들어 빛깔이나 소리도 본질법칙에 의해 철저히 지배되고 있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96, 강조는 원저자)
"후설에게는 지향적 체험과 대상적 의미와를 구별하는 데에 현상학적 탐구의 근본구조가 놓여 있다."(97, 강조는 필자) ➔ ⟪서설⟫ 8장 참조.
제10절 후설은 칸트의 근본적인 문제설정과 관련하여 첫째, "칸트는 인식의 근본문제에 직면하지 못했다. 그의 이성비판은 '자연적' 세계파악에서 유래하는 '독단적' 전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100), "칸트의 인식 문제론은 너무 높은 단계에 속한다. 그에 앞서 좀더 심층적인 문제들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119), "칸트의 문제론은 너무 좁다"는 점(123)을 비판한다.
"후설에 따르면 인식 물음의 본질에서 동떨어진 가정들이 칸트의 문제설정에서 전제되고 있다."(102) ➔ '물 자체'와 인간성의 절대성 상정 비판 vs "후설이 칸트의 독단적 전제들을 칸트 사상의 진정한 의미에 상치되는 요소로 간주하여 의식적으로 도외시하고 [...]"(118) ➔ 1920년대 이후의 후설은 칸트가 자연과학의 가능성을 해명하고자 한 작업으로써 자연과학의 타당성을 괄호 안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선언한다. cf. 존재론의 길
"후설에 따르면 근본적인 인식 문제는 자연적 태도에서 제기될 수 없다"(103) cf. "근본적 인식 문제란 곧 '세계 수수께끼'--세계 존재의 확실성이 갖는 소박한 자명성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느냐--이다."(113, 강조는 필자) ➔ ⟪위기⟫ s. 100 참조.
"칸트는 확실히 초월론적 현상학적 차원을 목격했으며, 그의 논구들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순수히 이 차원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 이 차원은 칸트에 의해서는 자연적 인식태도에서 연유하는 모든 심리학적 견해로부터 결코 근본적으로 정화되지 않는다."(109)
"후설에게 '인간'은 언제까지나 하나의 세계 개념으로, 말하자면 세간적[mundan] 경험의 객관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남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후설에게 초월론적 자아의 '객관적 자기은폐'를 가리키는 개념, 즉 초월론적 자아의 세간적 복장, '경험적, 객관적 복장'을 가리키는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110, 강조는 원저자, 밑줄은 필자)
후설이 봤을 때 칸트는 생활세계의 구성 문제--신체, 상호주관성, 역사, 세대 구성의 문제를 포함하는--를 연구하지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내재적 시간의식을 초월론적으로 취급하는 초월론적 질료학, 생활세계 현상학, 형식논리학을 초월론적으로 취급하는 세계논리학, 과학적 자연을 초월론적으로 취급하는 영역존재론 중에서 마지막을 제외하고서는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120-122). 또한 칸트는 경험을 자연에 대한 경험으로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하여 정신, 문화에 대한 경험을 탐구하기를 간과했다(123). 그러나 이후 후설은 칸트에 대한 이와 같은 자연과학적 해석에서 벗어나 "보편적 세계존재론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그가 "세계지평의 보편적 구조"를 취급했다고 이해하기에 이른다(125, 강조는 원저자). 비록 칸트가 내재적 시간 구성을 탐구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잔존하지만 말이다.
제11절 후설은 칸트의 초월론 철학적 방법론과 관련하여 첫째, "칸트에게는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현상학적 환원의 개념이 없다"는 점(126), "칸트에게는 직관에 내보이는 방법이 없"고 "후퇴적, 구축적[regressiv, konstruktiv] 방법"만을 사용한다는 점(129), "칸트의 초월론 철학에는 형상적 방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151)을 든다.
직관주의에 대한 후설의 확신은 "일찌감치 그의 수학연구 시절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135)
칸트의 철학이 '신화적'인 이유는 그의 "초월론적 개념들은 어떤 직관에 의해서도 충족될 수 없으며 [...] 원리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144).
"의식을 직관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고 하는 후설의 비판은 당연히 체계적인 지향적 분석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하는 비판과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후설에 의하면 의식은 지향성과 같은 것이므로, 직관적 의식 탐구는 결국 지향적 분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144, 강조는 원저자, 밑줄은 필자)
cf. 도그마를 가지는 신학과 절대적 근거를 쫓는 순수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대비(145)
제12절 후설은 또한 칸트의 이성 문제론과 관련하여 첫째, "[초기에만 고수된] 칸트의 심리학주의에 대한 비판"(153), 둘째, "칸트의 인간학주의에 대한 비판"(159)을 제기한다.
cf. 후설은 칸트의 '물 자체'를 실재론적으로 받아들였으나, 같은 것을 쿠노 피셔, 헤르만 코헨, 에른스트 카시러, 브루노 바우흐는 관념론적으로 받아들였다(160). '물 자체'의 다의적 해석 가능성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 한 존재자의 설정은 이 존재자의 원리적 인식 가능성의 설정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후설에 따르면 현상의 알 수 없는 원인을 요청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164-5) ➔ 그러나 케른은 칸트의 '물 자체'가 그의 '원형적 지성' 개념과 함께 논구되어야 하므로 후설의 비판은 불충분하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의식을 절대적으로 초월해 있는 대상의 개념은 객관주의적 객관 개념이다. 이런 객관 개념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한 것이야말로 칸트의 위대한 업적이다. 이를 위해 그는 우리의 모든 인식 대상성[...]은 초월론적 통각의 상관항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는 또 우리의 의식에 대해 절대로 '외부에 있는' 대상을 가정하는 일은 오직 우리의 인식과 진리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 때에만, 바꿔 말하자면 절대적 지성의 이념이 고려될 경우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166, 강조는 필자) ➔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신"은 후설에게 무의미하다. "[신에 의한] 인식이란 초월론적 현상학적 분석이 탐구하는 그러한 인식의 비절대성 또는 유한성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식의 이념은 그에게 생소할 뿐 아니라, 그는 이것을 아예 단호히 거부한다. 후설에 대하여 '의식', '체험', '인식', '경험', '직관' 등은 신이 창조할 수도 변경할 수도 없는, 확고부동한 아프리오리한 법칙성을 가진, 아주 특정한 본질구조를 지칭하는 것이다."(170) 같은 맥락에서, "후설에게는 유한한 인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가치하다. 감수적 인식과 창조적 인식과를 대립시키는 것이 그에 대해서는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비수용적 인식이란 그에 대해서는 배리이다. 수용성은 인식의 본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172-3)
"초월론적 현상학이 탐구하는 순수의식은 그 본질에 있어서 전혀 별다른 의식이 아니다. 즉 그것은 본질상 인간적인 것으로서 본질상 신적인 것에 대립시킬 수 있는 그런 의식이 아니다."(173, 강조는 원저자)
cf. 칸트: 비직관적 원형적 지성의 개연적 가능성 vs 후설: 직관 불가능성으로 인한 원칙적 불가능성(175-6)


제2장 칸트의 논리학 이념에 대한 후설의 태도
"분석적 아프리오리에 의해 규정되는 형식논리학[무모순성의 논리학]과 종합적 아프리오리에 의해 규정되는 초월론적 논리학의 칸트적인 대조 속에서 후설은 그 자신의 구분, 즉 한편에서는 공허한 형식적 존재론과 또 한편에서는 질료적 논리학 또는 질료적 존재론의 구분이 예시되고 있다고 보았다."(178)
⟪이념들⟫ 1권에서 "질료적 존재론이 영역적 존재론들과 동등시"될 때, "후설은 영역들을 자신의 구조로 갖는 전체로서의 세계를 그의 존재론적 숙고의 범위 안에 넣지 않는다. 1920년대 초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후설은 세계존재론의 이념을 수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존재론을 그는 [영역적, 형식적 존재론 모두와 구분되는] 보편적 존재론이라고 지칭한다."(184, 강조는 원저자) ➔ Hua III, 부록 VI 참고(1927)
후설의 아프리오리 개념의 이중성: ①플라톤적 의미에서 개별자의 형상 ②범주("한 영역을 영역으로서 구성하는 최상의 본질들(존재론적 형식들)"(186)) ➔ 후자는 칸트에게서 연원하며(187) 이성비판--경험과학을 규제하는 규범으로서의 존재론적 아프리오리의 도출--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초월론적 의식의 보편적 분석에 다름 아닌 현상학은 후설에 따르면 필연적으로 존재론적 아프리오리를 실마리로 삼아 진행한다."(188-9)
세계의 본질적 공간성(192) / 1920년대 이전의 결정론적 인과 개념에서, 생활세계의 인과와 과학의 정밀한 인과성 사이의 구분으로 이행(194-5, cf. 220) / 인식의 이상을 고정시킨 뒤 "그것의 실현을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려는" 칸트의 가치론, 목적론적 접근(201) / 칸트의 초월론적 물음 일반에 대한 후설의 이해(203)
'자연과 정신' 강의에서 "아프리오리한 세계구조들의 연역"의 두 갈래 길: ①"구체적인 전술어적 세계경험의 분석에서부터 출발하는 '밑으로부터의 곧은 [현상학적] 길" ②"형식논리학에서부터 시발하는 '위로부터의' [칸트적] 길"(196) ➔ 후자는 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의 보편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그것에 소속되는 사물의 경험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존재론적 법칙을 연역하는 길이다(200). 그러나 두 길은 같은 종착점을 가진다(212-3의 인용문 참고).
★'자연과 정신' 강의를 해설하며 케른이 수행하고자 하는 작업은, 후설이 초월론적 연역(두 번째 칸트적 길)이 비직관적이기는 해도 인식의 조건, 학문의 정초 가능성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현상학과 통한다고 보았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칸트의 논리학과 후설 자신의 세계존재론은 평행관계(213)를 이룬다.
cf. 객관화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순간 의식의 주제적 대상이 된다는 것을 넘어 ①반복적으로 ②상호주관적으로 ③객관적 시공간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인식됨을 의미한다. / 후설 자신이 "아프리오리한 존재론적 법칙들은 대상의 변화들과 이에 대응하여 연속적으로 경과하는 상이한 지각들을 일관하면서 동일성을 설정할 가능성의 조건들"(215-6)이어야 한다는 가정 하에 연역을 수행한 예시들(214-221, 특히 인과성과 관련하여)


제3장 후설과 칸트에서 이성 비판 / 제4장 후설과 초월론적 주관성으로의 칸트의 회귀 / 제5장 후설과 '자연을 조형하는 주관성'에 관한 칸트의 이론
★"그러나 이제 후설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칸트의] 순수 사변적 이성이란 아예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한 이념도 아니고, 철학적으로 논구할 만한 이념도 아니다. [...] 그가 본질의 인식과 관련하여 '순수 이성'을 말할 때, 그는 이것을 경험하는 이성에 반대되는 의미로 파악하지 않고, 구성적으로나 지향적으로 경험하는 이성에 소급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관성과 개념성[Begrifflichkeit, 개념 파악능력]의 결합으로 파악된) 이성과 대상성은 후설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의미부여와 경험의 지향적 관계에 있다. 그래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의 과제는 그에 따르면 이런 연관성을 명확하게 눈앞에 제시하는 데 있다."(235, 강조는 필자)
"[...] 칸트는 순수개념들의 객관적 타당성을 비절대적인 경험에 국한함으로써 이러한[합리주의에 의한 관념적 질서의] 절대화를 타파하였다."(238)
"[...] 후설은 절대적 의미의 존재에 대하여 그 의미의 문제를 명확히 제기한 적이 결코 없다. 이 문제는 절대적 의미의 에 대한 사상에서만 제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성의 문제론에서 그에게 명시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역시 주관의 '존재이해'가 아니라 주관에 의한 존재자의 구성이다. [...] 후설은 절대적 존재 개념을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는 이 개념에 대한 논의들을 '신화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242-3, 강조는 원저자)
"후설에 따르면 초월론적 주관성에 이르는 칸트의 길은 이와 같이 객관적 (또는 존재론적) 아프리오리로부터 주관적 (또는 현상학적) 아프리오리에로 소급하는 비판적 회귀에 있다. 칸트에게서 존재론적 아프리오리는 주관성의 가능성으로서 문제로 설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 아프리오리는 암묵리에 '괄호 안에 넣어진' 다음 주관성으로부터 이해될 수 있게 만들어진다."(246) ➔ 존재론적, 객관적 아프리오리와 주관성 그 자체의 아프리오리 사이의 구분, 후자에 대한 전자의 소급지시(후자=전자의 원천) / 후설은 A판의 초월론적 연역이 초월론적 주관성을 다루고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후설에 따르면--그리고 이 점에서 그는 칸트적 이성비판의 결말과 근본적으로 일치하는데--아프리오리한 인식은 존재론적 인식으로서 인식의 객관성 그 자체의 순수한 표현일 뿐이다."(299, 강조는 필자)
"[...] 칸트의 가장 중대한 발견은 후설에 따르면 종합의 이론에 놓여 있었다."(305, 강조는 원저자) ➔ 칸트의 종합론은 비록 소박한 태도에서 수행되지만, 지향적 분석의 한 형태다.
★"모든 대상은 후설에 따르면 종합적 통일체이다. 그것들은 [...]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으로서 언제나 다양한 지향성들의 동일성이기 때문에 종합적 통일체인 것이다. 모든 의식체험 속에는 대상들과 상관해서 종합이 들어 있다."(306, 강조는 원저자, 밑줄은 필자) ➔ Hua I, 80 참고.
칸트에게 재인의 종합과 관련하여, 그러한 재인의 종합=회상의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는 지각조차 완전한 객관화로서 성립되지 않는다는 후설의 견해 전향(307) ➔ Hua XVII, 140-3 참고.
"감성과 오성의 이와 같은[칸트가 '감성론' 대 '논리학'이라는 문제의 구획에서 목표했던] 원리적인 대립은 후설에 대해서는 전혀 무의미하다. 즉 그는 감성과 오성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간주한다."(312) cf. "후설이 칸트적 오성의 이러한 비직관성을 간과한 까닭은 그 자신의 오성 개념이 직관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후설의 오성 개념은 감성적 직관까지도 배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성과 오성은 후설에서는 결코 엄격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감성적 직관과 비직관적 오성 사이의 간격을 다리 놓으려는 구상력과 도식론에 관한 칸트의 논술은 그에게는 요령부득이었던 것이다."(323, 강조는 필자)
★후설이 "'초월론적 감성론'이라는 칸트적 용어"(312)를 사용하는 세 가지 맥락 ①"감각상[Phantom] 단계에서의 사물 구성"(313), ②"전과학적 지각 내지 '순수경험'의 세계라는 현상학적 문제론"(313), ③
"대략 1925년까지 그[후설]는 단지 초월론적 논리학만을 존재론이라고, 즉 참된 존재와 관련된 학문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후에 그는 전과학적 세계와 과학적 세계와의 관계를 전혀 새롭게 파악하면서 전과학적 세계에도 참된 존재를 인정한다. 이렇게 해서 전과학적 세계에 관한 존재론이 가능해진 것이다."(314)
"이상화[Idealisierung]의 문제는 단지 유형적인 것에 관련된 모호한 개념들을 낳는 전과학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과학에서 사용되는 정밀한 개념들을 창작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314, 강조는 원저자)
"후설이 전에는 현상학자로서 배척했던 것이--단적인 경험 종합의 생산적 성격이--이제 새로운 현상학적 관점에서는, 즉 발생적 현상학의 관점에서는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그는 칸트의 '종합'에서 그것의 생산적[창조적] 의미를 용인한다. 그리하여 그는 칸트의 '종합'을 그 자신이 말하는 초월적 경험 사물의 '발생적 구성'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319, 강조는 원저자)
"[...] 후설에 있어서도 기초가 되는 직관은 경험적, 감성적 직관이다. 요컨대 현상학의 초월론적 직관은 그것이 반성적이라는 점에서 소박한 객관적 직관을 [발생적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또 보편적 직관(이념직관) 역시 모든 범주적 직관과 마찬가지로 감성적 직관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구성의 내력에서 이것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진리는 후설에 따르면 개체의 세계에 귀착한다. [...] 후설은 칸트의 이성비판에서 직관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신칸트주의에 대한, 특히 마르부르크학파의 그것에 대한 반대운동을 어느정도 이행하였다. 이 학파의 신칸트주의는 [...] 인식 내지 인식대상의 비직관성을 강조하였고, 칸트도 이에 상응하게 해석하였던 것이다."(324, 강조는 원저자, 밑줄은 필자)
"그러나 경험의 사물은, 이것이 논리적 사고를 통해 포착될 수 있기 위하여, 이미 ‘개념적’이거나 ‘범주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구축’만으로 후설은 만족할 수 없었다. […] 따라서 그에게는 이 [전술어적 경험 속 범주적] 기능들을 지향적 분석을 통해 추적하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경험과 판단⟫에서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일이다. 여기서는 경험 안에서 범주들이 발생하는 내력이 탐구된다."(326-7, 강조는 필자)
★"더 이상 기능으로 용해되지 않는 것, 결국 모든 기능, 모든 의미부여가 노에시스, 노에마의 상관관계에 따라 전제하는 것, 요컨대 질료(재료)와 기능[의 대치]. 기존의 재료들로부터 대상과 자연을 창조하고, 조형하며, 형성한다는 비유."(332, 케른이 후설의 유고에서 재인용, 강조는 필자) / "후설은 [...] '질료'와 자아에 의한 '조형'과의 상대적 차이를 자아에 수동적으로 미리 주어져 있는 촉발적 소유물과 자아에 의한 이 미리 주어진 것의 자유롭고 능동적인 형성 사이의 차이로 서술"한다(333, 강조는 필자).
"내재적 시간의식 속에서 내실적으로 내재적인 감각소여가 어떻게 구성되느냐"를 따지는 문제에서는 "이제는 '조형기능'이나 '의미부여'를 말할 수 없다. 정태적[정적] 구성과 발생적 구성의 차이도 없어진다."(336-7) ➔ Hua III/1, 134 참조


제6장 후설과 칸트의 초월론적 관념론 / 제7장 철학사에서 칸트의 위치
"그 결과 이 논문[<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1924)>]은 세계가 "단지 무한 속에 놓여 있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그것의 목적 의미를 의식삶의 현행성으로부터 길어오기"[s.227] 때문에 수행하는 주관성에 의한 축조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340)
"그러므로 실재세계는 발생적 구성의 관점에서는 주관성의 한 '산물'이나 '축조물'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342, 강조는 원저자)
"세계의 관념성"의 근거에 대하여 ①"세계의 존재는 경험하는 주관성에 대한 존재일 이며, 이것을 넘어서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인식" ②"구성이나 혹은 지향성이 발생적인 것으로 포착되어야 한다"는 점(342-3, 강조는 원저자)
★"후설에 대해 초월론적 관념론은 세계의 절대화로부터의 구제를 의미한다. [...] 세계의 절대화는 후설에 따르면, [...] 정당하게는 경험에 대한 규제적 의미밖에 가질 수 없는 하나의 이념을 (절대적으로 규정되고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라는 이념을) 그릇되게 '실재화'하는 데에 있다."(347, 강조는 원저자)
cf. 후설의 자아이론에 대한 케른의 요약(350-357)
"'나는 생각한다'가 나의 모든 표상들에 수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칸트의 명제가 후설에 대해 갖는 의미는 이러하다. 즉 한 체험류에 속하는 모든 체험들은, 따라서 자아가 현행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체험들도 역시 자아에 대한 극관계를 자신의 본질로서 갖는다는 것이다. 자아에 의해 이행되지 않은 불명료한 배경의식도 현행적 사고작용(cogitationes)으로 변화되거나 또는 그 안에 편입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아와의 이런 극관계에 놓여 있다."(351)
"[동일한] 세계에 대한 일관된 확신은 저절로 자아를 하나의 일관된 자아로 만들 뿐 아니라, 이 세계확신은 동시에 초재 쪽으로 맞춰진 모든 개별확신들의 기반(지평)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세계확신은 확신들을 지탱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조화로움[Einstimmigkeit]을 향하여 목적론적 추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여 후설은 '초월론적 통각의 자아'를 확신의 온갖 변화들을 일관하여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에 관한 자신의 근본확신을 고수할 수 있는 자아라고 규정한다."(356) ➔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론적 통각의 자아 및 그의 구성은 [그리고 세계의 존재까지도] 우연적이다(359)! vs 독일 관념론(cf. 364)
후설 역시 세계의 불합리한 우연성을 취급함에 있어 구축적 방법을 이용하며, 따라서 "현상학이 철학 전체라는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는 케른의 주장(368) ➔ "후설은 초월론적 (공동[상호]주관적) 의식에서의 세계 구성이라는 현상의 우연사실적 현존을 순전히 이론이성을 토대로 넘어서려 하지 않고, 칸트처럼 실천이성의 요청을 통해서 형이상학을 근거다지려고[정초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369)
"[...] 자주 회자되는 후설의 명령 "사상 자체에로!"도 이를테면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에 유행하기 시작하는 구호들, "칸트에로 돌아가라!", "토마스에로 돌아가라!", "헤겔에로 돌아가라!" 등에 대한 반대구호로서, 어떤 반역사적인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373)
현상학자가 철학사를 비판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이유(374-5), 플라톤적 에피스테메를 이념으로 가지는 후설의 유럽 철학사 해석에 대한 케른의 요약(375-384) / 진정한 초월론적 철학 = 독일 관념론 + 엄밀한 지향적 분석(388-9)